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계수나무 본문
게수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임금의 죽음을 상징하는데 사용하거나 선비의 절개를 표현하느데 사용하였다.
(전략)옥궤(玉几)에 잠시 의지했고 장막을 갑자기 설치했으며 붉은 문[彤扉]을 새벽에 여니 선장(仙仗)의 색상이 흐릿합니다. 곤룡포 입은 모습 어제 같은데 칼과 신[劍舃]을 버렸으니 누가 대신하겠습니까. 자기(紫氣) 타고 멀리 가시니 푸른 하늘 어느 곳입니까. 계수나무 그림자 요전(瑤殿)에 쓸쓸하고 흰 구름은 현당(玄堂)에 감돌고 있습니다. 아, 슬픕니다. (후략)
玉几乍憑, 綴衣遽設. 彤扉敞曉, 仙仗寡色. 披袞繡兮如昨, 委劍舃兮疇御? 乘紫氣兮遐擧, 緬碧落兮何所? 桂影涼兮瑤殿, 白雲擁兮玄堂。 嗚呼, 哀哉!
(전략)몇 달이 흘러 추위와 더위가 철을 바꾸니, 이슬은 송알송알 맺고 가을바람은 스산합니다. 대궐 뜰은 고요하고 계수나무 그림자는 앙상한데 초막(綃幕)은 적막하고 벌레소리는 시끄럽습니다. 장례 나갈 때 무너뜨린 담이 쉽게 막힌 것에 놀라고 넋이 노니는 길이 이미 막힌 것을 슬퍼합니다. 옥잔을 저녁에 올림에 빈궁(殯宮)을 새벽에 떠나니, 어느 곳으로 돌아가십니까. 영결보다 슬픈 슬픔이 없으니 아, 애통합니다. (후략)
階蓂累變, 寒暑換節. 玉露兮團團, 金颷兮淅淅. 彤庭闃兮桂影寒, 縿幕寂兮蟲聲苦. 驚頹序之易闌, 悵眞遊之已阻. 瓊斝兮夕薦, 畫攅兮晨發. 去復去兮何所, 悲莫悲兮長訣. 嗚呼哀哉!
선조(宣祖)와 인조(仁祖)가 붕어한 후에 쓰인 애책문에는 ‘계수나무 그림자’라는 표현이 쓰였다. 계수나무는 스산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동시에 죽음의 공간을 환기하여 임금의 죽음을 상징한다.
고려 중기에 최유청(崔惟淸)이 지은 「잡흥」은 작자가 양주(楊州)에 있을 때에 지은 것으로, 작자는 전원의 한가로움과 그곳에서 소요하는 심경을 읊고 있다. 제2수에서 작자는 산중의 계수나무가 눈보라에도 홀로 굳게 절개를 지켜 꺾기 어렵다고 칭송한 뒤, 그 가지를 잡으면서 그 절개를 닮고자 하였다.
푸르고 푸른 산중의 계수나무 험한 바위 틈바귀에 뿌리박았네 휘몰아치는 눈보라 두려우나 외롭고 곧은 절개 꺾기 어렵네 밤 달은 차갑게 비춰 주고 봄바람에 푸른 빛 날로 자라네 가지를 더위잡고 한동안 서 있다가 속절없이 소산사 읊조리노라
蒼蒼山中桂
托根臨嶮巇
霰雪紛可畏
孤貞亮難移
夜月冷相照
春風綠漸滋
攀枝久佇立
空詠小山辭
(崔惟淸, 「雜興」, 9수 중 제2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