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먹고 산다는 그 위대한 명제 직업... 본문
직업이라는 것...
사람들은 제각기의 이유들로 다양한 일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또는 그 일이 좋아서
아니면 부자가 되고 싶어서라거나...
나 역시 어릴적부터(?) 이것 저것 닥치는대로 다양한 직업을(?)가져봤었는데
돌아보면 부자가 될 수 있을 법한 직업을 억지로라도 선택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은데
뭐, 능력 밖이기도 했을테지만...
제일 처음 가져봤던 직업이(?) 소매치기 바람잡이였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청과물 도매시장 경매하는곳 이었는데
친구가 시키는대로 한 곳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던 곳에서
한참을 서서 멀뚱히 구경을 하다가...
한참을 지나 둘러 보니 친구들은 어디 갔는지 한명도 보이지를 않았는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를 앞에 세워 사람들의 시선을 막게하고
이용만 한 채 지들끼리 달아나버렸던 것이다...
첫 직업은 그렇게 해서 몇십 분만에 끝나버리고...
처음으로 가출을 시도했었던 중학교 2학 년 때는 그 친구를 따라 다니며
구두닦이 졸병으로 구두를 모아 오는 일도 해 봤었고
하얀색의 큰 미군 깡통을 들고 다니며 집집마다 밥을 얻으러 다니는 거지 행세도 해봤었다.
친구의 뒤를 따라다니며 용기를(?)내봤었지만 차마 직접 밥을 얻어보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중학교 때의 가출을 끝내고
오로지 트럼펫 하나만 들고 다니며 음악가의 꿈을 이루려고 발버둥 치던 학창시절
하숙과 자취를 번갈아 하면서 겨울에는 너무 추워 잔머리 굴린 끝에
생각해낸 것이 목욕탕 아르바이트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19767 년경)
전당포 라는 게 많이 있었는데 내게 있었던 물건 가운데 값(?) 나갈만한 것이라곤
트럼펫 하나와(악기는 목숨처럼 아끼는 것이라서) 세이코 또는 오리엔트 손목시계가 있었는데
이게 그 당시 한 이 만원 정도 했을까...
그래도 전당포 주인 잘 만나거나 신용만 있으면
만 원까지 저당을 잡혀주었으니 걸핏하면 내 시계는 친구들의 배고픔 때문에
공동 저당품이 되곤 했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반드시 내 물건을 찾아야만 하는 성격인지라
전당포 주인도 가격을 늘 높게 쳐준 것인지 모르겠지만...
두 번째 직업이 목욕탕 아르바이트 였었고
세 번째 직업이라는 것이 분식점과 다방에 디스크쟈키 라는 것이었었다...
요즘은 거의 없어졌지만 그 당시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이 자주 가는 곳들 가운데 한 곳이
디스크 쟈키가 있는 음악분식접과 음악다방 이었었다.
디스크쟈키로서 꽤 인기도 얻었었고
지방 방송국에 오디션 받을 기회도 있었는데 난 예나 지금이나
대인 공포증이 있다...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주눅이 들기 때문이다...
중 1 때 처음으로 트럼펫 독주경연 대회에 참가해서 무대 위에서 객석에 앉아있던
좋아하기 시작한 여학생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난 후 부터 무대 공포증이 생겨버렸던 것이다.
그 여핵생의 눈을 본 순간 연주를 제대로 했던 것인지
곡을 까 먹고 엉망으로 연주 한 것인지 전혀 기억이 없을 정도였는데
모두들 일등을 하리라 했었던 나는 그만 2등에 머물렀고
그 후론 어떤 무대 위에서도 독주는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였다...
해서 방송국에 진출할 수 있었던 기회도 스스로 포기를 했었다만
당시 그나마 성공한 디스크 쟈키가 가수이기도 한 유열이었다...
마이크 앞에서 능숙하게 말을 잘 할 수 없었기에 난 늘 음악만 듣게 해주는 타입이었고
나를 찾는 여성들은 마이크 앞에서 별 말도 없거나 더듬는 아저씨 타임을 원하고 통하곤 했었는데
월급이래야 고작 담배 한 갑과 잠자리 또는 식사제공에 당시에15.000 원 정도였었다.
공식적인(?)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가졌던 게
미 8군 카투사 군악대에서 근무하면서 미군들을 따라 몰래 야간업소에서
대중음악 연주를 했었던 일이다...
술을 마실줄 모르기에 얼마 안가서 그만 두었었지만 수입은 꽤 상당했었다...
제대도 하고 학교생활도 다 끝난 후 첫 공식 직장이 경남 진영의 여자고등학교였다...
정교사 자격증이 없었던 나로서는 할 수 없이 음악 실기위주의 과목만 맡았었는데
고적대 같은 기악 위주의 수업만 하거나 음대 진학생들의 독주를 위한 실기 위주의 수업만 했었다.
그마나 내게 열정이 있었던지 아이들을 꽤 실력있게 지도해서
수많은 상들을 받게 했었는데 그럭저럭 13년 정도를 학교에 있었다...
당시의 학생들이 지금도 전화가 가끔 오곤 하는데 나랑 비슷하게 늙어가는(?)
동시대의 어른들이고 보면...
그때의 나는 꿈을 접었을 때인지 한참 꿈을 펼칠 때였는지 지금에사 생각해보니 기억에 가물거릴 뿐이다...
그렇게 꼬박 13 년을 학교에 붙잡혀 버둥거리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고...
낚시점을 하고 산악회 가이드를 하고 자동차 딜러 보험대리점...
지난 시간 내 걸어온 삶이거나 결정에 후회를 한다거나 뒤돌아 보는 것 조차 안 하는 사람이지만 단 하나...
돈 편하게(?)벌 수 있는 직업 선택을 하지 않았음이 ...
친구가 그러더라...
개뿔~여태 남 괴롭히지 않고 올바르게 살기는...
지금의 결과는 중요치 않느냐고..그 친구는 부도를 내고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렸다.
잘 나가는 사장님 소리 듣고 살았었는데...
지금의 내 직업이 무엇인지 나도 모르겠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내일이 걱정이 되어서 헐레벌떡거렸었는데 지금은 케쎄라쎄라...
자다가 그냥 내일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 같은 걸 얻었다...
편안하다...
난 언제나 허무와 열정 사이를 오락가락 하는 사람이 나닐까 싶다...
죄 짓고 사는데도 착하다는 말을 듣는 놈이거나 죄는 짓지 않는데도 나쁘다거나 못난 놈으로 평가 받거나...나는 어디에 속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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