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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장 영주산

까미l노 2012. 11. 13. 16:24

당당함으로 역사의 장을 만든 '산'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21>영주산
등록 : 2011년 10월 19일 (수) 10:12:19
최종수정 : 2011년 10월 19일 (수) 10:12:19
김철웅 기자 jemin9062@yahoo.co.kr

 

▲ 모구리야영장 인근서 바라본 영주산 동면
조선시대 500년간 정의현청 소재지의 '진산'
역동적인 분화구·오름군 감상에 1시간 족해

 

영주산의 매력은 당당함이다. 오름이 몰려있는 제주 동부지역 구릉지 평야지대에 "덤빌 테면 덤벼 보라"는 기세로 우뚝 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한라산의 별칭인 영주산(瀛洲山)을 이름으로 가질 만큼 지역의 성소이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산 남쪽 기슭에 '정의현'의 현청이 세워져 조선시대 제주 역사 500년의 터전이 되기도 했다. 영주산은 소라모양으로 한바퀴 돌면서 빠져나가는 특이한 형태의 분화구가 특징이기도 하다. 제주의 어제와 오늘에 이어 내일까지도 계속 지켜볼 '리틀 한라산'인 영주산이다.

영주산(표고 326.4m) 소재지는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18번지 일대다. 조선시대 정의현청 의 진산(鎭山)이었던 만큼 소재지였던 마을중심에서 북쪽으로 1.5㎞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비고는 176m로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11번째이고 면적은 133만8920㎡로 3번째로 넓은 오름이다.

'산'이라고 불리는 오름 가운데 비고에서 산방산(345m)과 군산(280m)에만 밀릴 뿐 아래로 고근산(171m)·대록산(125m)·단산(113m)·미악산(113m)·송악산(99m)·대왕산(83m)·월라산(63m) 등을 두고 있어 영주'산'이는 이의가 없어 보인다.

이름은 옛날부터 영주산 봉우리에 아침 안개가 끼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등 신령스럽다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신선이 살았다는 전설도 작명에 기여했다. 오창명 제주학연구소장은 "영주산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도 있다"며 "일찍부터 영르라 부르고 영지(瀛旨)로 표기했고, 민간에선 주로 '영머리'라고 했는데 이것은 영르의 변음"이라고 설명했다.

▲ <영주산 탐방로>

A=영주산·성읍공설묘지 갈림길 B=주차장 및 탐방로 입구 C=동쪽 전망점 D=정상부 E=산불감시초소 F=분화구 G=천미천

제주시(종합경기장)에서 영주산까지는 약 33㎞다. 번영로를 타고 성읍정의현로 136번길까지 31.4㎞를 달린 뒤 좌회전, 800여m를 진행하면 길 왼쪽에 알프스승마장 입구와 접해 영주산진입로 안내판이 서 있다. 160m 들어간 갈림길(탐방로지도 A)에서 우회전, 440m를 더 가면 영주산 탐방로 주차장과 입구(〃B)다.

탐방로의 시작은 오름 입구를 가로 막고 있는 철조망을 넘기 위한 철제 다리를 건너는 일이다. 오름에 방목중인 소들의 이동을 차단하되 탐방객의 접근성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데는 공감하지만 '신령스럽다'는 영주산과의 첫 만남으로는 아니다.

다리를 건너면 목재보드의 탐방로가 북동쪽으로 이어진다. 보드 탐방로가 끝나면 좌회전, 본격적인 능선 오르기다. 경사가 크게 심하지 않아 오르는 데 그리 힘들지 않다. 출발한 지 10분 정도면 동쪽 전망점(〃C)이다. 멀리 얼굴을 마주한 듯한 성산일출봉과 우도를 비롯, 대수산봉· 높은오름과 백약이·다랑쉬·거미·좌보미오름 등 동쪽과 북쪽 오름군들의 경관이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 3분 정도를 진행하면 다시 목재 계단이다.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계단을 밑에서 보면 전설적인 팝 그룹인 레드제플린(Led Zeppelin)이 불렀던 '천국으로 가는 계단(Stairway to heaven)'이 연상된다.

오름들과 소라처럼 '휘돌아나간' 분화구를 감상하며 10분 정도면 정상부(〃D)다. 대체로 정상부 능선이 완만하다. 조선시대 제주도 동부지역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정의현의 옛 터인 성읍민속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옛날 정의현성은 둘레 2520척(764m)에 높이가 13척(4m)이었다고 한다.

정상부에선 사방이 탁 트여 시원한 전망을 제공한다. 성불오름·부대악·부소악·비치미오름·개오름·큰돌이미오름과 따라비·대록산·모지오름너머 한라산도 눈에 들어온다.

