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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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나마스떼

삶과 죽음의 경계 갠지스 강가의 화장터

까미l노 2011. 9. 26. 01:00

 

 

21일간의 인도 헤매기

 

有恨과 無限, 最高와 最低의 인도에서의 諸行無常..

 

 

....돌아가서 인도에서 무엇을 느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허허롭게 웃을 수 있는 내 마음의 평 수 하나 늘려왔다고 말했음 싶다.

 

 

 

 

 

7년동안 우리 아이들과 부대끼며 힘들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나 사랑스런 우리 아이들...

 

여행이 끝나면...

다시 가르치고 있겠지...

 

웃는 얼굴로.1999년 8월 000

 

 

 

 

 

우리 아이들----자페아와 정신 지체아동들(정말 너무 사랑스럽다)

 

 

 

 

환생과 삶의 수레바퀴를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곳

현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인도인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모습이다.

 

아무 생각 없이 현실을 긍정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마음 편히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보이는 모든 상황이 나를 불평할 수 없게 만드는 나라...

 

적나라하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 놓고 여과 없는 삶의 모습을 여보란 듯 들이대는 나라...

 

더러움에는 끝이 없다.

한게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나라

모든 꺠끗함에 묻노니, 네 깨끗함ㅇ리 어떤 대가 위에 있는가?

 

1999.9.21 000

 

 

 

 

 

 

오늘,

우리가 의미 없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었던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내일입니다.

 

우리는 그런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인도는 저에게 극단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최고와 최저, 무한과 유한

사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하나의 사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보면 느끼고 느끼면 보인다고 했습니다.

 

인도를 많이 보고 많이 느끼시길 빕니다.

 

1997.12.7 000

 

 

 

 

 

부끄럽게도 나는 인도에서 아무것도 본 것이 없고 느낀 것조차 전혀 없다...

도착한 날 벼룩에 시달리기를 일주일

배탈과 설사로 내내 시달리다가 사막에서 겨우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으니...

 

 

나는 다시 인도로 간다...

이번엔 남인도로 가련다...

 

 

 

 

겐지스 강이 내려다 보이는 거미줄만큼이나 미로 같았던 좁디 좁은 골목길에서
들개와 염소들이 또한 그들이 성스러운 동물이라서 잡아먹지 않는 소들이 지천에 싸갈긴 똥들을 밟으며
바쁜 걸음들로 달려내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몇사람이서 간단하게 화장이며 옷을 곱게(?)입힌 시신을 어깨에 매고 골목길을 달려내려오면 누구나 다 비켜서줘야 한다.
강언덕 한켠에 참나무를 쪼개는 공터가 있고
잘 사는 사람은 시신을 완전히 태우기 의해 많은 돈을 들여 나무를 많이 사고

가난한 사람들은 돈이 적어 나무를 적게 사서 태게 되는데...

 

겐지스 강가엔 언제나 목욕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고

촛붗 켜진 조그만 꽃접시들이 떠내려가고 죽은 소들이 흘러 내려가고 타다만 시신들이 떠 내려간다...

 

 

 

 

바라나시에서 죽어 갠지스 강에 재가 뿌려지는 것은 힌두교도즐의 꿈이다.

나는 가트를 돌아보며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갠지스 강은 10억의 인도 사람들에겐 여간 신령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전, 나는 화장터가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 몇구의 주검을 만났다.

 

아무런 시설물도 없는 강변의 가트엔 주검을 ㅌ내우기 위한 장작더미가 준비되어 있었다.

 

뙤약볕에 우두커니 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유족

그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개 떼들

비탈을 오르내리는 소 몇 마리 주검이 타 들어가는 매캐한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가트 주위는 기묘한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불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다시 한 구의 시체가 유족들에 의해 운반되어 왔다.

화려한 색상의 의상과 꽃들로 장식된 주검은 이내 갠지스 강물로 꺠끗하게 씻겨졌다.

 

 

다시 뭍으로 옮겨진 주검은 뜨거운 햇볕 아래 아무렇게나 방치된 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숙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동안 유족들은 화장에 필요한 장작 값을 흥정했다.

 

'그리고 차례가 오자 장작더미 위로 주검이 옮겨졌다.

 

집에서 충분히 슬퍼하고 왔는지 소리내어 우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유족들의 표정은 갠지스의 품에 안기게 될 고인에게 축복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다소 피곤한 흔적만 느껴질 뿐이었다.

 

잠시 후 화장 집행자인 꼽추 사내를 따라 유족들이 주검 주위를 다섯 바퀴 돈 다음 장작더미에 불이 붙여졌다.

무겁거나 엄숙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모든 행위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그저 덤덤히 진행될 따름이었다.

고인을 떠나 보내는 우리네의 통곡 풍습과 너무나 이질적인 장면이었다.

 

 

무심하게 불꽃을 바라보던 유족들이 하나 둘 연기를 피해 그늘로 숨어들었다.

유족들 대신 개 떼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탐욕스럽게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다 불에 그은 인육이라도 맛보았음직한 얼굴이었다.

누구 하나 개들을 쫓는 사람도 없었다.

 

 

잠시 갠지스 강으로 한눈을 팔고 있는 내게 눈이 붉게 충혈된 한 청년이 다가왔다.

그는 내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 촬영하면 6개ㅔ월간 감옥에 갇히게 된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카메라를 손가반에 집어넣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상하게 이것 저것 설명해 주었다.

 

화장이 끝나려면 세 시간이 걸리며 드문 일이지만 장작 값이 모자라는 가난한 사람은 중간에 강으로 던져지기도 한다는 설명이었다.

 

--코브라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화장하지 않는다.

 

코브라는 신상헌 동물이어서 이미 신의 축복을 받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신과 가까이 있기 떄문이다.

 

어린아이도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돌에 매달아 갠지스에 그냥 수장 시킨다.

 

그래서 갠지스 강엔 아이나 태우단 만 시체가 간혹 떠나니기도 한다.

 

자세히 보니 강물은 재와 꽃송이가 범벅이 되어 발을 담그기도 꺼려질 정도로 더러웠다.

그런대도 사람들은 그 강물로 입을 헹구기까지 하고 작은 항아리에 물을 길어가는 사람

화장터 바로 곁에서도 아이들ㅇ은 소리를 지르며 뮬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드디어 화장이 끝나고 재가 강물에 뿌려지자 유족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그가 흙으로 빚은 항아리를 어깨 넘어로 던지자 의식이 끝났다.

유족들은 고개를 숙이고 화장터를 떠났다.

 

그것으로 고인과의 인연이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뒤를 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힌두교에서는 화장을 해야 비로소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임헌갑 작가의 '떠나는 자만이 인도를 꿈 꿀 수 있다'를 읽으니 갠지스 강가의 가트에 앉아서

화장을 하던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함꼐 갔었던 여성회원 한사람이 사진 촬영을 하닥 들켜 오랫동안 곤욕을 치루기기도 했다.

돈을 달라는데 그 여성 회원은 당황해서 도망 갈 생각만 하고 인도인은 온갖 저주 섞인 욕설을 퍼부었는데

끝까지 사진 촬영을 하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그 자리를를 피했었다...

 

죽은 영혼을 촬영하게 되는 것이라고 인도인들은 극도로 싫어하겠지만 어느 누군들 좋아하랴만...

 

 

 

 

 

 

 

 

델리의 한국 음식 식당인 인도 방랑기

이곳에 가면 늘 한국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고 인도 여행의 많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는 곳이다.

라면이나 수제비 등 한국 음식 맛도 상당히 비슷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