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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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서

수신불명 편지

까미l노 2007. 11. 22. 22:26

회사 창가에 서면

환히 내려다 뵈는 네거리 길 모퉁이

갓 구운 빵의 숙성 내음이 좋은 무슨 베이커리 앞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빨간 조금은 큰 깡통 하나


그가 온전히 나를 위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여라도 현대적이랍시고 씨잘때기 없는 따위의 휴대폰 메시지나

컴퓨터 메일에 밀려 어디론가로 실려가지 말고

자주 찾을테니 항상 그대로 그 자리를 지켜주오...

 

편지요~
우편배달부 아저씨의 빨간 자전거에 실려오는 목소리
지금은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지나가버린 먼 시간속의 추억이지만

요즘도 우편 배달부 아저씨가 내 집 골목을 지나가시고 나면

 

혹시나...

우편함 저 안쪽까지 손을 더듬거려보곤 합니다.
늘 수확물보다는 기대만으로 서운함을 달래는 날이 더 많았지요...

 

역시나 오지 않은 사람의 이름으로 보낸 편지
앞마당에 떨어져있는 하얀 사각 봉투를 볼 수 있으면
혼자서 이래 더 살아도 버팀이 한결 덜 고달플테지요...

 

저처럼 지금의 어른들 대다수가 어릴 때 잠시의 꿈이
우체부 아저씨가 되는 것 이었을테지요....

가끔 신 새벽에 편지를 쓰곤 합니다 

얼마만 인지요...
이렇게 편지지를 앞에 놓고 보니
글씨가 제대로 옮겨지지를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도 아닌데 참 쉽지가 않습니다.
때론 세로로 글을 씁니다.
작대기를 곧게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까까머리 고교시절 연애편지 쓰던 그 글씨로 씁니다

그런데도 소설도 아닌 것을 파지가 수북 합니다.

역시 볼펜은 늘 싫다는 느낌입니다.
사각거리는 소리도 나질 않고 너무 미끈거려 맘 먹은대로
글쓰기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아주 세게 꾹꾹 눌러서 쓰는 타입입니다.
그래선지 편지의 끝머리엔 처음의 글씨와 덜 닮아지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기울기는 심해지고 손가락이 아픕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호품은 만년필 입니다.
아주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 역시 만년필 이지요...

만년필의 촉을 망가지게 할까봐
있어도 아니 쓸 만지고만 있어도 촉감이 아주 좋은 게 만년필입니다. 

 

내 편지는 쓰잘데기 없이 길어서
어떤 땐 대 여섯 장의 편지지를 보내기에

봉투가 지나치게 부풀려지고 우표는 두장이 듭니다.

받는 사람은 긴 글을 볼 수 있을테지요...

설레임만이라도 오래가게 해 주고 싶어서입니다.

 

나야 뭐,

편지를 곱게 받쳐 들고
겉봉을 급하게 뜯어 버리는 타입입니다.
가위 있는 곳 까지 못가는 성급함 입니다.
그래서는 두고두고 닳도록 읽고 화장실에서도 읽지요...

 

보낼 곳이야 당연히 없지요...

늘 하던대로 우표까지 붙였다가 내 편지 내가 읽어보곤 그냥 찢어 버립니다만

우표 값도 모르는 사람이랑은 사랑도 하지 마십시오... 

 

2000년 제주 신시가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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