특히 영주산 서쪽은 정의현을 있게 한 천미천이 휘감아 지나고 있다. 제주도에서 제일 긴 하천인 천미천은 한라산 동쪽 사면의 물이 모여 흘러내려와 영주산 옆에서 방향을 바꿔 바다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범람하는 천미천은 과거 문명 발상지 나일강의 삼각주처럼 성읍리 인근에 비옥한 농토를 만들었다. 지금은 천미천 홍수를 예방하고 지표수를 활용하기 위해 영주산 북서쪽에 대형 저수지 공사(〃G)가 이뤄지고 있다.

▲ 산박하
▲ 섬잔대
영주산은 반시계 방향으로 돌 경우는 하산이 어렵다. 산불감시초소에서 7분 거리인 8부 능선에서 시작되는 숲을 따라 내려가는 길의 경사가 가파르다. 그래도 8분 정도 내려가면 삼나무조림지를 지나 오솔길이 나온다. 그 옛날 보리 등짐을 지고 걸었던 그 길과 비슷한 산길을 따라 5분 정도 나가면 입구다. 전체 산행에 소요된 시간은 50분 내외, 천천히 돌아도 1시간이면 탐방에 족하다.

영주산은 2개의 오름이 겹쳐져 만들어졌다. 동쪽 전망점을 정상으로 하는 조그만 동쪽 오름의 어깨를 서쪽의 큰 오름이 짚은 형국이다. 동쪽의 작은 게 먼저 만들어지고 큰 게 나중인 셈이다.

영주산은 특이한 분화구 형태도 눈길을 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보통 말굽형 분화구는 3분의1 정도가 무너져 있지만 영주산은 분화구가 소라모양으로 한바퀴 도는 게 특징"이라며 "용암이 분화구에서 흘러내리면서 동쪽에서 남쪽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참취
▲ 흰엉겅퀴
형성 시기와 관련, 강 소장은 "수만년 단위인 것 같다"면서 "산체가 잘 남아있다는 것과 하천이 산 서쪽 돌아가는 것은 영주산이 만들어진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영주산은 오랜 방목의 영향으로 조림지를 제외하면 잔디가 우점하는 2차 초지대가 형성돼 있는 가운데 나출된 암괴들을 중심으로 산수국·국수나무·사스레피나무·왕모람·산철쭉·장딸기·참식나무·발풀고사리·풀고사리 등이 분포하고 있다.

사면 및 정상부에는 산수국과 국수나무·사스레피나무가 우점하고, 말굽형 분화구의 하단부에는 화구벽을 따라 생달나무·사스레피나무·참식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이 부분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김대신 한라산연구소 연구사는 "듬성듬성 보이는 발풀고사리와 풀고사리는 주변오름과의 식생 차이"라며 "이는 영주산 상부부터 하단부까지 많이 나출돼 있는 크고 작은 암괴들이 적절한 보습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철웅 기자

"영주산 정의현의 진산
지역주민 성소였을 것"
●인터뷰/고재원 연구실장

▲ 고재원 연구실장
"영주산은 정의현의 모태다"

고재원 (재)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실장은 "조선시대 지방관아인 현성은 풍수지리에 입각, 배산임수의 지형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곳에 설치됐다"며 "정의현성도 영주산을 진산(鎭山)으로 세워졌다"고 설명했다.

고 실장은 "이는 영주산이 정의현의 주변 산들보다 높아 정의현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통해 정의현성 조성시 중앙집권적 위계질서를 보여주고, 경관적 이미지도 부각시키려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영주산은 그 이름에서 보듯 정의현의 중심으로 지역주민의 성소와 같은 곳이었다"며 "그리 높지도 않은 데 '산'이라, 그것도 제주도의 중심인 한라산과 같은 이름을 붙인 이유가 성소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원래 정의현의 현청은 성산읍 고성리에 있었으나 바다와 가까워 왜적의 침범이 많고, 바람이 많아 흉년이 자주 들어 세종4년(1422년) 성읍리로 이전해와 성을 쌓았다"고 밝힌 고 실장은 "지금도 고성리에 옛 성터가 남아있다. 그래서 고성(古城)"이라고 말했다.

정의현성이 영주산 기슭에 자리하게 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 거주가 시작되는 등 '우연'이 아닐 것이라는 입장도 제시됐다.

고 실장은 "2000년대 들어 영주산 기슭에서 신석기시대 전기 및 후기 토기문화가 발견, 이 시대 사람들의 거주가 확인됐다"면서 "도내에선 아주 드물게 중산간지역에서 발견된 신석기 문화는 해안보다 사냥과 채집 등 먹을거리가 많았다는 얘기"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성읍리에는 현성뿐만 아니라 복원된 관아건물인 일관헌과 객사, 정의향교·전통가옥과 돌하르방 등 국가지정 및 지방문화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은 편"이라며 "문화재의 보호와 활용 측면에서 정의현성 내부와 외부가 조화를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기획 '다시 걷는 오름나그네'전문가 자문단
▲인문=김창집 탐라문화보존회장·소설가 ▲역사=박찬식 역사학자 ▲지질=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식생=김대신 한라산연구소 녹지연구사 ▲정책=김양보 제주특별자치도WCC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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