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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꽃

까미l노 2015. 2. 5. 10:30

나리는 백합(百合)의 순수한 우리말로 장미, 국화와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리를 비롯하여 향기가 없고 화색이 다양한 꽃들을 ‘나리’라 지칭하고, 백합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오래전부터 나팔모양의 꽃이 흰색이므로 흰백자(白)의 백합으로 알고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백합’의 어원은 흰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백백(百)’자로 땅 속에 있는 저장양분을 보유하고 있는 알뿌리(구근)가 여러 개의 인편(비늘잎)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백합이 한자어로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중국, 일본,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용어인 반면, ‘나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나리류는 먼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고 있는 우리 꽃이었음을 여러 문헌에서 그 이름의 변천으로 찾아볼 수 있다. 고려 때의 이두 향명은 견내리화(犬乃里花), 대각나리(大角那里)였다.

전통미술품에 등장하는 나리는 주로 책가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학문에 정진하여 관직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그렸던 책가도에 나리꽃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나리꽃의 상징의미가 벼슬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 추정된다.
나리꽃의 나리는 당하관(堂下官)의 벼슬아치를 높여서 부르던 호칭인 나리와 같다. 이런 까닭에 나리꽃이 벼슬아치라는 상징을 갖게 되었고 벼슬길에 오르기를 기원하는 의미의 문양으로 채택되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와 길상 문양이 유사한 중국에서는 이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나리꽃 문양이 없다. 이로보아 나리꽃은 순수 우리말인 나리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우리 고유의 길상 문양으로 이해된다.

산나리꽃이 활짝 필 때면 조를 뿌리는 시기로 어림했으며, 감자를 심기도 했다. 산나리꽃이 피면 장맛비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리꽃은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 꽃이 많이 피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했다. 해마다 봄이면, 나리꽃이 피는 것으로써 그 해의 기상을 점쳤다. 이것이 많이 피면, 그 해에는 장마의 피해가 없고 풍년이 들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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