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바다에 꽃을 던지는 여인들 본문
시간을 품고 세상의 길 위에서
돌고 도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풍경들이 순간적이고 찰나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빠져나가곤 합니다.
산과 물이 정을 나누듯 헤어졌다 만남을 반복하는 것은
결코 지루하지 않을 여정을 지속하는 것일 겝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심한 시선으로
다른 이들이 살아내는 필연적인 삶을 바라봅니다.
그런데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들의 무심한 우연일 뿐입니다.
길을 만났다 헤어지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 애매하기는 마찬가지 일겁니다.
그래서 다들 방황하는 것일 테고 주변을 떠도는 여행처럼 삶도 그러할 것이라서
남는 것은 우리가 겨우 기억하는 것들 뿐이겠지요...
불현듯 스쳐 지나가버린 빗줄기 뒤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밝은 햇빛이 이내 갈대밭에 촘촘히 내려앉아
은빛의 거미줄을 마구 만들어 냅니다.
삶은 늘 그러한 것 아니겠는지요...
체념처럼 절망처럼 거칠게 쏟아 부으며
아픈 사람들을 먼 바다로 흘려 보내 주기를 바랬던 비도 논바닥의 오리도 도심의 거리도
다 어제 아침과 똑 같은 풍경으로만 펼쳐지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작가의 글에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두어 번 사랑에 실패하고
혹은 가까운 사람이 청춘의 시기에 병으로 죽고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캄캄한 밤이 자주 찾아오고 그리고 더 이상 청춘으로 불리어지지 않을 나이가 훌쩍 지나서
온갖 희망과 기쁨에서 어지간히 놓여나게 되었을 때
그리고 어느 날 말할 수 없이 사무친 감정에 휩싸여
문득 지나간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었을 때
겨우 몇 가닥 노래로만 기억될 뿐인 우리들 가난한 청춘을...
침묵해야 하는 일은 점점 더 많아지는 시기이고
굳이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때 없이 목 메이던 순간들이
유독 잦아지는 그래서 가슴 졸이며 괴로워하는 긴 기다림
그래도 우리는 아직도 감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슴 벅차고 괴로웠던 생의 한 가운데
그 모든 소리들 풍경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목 메이게 하던 시절
나이가 들면서 점점 뜸하게 찾아오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기다립니다.
그게 미혹이었고 단지 젊음이었다고 해도
장마철 처마 밑에서 빗방울을 바라보며
밤새 서 있고 싶었다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새벽 두세 시 어느 때 라도 불현듯 깨어나 이화가 보고 싶어
수백 키로 떨어진 배 밭을 찾아 달빛을 따라간 적이 있는 사람
다시 그래 볼 수 있다면...
늘 맞는 계절이지만
마른 꿈속에 발을 들여놓고 경기 들린 아이가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이 계절엔 시골 동네 어귀 뉘 집 담벼락인지 키 작은 민들레가 눈을 서글프게 합니다.
겨울바다는 더욱 남 회색이고
바다에 나갔던 여인네들은 다들 꽃 한 송이만 던지고선
어디론가 뿔뿔이 흩어진 채 쓸쓸하게 돌아갑니다.
돌산도 끝바리 섬과 섬을 들고 나며
밤늦게 돌섬 꼭대기로 돌아가
바다 비린내에 젖은 몸을 소금바람에 말리며
굼실대는 밤바다를 내려다보다가 저녁답에 바다를 떠난
여인네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문득 궁금해 합니다.
깨끗한 몸 빛깔의 감성돔은
화려하지만 화장은 전혀 하지 않은
통통하게 살 찐 여인의 벗은 몸 같습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야 최후까지 저항을 하지만 일단 물을 떠나면
아름다움을 위해서인지 비늘 한 개 다치지 않도록 다소곳합니다...
시거리라는 사투리로 불리어지는 야광충이 물비늘과 함께
흐린 달빛에 너울 따라 일렁거리며 넘어오기만 하고
아직은 고기떼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섬과 섬 사이 돌섬 꼭대기에 오두망실 홀로 앉아있어도
그리운 것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습니다.
적막한 무서움은 분명 외로움보다는 더 할 텐데 말입니다.
지금도 아마 누군가 홀로 바위섬을 지키고 있을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