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무연 그리고는 무심 본문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법
어떤 게 옳고 그르다고 할 수 있을까?
내 뜨락에 가끔이나 단 한 번 또는 자주 기웃거리는 사람들 있다.
어떤 땐 궁금해지기도 해서 그 사람의 아이디를 따라 가보기도 하는데
십 중에 팔구는 비공개로 되어있다.
나야 뭐 그다지 숨기고 비공개하고 그럴 필요를 전혀 못느껴서 몽땅 오픈이고 공유이지만
다른 이들은 숨기고 싶거나 굳이 오픈하고 싶지 않아서일 수도 있었을게다.
그런 건 각기 개인의 성향이니 뭐라 그럴 건 없다고 생각한다.
딱히 내 건 보면서 니껀 왜 숨기느냐의 이분법적 따짐으로 왈가왈부하는 내 성격상엔 맞지 않을 뿐,
오래 전 사람들 궁금할 때 있어도
쉬 접근하거나 연락을 해보기는 쉽지 않은데
괜함...괜시리...뭐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지레짐작이기도 하지만 항상 먼저 떠오르는 게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일까? 라는 염려 탓
대면해서 내 이야기 끊지 않은 채 끝까지 들어 주지 않고서야 마음 전달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할테기도 하고
오래 전과 지금의 내 감정과 내가 궁금해하는 옛동무들의 그런 감정들이 사뭇 다르다면 아마도 어색해지지 않을까...
맺기도 끊기도 참 쉽지 않은 사람과 사람의 연
연락해서 뜬금 없다는 무안으로 머쓱해지는 경우도 있을테고
내 무소식으로 인해 서운함으로 잊혀져가는 경우도 있을게다
뜬금없다 속핀잔 듣는 것보다야 무소식으로 인한 스스로에겐 들리지 않는 속핀잔이
차라리 속 편타하는 게 현대인의 보편적인 삶은 아닐까...
너나할 것 없이 그러지 말아야할 상황이나 판단 속 스스로의 결정으로 살아간다.
거짓과 속임수는 아니지만 책임 또한 애써 피할 길을 찾으려 든다.
옛말 표현에 역지사지라는 것도 있고
상대편의 입장도 생각하라느니 존중하라느니 측은하게 바라보라는 선한 마음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내 눈 앞쪽에 보여지게 하는 게 아니라
내 뒷모습에 두기에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만 보여지게 한다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 뒷유리창에 초보운전 이라고 붙여두는 것처럼
내가 질 책임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갖게 하려는 뜻이 보일 뿐,
내가 이러저러하니 니가 아러저러 해줘야 되고
나는 이러저러하니 니는 이러저러 해라 그래야 좋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남탓이다.
내 탓으로 하면 긍정적이기 쉽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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