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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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관계 모호

까미l노 2015. 1. 11. 16:31

 

S는 B를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의 애인을 칭할 때면 으례 내 사람 나의 여자 라는 표현을 곧잘 쓰던 사람이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참 예쁜 만지고 안을 때마다 감탄하는

(하늘만큼 땅만큼이라는 표현처럼 그녀보다 더 예쁠 아름다울 대상이란 자신에겐 소용조차 닿지 않는다는)

그러면서도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했었다거나 했었지만 B는 S가 자신을 그렇게 볼 것이라고는 믿지 않으려는 여자였을 거라고 했다.

 

S는 B에게 빤히 들여다 보일 것인줄 알면서도 짐짓 잔머리 굴리는 말을 하는데 그럴때면 B는 의례 됐거등...이라는 퉁박을 GK는데

그럴 때마다 S는 한 번쯤 B가 알고도 모른척 눈 감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가슴을 데인 듯한 기억에 남은 아린 상처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B는 어린 시절부터 쌓은 내공 아닌 내공 때문에 스스로도 그 기억을 지울려는 생각조차 못할만큼

남아있는 흔적이나 상처를 언제나 숨기고 싶어하고 몸서리쳐 했던 것 같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세상에 내 상처보다 아픈 상처는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되어져

다른 사람의 상처는 아무리 크고 아픈 것이라도 내가 쓰다듬어 줄 수가 있지만

다른 그 누구도 내 상처는 자신의 것처럼 같이 아파해 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굳건히 믿고 사는...


아름답다는 것이 미인이거나 그럴싸한 몸매를 지칭하는 여성에 대한 표현인지는 모르겠고

엉뚱하지만 이성의 호감도에 대한 살핌이 까다로운 S의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일 뿐,

B가 그렇게 말했었던가 아니었던가 가슴엔 데인 것 같은 아린 기억으로 남은 사랑이란

 

S 역시 B 에게 그런 표현을 직접적인 어투로 했었던지 명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건 언제나 B가 가진 사랑에 대한 강박관념 같은 이유 때문이었을 

S는 늘 그걸 안타깝고 못마땅해 했었는데 B를 자신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느꼈다고 한다. 

 

밀당같은 걸 한 적도 없었고 한동안 만나지 않아도 애 태웠던 기억도 없건만 B는 처음 그렇게 말 했었다.

S는 영혼같은 그런 사람이라고 한 번은 같이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라고 ...

 

그래서 시작한 사랑은 관계의 모호로 애타는 마음도 쏘울메이트 같은 끌림조차도

각자 표현을 편하게 하지도 못한 채 전혀 엉뚱한 일로 인해 서운한 감정의 끝맺음을 하고 말았는데

탓은 탓이었을테지만 니가 잘 못했니 내가 잘 했니 같은 밀당이 아닌

도무지 두 사람의 성격상 일어날 수 없는 관계모호로 말이지...

 

경험을 쌓으려면 실패를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도 있고

실패는 거듭될수록 그 경험의 기술은 숙달이 되어 아주 능숙해질텐데

사랑이라는 거 그것도 실패가 쌓이면서 경험의 숙달이 가능할까?

 

말이야 맞을 수 밖에 없는 이치인 것 가트다만

더러 고약한(?)뭇사람들은 사랑 한 번으로 족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해 연애였든 사랑이었든

그 결과인 결혼에 대한 실패라고 표현을 하곤 하던데 그랬던 그들은

생애에서 여태 사랑 단 한 번만 했었고 여태 실패라곤 모른 채 잘 살고들 있을까?

 

왜 그렇게들 욕(?)하지 않던가

이혼한 것들이라고도 하고 한 번 이혼한 것들은 재혼해도 또 안 될 것이라고 낙인을 찍는

그래서 예전엔 이혼이 무슨 죄인양 드러내지 못해 숨겨야만 했었던 시절이 별로 오래지나지 않았었다.

 

이건 사랑이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상식적이고 보편타당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좀 더 세월이 흐른 미래가 되어서야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게다...

 

가정을 만들고 자녀를 낳아 잘 키우고 하는 게 행복하거나 좋은 결말이 되는 건

오래 전의 사회적인 관습 같은 것이어서 그런 무리에서 사뭇 다르게 되는 것이 두려워지거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느껴져 기를 쓰고 살아내고 참고 했었지만 지금에서는 핵가족 정도만이 아니라

반 이상이 일인 가정이 되었다는데 사랑의 결과인 행복이라는 것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하지 않은가 말이다...

