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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

까미l노 2015. 2. 5. 10:27

국화는 중국이 그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록에도 국화의 기원이 매우 오래된 것으로 나타난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고려 충숙왕 때 원나라에서 학정홍(鶴頂紅) ․ 소설백(笑雪白) 등 여러 품종의 국화를 다른 꽃들과 함께 도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 송나라 때의 양국(養菊) 대가(大家)인 유몽(劉蒙)의 「국보(菊譜)」에 국화의 품종으로 신라국(新羅菊, 일명 옥매(玉梅) 또는 능국(陵菊))을 기록하고 있고 또 일본의 『왜하남재도회(倭漢三才圖會)』에서는 4세기 경에 백제에서 청 · 황 · 홍 · 백 · 흑 등 오색의 국화가 일본에 수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고려사』에는 고려 의종(毅宗) 14년(1160년) 9월에 왕이 국화를 감상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부터 이미 국화가 있었고 중국으로부터 도래된 국화와 더불어 재배 또는 교류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중국과 같이 국화의 원산지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국화는 고전문학에서 사군자와 상호 관련된 상징으로 이해되어 왔다. 세월에 역행하여 개화하는 점에서는 매화(梅花)와 관련되고 고결(高潔)하다는 것은 연꽃과 연관된다. 국화가 지닌 고고함은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까지 피는 꽃이므로 세상일에 초연하여 홀로 고상하다는 데서 연유한다. 이정보의 시조에서 사용된 오상고절(서리에 굴하지 않는다)은 국화를 상징하는 관습적인 표현으로 쓰여왔다. 꽃울 늦게 피었으나 은은항 향기로 고고한 기상을 떨치는 국화의 모습 속에서 선비의 고고함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덕을 보았다.

국화는 봄에는 국화의 움싹을 데쳐 먹었고 여름에는 국화잎을 쌈을 싸 먹었으며 가을에는 국화꽃잎으로 화전을 부쳐 먹었고 겨울에는 국화 뿌리를 달여 마셨다고 한다. 감국 포기 밑에서 나오는 샘물은 국화수라 하여 이 물을 장기간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지고 늙지 않으며 풍도 고칠 수 있다고 하였다. 또 국로수(菊露水)라 하여 국화꽃에 맺힌 이슬을 털어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국화주는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병을 없애는 데에 큰 효과가 있다고 믿어왔다.

국화는 예부터 불로장수를 상징하였다. 옛 사람들은 단순히 국화의 은일미(隱逸美)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식용하여 불로장수하려던 사람도 많았다.

국화의 다른 이름에 갱생(更生), 장수화(長壽花), 수객(壽客), 부연년(傅延年), 연령객(延齡客) 등으로 부른 것은 국화가 지닌 장수의 의미 때문이다. 국화꽃잎을 넣어 만든 국침도 국화가 지닌 장수의 효능을 활용한 것이다. 국침은 국화꽃잎을 곱게 말려서 베개 속이나 이불 속에 넣어 그윽한 향기를 즐기는 동시에 몸에 이롭게 활용하던 것이다. 민간에서는 국침을 베고 자면 머리가 맑아지고 단잠을 잘 수 있다고 하였고 오늘날에도 두통치료의 요법으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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