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아내의 젖을 보다 본문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김재진
믿었던 사람의 등을 보거나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 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 번이나 세 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 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 함께 있다 해도 다 허상일 뿐
완전한 반려(伴呂)란 없다.
겨울을 뚫고 핀 개나리의 샛노랑이 우리 눈을 끌듯
한때의 초록이 들판을 물듯이듯
그렇듯 순간일 뿐
청춘이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그 무엇도 완전히 함께 있을 수 있는 것이란 없다.
함께 한다는 건 이해한다는 말
그러나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얼마쯤 쓸쓸하거나 아니면 서러운 마음이
짠 소금물처럼 내밀한 가슴 속살을 저며 놓는다 해도
수긍해야 할 일.
아내의 젖을 보다 / 이승하
나이 쉰이 되어 볼품없이 된
아내의 두 젖가슴이
아버지 어머니 나란히 모신 무덤 같다.
유방암이란다.
두 아이 모유로 키웠고
내가 아기인 양 빨기도 했던
아내의 젖가슴을 이제
메스로 도려내야 한다.
나이 쉰이 다 되어
그대 관계를 도려내고
기억을 도려내고
그 숱한 인연을 도려내듯이...
암이 찾아왔으니 암담하다.
젖가슴 없이 살아야 할 세월의 길이를
생명자가 있어 잴 수가 있나
거듭되는 항암 치료로 입덧할 때처럼
토하고 또 토하는 아내여...
그대 몇 십 년 동안 내 앞에서
무덤 보이며 살아왔구나
두 자식에게 무덤 물리며 살아왔구나
항암 치료로 대머리가 되니
저 머리야말로 둥그런 무덤 같다.
벌초할 필요가 없다.
조부 무덤 앞 비석이
발기된 내 성기 닮았다.
아름다운 폐인 / 한명희
미쳐도 어쩜 이렇게
지저분하게 미쳤을까
소주물에 넣고
헹구어 주고 싶다.
쓸쓸한 눈빛 하나만 남기고
모두 소독해 주고 싶다.
그래도 남아 있을 네 눈물기
귤 껍데기 같은 네 곁에 누워
살보시라도 해줄까
해는 지는데
집에 가기가 싫어...
아내 / 공광규
아내를 들어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두 마리 짐승이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고
또 한 마리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다.
먹이를 구하다
지치고 병든 암사자를 업고
병원을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내외 / 윤성학
결혼 전 내 여자와 산에 오른 적이 있다.
조붓한 산길을 오붓이 오르다가
그녀가 나를 보채기 시작했는데
산길에서 만난 요의(尿意)는
아무래도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가혹한 모양이었다.
결국 내가 이끄는 대로 산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따라 들어왔다.
어딘가 자신을 가릴 곳을 찾다가
적당한 바위틈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를 바위 뒤편에 세워둔 채
거기 있어 이리 오면 안돼
아니 너무 멀리 가지 말고
안돼 딱 거기 서서 누가 오나 봐봐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곳에 서서
그녀가 감추고 싶은 곳을 나는 들여다보고 싶고
그녀는 보여줄 수 없으면서도
아예 멀리 가는 것을 바라지는 않고
그 거리, 1cm도 멀어지거나 가까워지지 않는
그 간극 바위를 사이에 두고
세상의 안팎이 시원하게 내통(內通)하기 적당한 거리...
처 자 / 고형렬
주방 옆 화장실에서
아내가 아들을 목욕시킨다.
엄마는 젖이 작아 하는 소리가
가만히 들린다.
백열등 켜진 욕실에서 아내는
발가벗었을 것이다.
물소리가 쏴아 하다 그치고
아내가 이런다 얘,너 엄마 젖 만져봐
만져도 돼? 그러엄. 그러고 조용하다.
아들이 아내의 젖을 만지는 모양이다.
곧장 웃음소리가 터진다.
아파 아놈아!
그렇게 아프게 만지면 어떡해!
욕실에 들어가고 싶다.
셋이 놀고 싶다.
우리가 떠난 훗날에도
아이는 사랑을 기억하겠지...
아내의 브래지어 / 박영희
누구나 한번쯤
브래지어 호크 풀어보았겠지
그래, 사랑을 해본 놈이라면
풀었던 호크 채워도 봤겠지
하지만 그녀의 브래지어 빨아본 사람
몇이나 될까?
나 오늘 아침에
아내의 브래지어 빨면서 이런 생각해보았다
한 남자만을 위해
처지는 가슴 일으켜세우고자 애썼을
아내 생각하자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까
남자도 때로는 눈물로 아내의 슬픔을 빠는 것이다.
이처럼 아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동굴처럼 옹크리고 산 것을
그 시간 나는 어디에 있었는가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가
반성하는 마음으로 나 오늘 아침에
피죤 두 방울 떨어뜨렸다.
그렇게라도 향기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내의 생일 / 김두일
생일이라고 들뜬 아내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어
아내가 며칠 전에 벗어 장롱 속에 감춰둔 속옷을 꺼내 빨았다.
얼마나 오래 입었는지 후크가 너덜대는 브레이지어와
잔 구멍이 숭숭 뚫려 거미줄처럼 얇아진 팬티.
그토록 오래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도
아내가 저런 속옷을 입고 사는지 모르고 산 무딘 손이 비누를 벅벅 문질러댔다.
수돗물을 틀지 않았는데도 속옷이 젖고...
시장에서 악착같이 값을 깎던 아내의 힘이
저기 숭숭 뚫린 구멍을 지나 나온것 같아 늑골이 묵직했다
자꾸 고관절이 아프다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여기저기 사진을 찍어보던 의사는 골다공증이라며
구멍이 숭숭뚫린 아내의 뼈사진을 보여주었다.
뼈에 뚫린 구멍들을 자세히 보니 사나운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아들녀석이 한 입씩 베어문 흔적 옆에
승냥이보다 더 예리하게 뜯어낸 내 이빨자국이 무수하게 널려있었다.
깊은 밤에 마시고 버린 술병이 아내의 뼈속에서 파편처럼 박혀 신경을 누르고 있었다.
아마도 아내는 수렵의 시대를 지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하는 날 뼈에 좋다는 사골을 넉넉히 사고
티비에서 광고해대던 속옷을 세트로 사들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내는 바늘을 쥐고 앉아 너덜너덜한 속옷 구멍을 빈틈없이 메우고 있었다.
속옷의 구멍이야 바늘로 깁지만 뼈에 난 구멍을 무엇으로 메우려는지.
한무더기 시간이 내 뼈속에서 휘파람을 불며 빠져나가는 오후...
뽀얗게 우러난 사골 국물 속에서
아내의 허벅지 뼈 한덩이를 건져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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