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꽃말의 유래 / “꽃의 언어”(The Language of Flower) 본문
문화는 서양보다 동양이 훨씬 앞서 있었다. 4천 년 전 이집트인들은 연꽃 재배에 몰두했고 중국인들은 황제를 위해 광대한 정원을 만들었다. 오늘날 정원의 나라라면 영국을 먼저 꼽지만 영국인들이 정원에서 독창성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불과 250년 남짓 밖에 안 된다.
한때 서구문화에서 성행하던 꽃말도 실은 오토만제국(터키)에서 유래한다. 남녀 사이에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던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꽃으로 의사를 소통하는 관행이 하렘을 중심으로 성행했다. 사랑하는 이가 아이리스를 몸에 지녔다면 그것은 “노”를 의미하고, 무스카리를 보여줬다면 그것은 “예스”를 의미한다는 식이다.
18세기 초 오토만 제국이 수도 이스탄불에 외교사절인 남편을 따라갔던 한 여성이 이런 풍습을 자세히 적은 편지를 영국의 친구에게 보냈다. 이 편지가 돌려 읽히면서 꽃말에 대한 관심이 유한계급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1820년 “꽃의 언어”(The Language of Flower)이란 책이 나오고 뒤따라 비슷한 책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꽃말문화는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미혼의 귀족 처녀에게 정절을 감시하는 샤프론이 늘 따라다니고, 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꽃의 언어는 남녀 간의 은밀한 의사소통에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꽃을 주었을 때 받은 사람이 그것을 입술에 대면 “예스”이고 꽃잎을 하나 뜯어내면 “노”를 의미했다. 또 금어초를 보내면 “노”를 의미했다. 빨간 겹장미는 “사랑”을 의미했고, 흰 백합은 “순결”을 뜻했다. 수선화는 “잘난 체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했고, 디지틸리스는 “불성실”을 의미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꽃이 꽃말을 갖게 되고, 이를 다룬 책이 늘어나면서 혼선도 빚어졌다. 작약을 어떤 꽃말사전에서는 “수줍음”으로 나오는데 다른 사전에는 “치욕”으로 나오는 식이다.
세상이 달라져서 이제 남녀 간의 의사소통을 막는 타부가 거의 다 사라졌다. 사람들이 선물로 주고받는 꽃의 종류도 크게 줄어들었다. 꽃말로 뜻을 전하던 시대는 지났지만 그것이 지니는 문학적 상상력은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