 

단풍나무아래서차마발걸음을떼지못하고실실소녀적웃음을날리고서있는하늘이너무나파랗다고다른용건도없이전화통너머에서깔깔거리기만하는문득어머니가생각난다며내팔을붙들고펑펑울어젖히기도하는내가제손을잡기전에먼저내손을잡아주거나제손을잡도록이유를만들어주거나내가제입술을힐끔거리기만할때어두운골목길에서문득입술을내밀고서있기도하는사람의마음을짐작해주고아껴주는억지도쓰고시도쓰는팝송도많이알고시사에도밝으면서모처럼침튀기며어설픈논리에바쁜나에게따지지않고차라리졸고앉아있는발뒤꿈치꺼칠하고배가조금나왔어도나에게는한없이사랑스러운무표정은허허로운벌판을닮아애달프고강언덕에세워두면가슴아픈그림이되고마는봄에는나비같고가을에는꽃잎같은가슴이답답하다는핑계한마디던져놓고홀로거리를걷게하는낮에만났어도밤새보고싶은햇볕같고바람같고구름같고흐르는강물같은무슨이별의징후가전혀없는데도바라보면안타깝고애타는그녀에게내가눈물로남기싫고결코내눈물이안될나에게꽃보다아름답고달보다고우며갈대밭에숨어도느낌으로찾아지는끝까지사랑한다는말을하지않는도도한콧대의더이상말고이제내끝일내가갈때절대남겨두고갈수없건만그래도가끔내생각하라고겨우겨우두고가는내상여를먼발치에바라보고서서다시만나자고 말해줄그런쓸쓸한생각하면애달파지고마는그런사람...

 

 

남자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 김지룡

6년 전 일본에서 살 때의 일이다.
재일교포 여성을 사귄 적이 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많았다.
우리 두 사람은 한일 관계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만났다.
공부하는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토론은 한 시간 정도 하고 술은 서너 시간 마시는 날라리 모임이었다.


술자리가 길어지다 보면 사람들이 한둘씩 자리를 떴다.
그녀는 술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술이 센 편도 아니었지만,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지 항상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나는 술이 좋아 마지막까지 버티는 타입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리는 옆에 앉아 얘기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그녀에게 모임을 떠나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말했고 그녀는 승낙했다.
그리고 몇 번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나와 그녀는 어느 선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전철 막차시간이 다가와 -
일본은 택시비가 살인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막차를 놓치면 큰일이다 - 나는 그녀에게 일어서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마시자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그녀가 나를 유혹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두시가 되었다.
더 이상 술을 마시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리고 의아심도 들었다.

 

대체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가자.”


“어디를.”


“잠자러.”


“싫어.”


“왜 갑자기 빼고 그래.”


“빼는 게 아니라 진담이야. 우리 그냥 밤새 술이나 마시자.”


“술이 그렇게 좋아?”


“바보. 너는 여자를 몰라.”


여자를 모른다는 말이 내 자존심을 긁은 것 같았다.
더구나 나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말이 함부로 나왔다.


“너, 나를 꼬시고 싶은 거잖아.
그것 외에 이 시간까지 술 마실 이유가 뭐 있어. 왜 자신을 숨기고 그래.”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무 보채지 마.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지 파악하고 싶어서 술을 마시고 있는 거야.
벌써 다섯 시간이나 마셨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마시자.”


결국 나는 세 시간이나 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첫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도무지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전화로 데이트하자고 말하면 항상 오케이였다.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대낮에 만나건 밤에 만나건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키스는 아니지만 입을 맞춘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지쳐서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녀가 고개를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면서 우리 사이는 막을 내렸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뒤 그녀가 나를 거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흔히 남자들끼리 하는 말 중에 ‘팔장, 구장, 십장’이라는 것이 있다.
연애의 진도를 표현하는 은어다.
교과서에 나오는 ‘8장, 9장, 10장’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팔장은 팔짱을 끼는 것, 구장은 키스,
십장은 성행위까지 했다는 뜻이다.
나도 이런 말을 버젓이 할 정도로 남녀관계를 ‘진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남녀관계는 진도도 아니고 진도에 따라서 주어지는 허용 범위도 아니다.
성행위까지 한 여성, 남자들의 말을 빌리면
‘몸을 허락한 사이인 여성이 어떤 날은 키스는 커녕 손을 잡는 일조차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오늘따라 왜 이래’
혹은 ‘왜 갑자기 빼는 거야’라고 남자들은 말한다.
성을 ‘허용 범위’라고 생각하고 한번 허락한 부분은
마음 내킬 때마다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녀관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서로의 ‘관계성’으로 파악한다.
남자와 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
이 남자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친한 친구일까,
이성 친구일까, 애인일까. 손을 잡았다.
이 남자는 나를 진짜로 좋아하는가. 키스를 했다.
나도 이 남자를 사랑하는가. 이런 식으로 항상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끊임없이 정의하려 한다.
심지어는 상대방이나 자신의 마음을 시험해보기 위한 목적으로 잠자리를 같이하기도 한다.
한번 같이 잤다고 항상 잘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 남녀관계는 그 순간의 감정이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관계성인 것이다.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나는 그런 중요한 일을 하자고 말하면서 그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녀와의 관계성을 정의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와 내가 어떤 사이이고 앞으로 어떤 사이가 되기를 원하는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그녀가 나를 거부한 것은
내가 서로의 관계성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로 자러 가자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사랑은 하지만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단지 성적인 매력에 끌릴 뿐이고 그 이상의 감정은 없다거나,
하여튼 어떤 것이든 서로의 관계성을 명확하게 할 것을 그녀는 원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우 비겁한 일을 한 것 같다.
서로의 관계성을 애매모호한 상태로 두려고 했다.
여자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통해 여성이 원하는 것은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성’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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