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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내 슬픔 등에 지고 가는 사람

까미l노 2015. 3. 18. 14:19

꼴에 눈이 높아서는 아니다.

집을 떠나 어딘가에서 여행중일 때 음식도 잠자리도 가리지 않을 때도 더러 있고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말리지 않는다는 우스개 말도 있지만 

가겠다는 사람이야 어떻게 막을 수 있으랴만 오려는 사람이야 눈 높은 꼴을 하지는 못했어도 가리고 추려서(?)받는데... 

 

 

 

 

언제?

바로 지금...

 

온통 제재뿐이라 어느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시간이 더디 흐르는 것만 같아 애 태우던 청춘의 시기 때야

조금만 더 지나면(하루라도 더 빨리 나이 들어)다방에도 갈 수 있고 길거리에서 담배도 편하게 피워볼 수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밤 새 함께 할 수도 있다는 그런 희망으로 나이 들기를 학수고대 했었지,

 

아무것이나 무엇이든 다 해 볼 수 있는 때의 나이를 살 적엔

시간이 더디만 흐르던 그 청춘의 시기가 평생 변하지 않는 것처럼 답답했고

사람의 일생이라는 세월을 온전히 다 살아내기엔 너무 지루해서

사십까지만 산다는 굵고 짧게 살자 라는 유행어를 좋아하기도 했었다.

 .

 

그 끔찍하고 지루하다고 까지 느껴 캄캄한 청춘이라고만 느꼈던 시기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른의 시기는 언제 왔었다가 언제 지나가 버렸는지 미쳐 채감하지도 못했던 것처럼

아무런 기억 한조각도 남아있지 않은 듯 이루어진 것조차 하나 없는 이미 이 나이에 살고 있는 것을...

 

맞다... 

언제? 가 아니라

언제나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몰랐기라도 한 것처럼 무심결에 살아가던 날들인 것이다...

 

 

 

행복하다는 사람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람이라면 건들고(?)싶지 않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누가 있어 내 슬픔을 그의 등에 지고 가려고 하겠는가?

난들 그의 슬픔 내 등에 지고 가겠다고 한들 선뜻 기대어 주려고 하랴,

 

바삐 가는 안타까운 시간은 나의 시간이기만 한건지도 모르는데 누구를 재촉하겠는가?

언제나 아서라 말어라 했는데 자주 깜빡 잊는다 참 어리석다.

 

아닌줄 알게된들 후회는 시간이 지난 후 한다면 그 무슨 소용 있으랴만

때 늦은 후회라는 것이 때로는 씁쓸한 비애보다 스스로를 다둑이는 데 한결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자고 일어나면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무심결이 되곤 한다.

 

못난 사람의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긴 하다지만 아닌 것일텐데도 행여 그러면서

혹시라도 라는 핑계로 둘러대고 자빠진 스스로를 한심한 듯 비웃는다.

 

한 해가 다할 쯤 한장 남게 되던 달력 따위 휙 넘겨버리듯

지겨운 놈의 세상 빨리 지나가자고 했었는데 지랄 같은 이 아쉬움은 뭐란 말인가,

밤이 깊어져도 온화하지가 않고 평화롭지도 못하니 매일 새롭던 내일은 어디에다 잃어버렸는지

잠 들면 상상으로 만들어 꿀 수 있던 개꿈의 행복조차 기다려지지가 않는구나...

 

꽃바람 따라 왔으려나,

저녁답에 울던 새의 울음소리는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오묘한 소리더니

여지껏 창가를 떠나지 않고 수풀 속 어딘가에서 울어대고 있다. 

 

 

그러고 보니 벌써 두 번째...

옷 갈아 입으면서 집에 두고온 전화기가 생각나는 것을 새 울음 소리를 듣고서나 알게 되는구나, 

곁에 두면 울리지 않던 벨소리가 하필이면 이럴 땐 자주 울리게 되곤 했는데 그런들 뭐,

어쩌겠나...

드디어는 나도 늙어가는가 보다...

 

그래서 오늘 하루 조바심이 났었나 보다...  아마도...며칠은 이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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