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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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의 벤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까미l노 2009. 4. 15. 00:08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 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 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 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 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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