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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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

나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까미l노 2007. 11. 24. 19:36

나도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단풍나무 아래서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실실 소녀적 웃음을 날리고 서있는

 

하늘이 너무나 파랗다고 다른 용건도 없이 전화통 너머에서 깔깔거리기만 하는

 

문득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내 팔을 붙들고 펑펑 울어 젖히기도 하는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제 손을 잡기 전에 먼저 내 손을 잡아 주거나 제 손을 잡도록 이유를 만들어 주거나 내가 제 입술을 힐끔거리기만 할 때 어두운 골목길에서 문득 입술을 내밀고 서있기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 주고 아껴주는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지나가는 아가씨보다 제가 더 이쁘다고 뻑뻑 우기기도 하는

 

철이 든 것인지 들다만 것인지 나처럼 곧 오십이 되어가는, 조금 뻔뻔한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먼 바닷가를 거닐며 분위기도 좋은데 누가 내게 부당함을 행하면 두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감싸주는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편인 아줌마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핸드백에서 담배가 발견되고 내 담배 몇 개비도 더러 없어지던데 담배는 절대 안 피운다고 우겨대는

 

나처럼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좋아하고 더러 감자처럼 생긴 머스마 김용택님 보다 더 고운 시를 쓰기도 하는

 

그렇게 억지도 쓰고 시도 쓰는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팝송도 많이 알고 시사에도 밝으면서 모처럼 침 튀기며 어설픈 논리에 바쁜 나에게 따지지 않고 차라리 졸고 앉아 있는

 

발뒤꿈치 꺼칠하고 배가 조금 나왔어도 나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러운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찬 소주잔을 들 때의 무표정은 허허로운 벌판을 닮아 애달프고 강 언덕에 세워 두면

 

가슴 아픈 그림이 되고 마는 봄에는 나비같고 가을에는 꽃잎같은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술잔마다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 가슴이 답답하다는 핑계 한마디 던져 놓고 홀로 거리를 걷게 하는

 

 

낮에 만났어도 밤새 보고싶은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햇볕같고 바람같고 구름같고 흐르는 강물같은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이별의 징후가 전혀 없는데도 바라보면 안타깝고 애 타는 사람

 

 

그녀에게 내가 눈물로 남기 싫고

 

결코 내 눈물이 안 될 사람!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꽃 보다 아름답고 달 보다 고우며

 

갈대밭에 숨어도 느낌으로 찾아지는---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도도한 콧대의---

 

더 이상 말고 이제 내 끝인 사람일

 

그런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갈 때 절대 남겨두고 갈 수 없건만

 

그래도 가끔 내 생각하라고

 

겨우겨우 두고 가는---

 

 

 

내 상여를 먼발치에 바라보고 서서

 

'다시 만나자'고 말해주는

 

그런 쓸쓸한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애인,

 

생각하면

 

애달파지고 마는

 

그런 사람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세준--

 

 

 

llumination / Secret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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