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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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나마스떼

겐지스강 화장터 언덕엔

까미l노 2011. 12. 30. 03:13

 

 

 

바라나시에서 죽어 겐지스 강에 재가 뿌려지는 것은 힌두교도들의 꿈이다.

나는 가트를 돌아보며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겐지스 강은 10억의 인도 사람들에겐 여간 신령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전, 나는 화장터가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 몇구의 주검을 만났다.

 

아무런 시설물도 없는 강변의 가트엔 주검을 태우기 위한 장작더미가 준비되어 있었다.

뙤약볕에 우두커니 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유족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개 떼들

비탈을 오르내리는 소 몇 마리 주검이 타 들어가는 매캐한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가트 주위는 기묘한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불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다시 한 구의 시체가 유족들에 의해 운반되어 왔다.

화려한 색상의 의상과 꽃들로 장식된 주검은 이내 겐지스 강물로 깨끗하게 씻겨졌다.

 

다시 뭍으로 옮겨진 주검은 뜨거운 햇볕 아래 아무렇게나 방치된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숙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동안 유족들은 화장에 필요한 장작 값을 흥정했다.

'그리고 차례가 오자 장작더미 위로 주검이 옮겨졌다.

집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왔는지 소리내어 우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유족들의 표정은 겐지스의 품에 안기게 될 고인에게 축복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다소 피곤한 흔적만 느껴질 뿐이었다.

 

잠시 후 화장 집행자인 꼽추 사내를 따라 유족들이 주검 주위를 다섯 바퀴 돈 다음 장작더미에 불이 붙여졌다.

무겁거나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든 행위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그저 덤덤히 진행될 따름이었다.

고인을 떠나 보내는 우리네의 통곡 풍습과 너무나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무심하게 불꽃을 바라보던 유족들이 하나 둘 연기를 피해 그늘로 숨어들었다.

유족들 대신 개 떼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탐욕스럽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다 불에 그은 인육이라도 맛보았음직한 얼굴이었다.

누구 하나 개들을 쫓는 사람도 없었다.

 

잠시 겐지스 강으로 한눈을 팔고 있는 내게 눈이 붉게 충혈된 한 청년이 다가왔다.

그는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촬영하면 6개월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카메라를 손가방에 집어넣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상하게 이것 저것 설명해 주었다.

화장이 끝나려면 세 시간이 걸리며 드문 일이지만 장작 값이 모자라는 가난한 사람은 중간에 강으로 던져지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코브라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화장하지 않는다.

코브라는 신성한 동물이어서 이미 신의 축복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신과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도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돌에 매달아 겐지스에 그냥 수장 시킨다.

 

그래서 겐지스 강엔 아이나 태우다 만 시체가 간혹 떠나니기도 한다.

자세히 보니 강물은 재와 꽃송이가 범벅이 되어 발을 담그기도 꺼려질 정도로 더러웠다.

그런대도 사람들은 그 강물로 입을 헹구기까지 하고 작은 항아리에 물을 길어가는 사람

화장터 바로 곁에서도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드디어 화장이 끝나고 재가 강물에 뿌려지자 유족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가 흙으로 빚은 항아리를 어깨 넘어로 던지자 의식이 끝났다.

유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화장터를 떠났다.

그것으로 고인과의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뒤를 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힌두교에서는 화장을 해야 비로소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임헌갑 작가의 '떠나는 자만이 인도를 꿈 꿀 수 있다'를 읽으니 겐갠지스 강가의 가트에 앉아서

화장을 하던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함께 갔었던 여성회원 한사람이 사진 촬영을 하다가 들켜 한참동안 곤욕을 치루기기도 했다.

돈을 달라는데 그 여성 회원은 당황해서 도망갈 생각만 하고 인도인은 온갖 저주 섞인 욕설을 퍼부었는데

끝까지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그 자리를 피했었다...

 

죽은 영혼을 촬영하게 되는 것이라고 인도인들은 극도로 싫어했을테고

하긴 어느 누군들 좋아하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