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카미노 국토 대장정#16일차 "길의 미식가" 본문
"나는 길의 미식가일까 대식가일까?"
날씨: 한낮 따뜻했다가 해 지면서 급격히 추워짐
오늘 걸은 거리 31km (누적거리 461km)
걸음 수 약 45.000 보 (누적걸음 약 663,000 보)
쉼터에서 잠시 미운아빠와과 나의 분신도 사이 좋게 나란히 휴식을 취한다.
쥔장들은 길 아래 논두렁에서 무언가 탈탈 털고 있을 것이고...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듯 길가에 허수 저거 아빠와 엄마들이
제각기 외치고 싶은 이야기들을 어깨띠로 두르고 섰네...
강원도가 가까워지는 경북 내륙지방 깊숙히 들어갈수록
시골청취가 많이 보이고 달리는 차량들은 뜸해지면서 산의 골만 점점 더 깊어져 간다.
권세 꽤나 누렸을 옛 냥반들이라는 사람들이 살았던 집들이나 묘들엔 한결같이 그 냄새들을 풍기고 있고...
영월 청령포와 선돌을 보러갔을 때도 그 아픔이 느껴졌었는데
여기에도 어린 나이의 단종의 한 맺힌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잔대가리 잘 굴리는 넘들은 잘 묵고 잘 살고 ...
한데 어이해서 내 잔머리는 돈이 잘 안되는지...그렇다고 잘 묵고 잘 살기나 하냐...쯧~
금성단 흙담 위로 멀리 소백산 국망봉의 흰눈 덮힌 정상의 모습이 아스라히 보이고...
백두대간 하늘금 아래를 쭈욱 감상하면서 가는 길이다.
벌재에서 죽령으로 넘나드는 구간이고 주목군락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바람이 가장 센 곳인 소백산...
일전 겨울에 비로봉엘 올랐다가 얼마나 춥고 바람이 거세던지 아침까지 거르고 올라갔던 산인데
고픈 배를 달래며 점심까지 계속 포기한 채 바람에 갸날픈 이내 몸뚱아리를 밀려나면서 시려운 것을 넘어서서
아리기까지 한 손을 주무르면서 하산했던 기억이 새롭다.
소수서원 맞은 편 금성단이라는
단종의 한 많은 사연이 얽힌 곳이 이곳에도 모셔져 있었다..
단종의 복위를 꿈 꾸던 사람들의 충정을 알 수 있는 곳인데
옛 사람들이 살던 그 가옥이 그런대로 잘 보존이 되어있었다.
점심식사를 한 소수서원 맞은 편 시골집 방 안의 풍경이다.
콩나물 비빔밥을 먹었었는데 특별히 추천할 만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모 신문사가 추천은 했다는 광고가 보이고 ...
들렸던 사람들의 방명록 같은 것도 보이네
그나마 구들목은 따뜻한 게 식사 후 스르르 잠 들었으면 싶어지던 시골집이었다.
소수서원 올라가는 길과 서원내에 복원해둔 옛모습의 집들과 장독대
초가집과 장독대는 언제 보아도 고향의 집과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머니께서 언제나 반들반들하게 닦곤 했던 그 장독대가 생각난다.
거대한 장승
나 죽어서 나무로 다시 태어나 오래 살게 되어서
썩은 고목으로나 남아 나중에 길가 수호신인 장승이나 될까나...
선비촌 앞 걷대한 양반님네 앞에서...
우리나라의 유적지라는 곳은 무슨 가든 아니면 산채비빔밥집 일색이고
게다가 무슨 복원이랍시고 전혀 엉뚱한 짓들만 골라서 하고들 있는지...
저 거대한 선비의 모습은 무얼 뜻하는건지...
무슨 메가더 장군 동상도 아니고 순신 할아버지 보다 더 크네...
부석사 올라가는 길에서 뒤편엔 멀리 소백산쪽으로 해가 넘어간다...
갈가에서 보낸 오늘 하루도 저물어가고 우린 발걸음만 재촉한다.
시려오는 손 때문일까... 마음이 급해지네...오늘은 또 어디에서 구겨진 잠을 청하나...
오늘은 여태 해남에서부터 올라오는 길 가운데에서 최악의 길을 걸은 것 같다.
오른 발 둘째 발가락에 콩알만한 물집이 생겼고 왼발의 뒷꿈치가 약간 부어올랐다.
도보여행 후 난생 처음 물집같은 게 생기게 된 기념비적인 날이로고...
별 달리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는데 왜 물집과 부은 곳이 생기게 된건지 일부러 양말도 두개를 신었었고
속양말로 안전하게 발가락 양말로 신기까지 햇었거늘...다른 날보다 다소 많이 걸어서일까...
소백산 아래 부석면 부석사까지 올라와서 통곡을 해야할 이런 일이...
부석면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저물어 부석사에 올라가도 볼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지금까지 세번을 부석사 무량수전을 보려고 온 셈인데
이번에도 못보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영주 고치령이나 마구령을 밤에 넘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일 아침에 오르려해도 하루 걷는 코스로는 거리가 너무 멀어
할 수 없이 마을버스로 봉화로 이동해서 소백의 산줄기를 빙 돌아서 가게된다.
언제 다시 와서 무량수전을 둘러보고 남대리로 해서 마구령을 넘어 강원도 땅을 밟으리라...
오늘이 크리스마스라기에 세넘은 삼겹살로 그동안 걷는동안 마셨던 목의 먼지와 매연이라도 제거하자며 자축을(?) 했다.
나와 미운아빠는 소줏잔에 냉수를 따르고 글로리는 한잔 술로 건배 후 목을 추긴다...
그나저나 오늘은 길가에 백원짜리는 커녕 오원짜리 동전 한개도 발견을 못했으니
이러다 굶어 죽는 건 아닌지 몰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달 수입 이백원으로 그치게 되면 누가 말하는 소위 그 자급 가튼 걸 하려는 여자가 있을꼬...
아직도 눈이 내리지 않음을 아쉬워하는 미운아빠는 오히려 추위엔 엄청 약하다.
그와 같이 걷는동안 단 하루 보성구간을 빼고는 거의 날씨가 좋은 편이었는데 역시 겨울의 길엔 흰눈이 펑펑 쏟아져 내려야 맛이지 시푸다.
지금 다시 바삐 걸어서 건너 저 산만 넘어가면 바다가 보일까..
문득 바다가 보고시퍼진다...
새벽을 향해 쉬엄쉬엄
밤을 도와 동으로 동으로 도망을 간다
그 바다 정동진 내려앉아 뜨는 해 보쟀는데
나폴나폴 눈송이만 녹아드는 것을
내 눈에 뜬 달
바다에도 경포호에도 둥실 다섯개
괜시리 여자의 젖가슴이 그리워진다
하조대 올랐드니
친구생각에 참으로 서글프고
설악을 이고지고 모퉁이 또 모퉁이 돌아서니
한계령은 내려가라 오지마라 하고
성난 파도는 세차게 차 올라
골 마다 휘돌아 드는 바람
웅크린 가슴에 눈발만 안긴다
산 중턱엔 나 혼자 서 있고
길은 예서 끝나려는데
눈은 저리도 하영 겨울 바다를 젖게한다
내 서러움엔
아랑곳 하지않고...
졸시...'바다에 떨어지는 눈'
모레 동강 속 길로 들어서면 눈이라도 내려주었으면 시퍼지누나...
안녕~
오늘도 나를 길의 미식가로 남게해준 세상의 모든 길들이여...
모산청우(문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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