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까다롭고 까탈스러워 곤한 길의 미식가 본문
내일 산에서 먹을 도시락을 만들었다(?)
만들었다고 하기보다 그냥 이것 저것 잡다한 것들을 가위로 잘라(도마에 놓고 칼질 하는 것 보다 편해서다)
짜고 단 음식을 싫어해서 설탕이랑 소금을 거의 안 먹기에 그냥 마른 멸치를 몇마리 넣어 간을 대신하고
평생 쌀 삶은 밥 세끼 먹고 살자고 아등바등거렸는데 이젠 진종일 쌀 한톨 안 먹어도 서운치 않은 나이가 되어진 것 같다.
몇 년째 김치를 담궈볼려고 작정만 한 채 여태 차일피일 미루다 김치 없는 식사를 여러달 째 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그러고 보면 나는 절대 까탈스런 남자는 될 수가 없을 법 한데 살면서 여자들에게 까탈스럽고 까다로울 것 같다라는 말은 몇 번 들었다...
평생의 소원이(?)따뜻한 밥상이었는데 여직 제대로 소원을 이루지 못한 걸 보면
소원이란 건 역시 남북통일만큼이나 쉬운 건 아닌가 보다...
차라리 내가 그렇게 해 주는 게 더 편한 걸 보면 꿈은 역시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내 지론이 맞다 시푸다...
밥은 내가 하는 게 더 맛있어서 안 하겠다고 하더라...
라면에다 계란을 넣던 안 넣든 끓기 전에 면을 넣든 끓기 시작하면 넣든 스프를 먼저 넣든 나중 넣든
게란을 넣든 안 넣든 면을 다 먹은 후 밥을 말든 미리 넣어서 면과 같이 먹든 김치가 있든 없든
고기가 있든 없든 국이 있든 없든 반찬이 많든 적든 아침이 빵이든 밥이든 누룽지든 뭐든...
자장면을 먹자든 짬뽕을 먹자든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든 찍어 먹든
좀체 내 주장을 내세우지도 않고 주면 주는대로는(짐승은 아니니까) 먹지 않더라도 없어서 못 먹는 타입이고 보니
무어 까탈을 부릴 일이 있을까만 내게 사랑하는 아내가 있어서 따뜻한 밥상을 준비 해준다면
내 식성 아내 식성에 맞게 이저런 대화로 서로의 입맛을 알아는 가야겠지만...
밥이사 밥상이사 여자가 하든 남자가 차리든 그딴 게 무슨 대수랴,
먼저 귀가했거나 하고 싶은 사람이 하면 되는 것이고 오늘 먹이고 싶은 게 있을 땐
직접 만들어서 사랑하는 사람 맛있게 먹는 모습 보면 좋은 것이고
진밥 신 김치 보다 고슬고슬한 밥과 갓 담근 김치를 좋아한다는 말만 했다하면
곧바로 여자들은 그런다...까탈스럽고 까다롭다고...
예의 그말... 주면 주는대로 맛있게 먹어줘야 한다면서 말이지...
그렇지만 나는 키우는 강아지는 아니잖은가...
밥을 하고(?) 있는데 윤기랑 선옥이가 생각 난다.
나보다는 어린 사람들이다.
위태로운 듯 보여지는 그들의 장난끼는 가까이 들여다 보면 신기하게도 절대 위태로운 결과를 만들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살아가는지 못 봤지만 참 예뿌다.
성실하고 봉사 자주 하는 그들이 음식도 곧잘 하는 선옥이가...
살아 오면서 기억나는 사람 잘 없다.
지인 이라고 할만한 사람 더러 있기는 하지만 몇 남지 않은 보고 싶어지는 사람들 중 그들은 살갑게 느껴지는 사람들이다.
손익 계산을 해볼까?
괜히 청승스럽게 하지 말고 그냥 매식을 하는 게 더 나은지...
사먹는 음식의 단점은 지나치게 달고 짜다는 것이고 장점은 반찬을 골고루 먹을 수 있게 여러가지 내어 주는 곳을 찾는다는 것,
아침엔 커피 두유 옥수수 식빵 토스터 한조각 계란 프라이 두개(꽤 먹는 것 같다)
점심엔 사진의 셀러드 짬뽕
저녁엔 라면이나 누룽지 아니면 매식
삶도 그러하지만 먹고 사는 거 참 지긋지긋하다...
'툭하면 바람난 정부처럼 몰래 집을 빠져나가 산골이며 바닷가에 숨어 사는 애인을 찾아다녔다.
순전히 세상물정 모르는 때 묻지 않은 순진한 애인이 좋아서 이 알량한 사랑은 기둥뿌리 썩는 줄도 몰랐다.'
...이용한의 은밀한 여행 중에서...
나는 스스로를 여행자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애도 현재도 언제나 여행을 하고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인생이 여행자 같아서 하는 말이다.
돌아보니 내 인생은 누구 표현처럼 한 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평생 방랑벽이 도진 사람 같기도 하다만
뿌리를 내리기 싫어해서 여행자 같이 살았던 것은 아니다.
다리가 아프고 때론 상처로 마음이 아프고 풍찬노숙 같았던 인생에 곤하고 많이도 망가졌지만
이제는 이게 내 운명이고 비극이고 기쁨이고 행복으로 삼는다.
어린시절 타지에서 하숙과 자취로 학교를 다녔었고
혼자가 되고 나서는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살았었으니 그건 다 내 선택이었고 내 탓이었다.
그래,
누가 나에게 방랑벽이 도진 뿌리 내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든
나는 까다롭고 까탈스러워 음식은 아닌 야금야금 길을 먹어치우려는 길의 미식가러나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도 지나지 않는 길 사람을 만날 확률보다 맷돼지를 만날 확률이 더 높은 숲길
작은 계곡을 따라 실낱처럼 이어지다 이내 은밀한 숲 속으로 꼬리를 숨기는 무섭도록 적막한 길
숲 속에 사는 영혼들에게 나무의 정령들에게 늘 고개를 숙인다.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잠시 이 숲에 때 묻은 발을 들여 놓아도 되겠느냐고...
숲의 정령들이 들어 오라고 손짓하듯 흔들리는 하늘 잠긴 키 큰 나뭇잎을 본다...
나는 행복하다...
걷다가 죽을 수 있는 행복이 남아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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