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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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까미l노 2015. 2. 5. 10:40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은 모란도(牧丹圖)를 보고 모란이 향기 없는 것을 알고서 이르기를, “절등하게 고와도 벌과 나비는 찾아오지 않겠다.” 했으나, 나는 경험해 보니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다만 꿀벌이 없는 것은, 꽃은 곱지만 냄새가 나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밀봉시(蜜蜂詩)를 다음과 같이 지었다.
나라 위해 몸 바치니 참으로 지성이로구나
마음껏 임금님을 섬기려고 뭇 꽃송이에 사냥을 간다
곱게 핀 모란에는 왜 한 번도 아니 오느냐 하면
꽃 가운데 부귀란 이름 띤 걸 피함일레
물리학(物理學)에 박흡한 이로서는 상고해 봐야 할 것이다.
殉國忘身卽至誠
勞心事上獵羣英
牧丹叢裏何曾到
應避花中富貴名

이익은 모란꽃에 벌과 나비가 찾아오지 않는 것은 꽃은 곱지만 냄새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한시 작품에서는 벌이 여왕벌을 섬기기 위해 부귀한 모란꽃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여왕벌과 모란꽃 사이에서 벌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성심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모란은 신라 진평왕 때에 들어왔다고 알려져 있으나, 고려시대에 이르러 많이 재배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사』 『고려사절요』등에는 모란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현종 때에는 대궐 안 사루(紗樓) 앞에 손수 모란을 심었으며 예종은 이 사루에서 모란 시를 짓고 유신들에게 명령하여 화답시를 짓게 하였는데 그 이전 덕종으로부터 숙종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모란꽃을 옳고 신하들은 이에 화답하는 행사가 되풀이되었다고 한다.

고려 중기 이무에는 궁중은 물론 권문세가들이 서로 다투어 진귀한 품종을 집안의 정원에 심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 호화롭고 사치스럽다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기홍수와 차약송이 어느날 관청에 앉아 모란 기르는 법을 논했는데 사람들이 호화사치를 숭상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모란으로 상징되는 부귀가 지나쳐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조선 효종 때에 정승 이시백(李時白)의 집에 아름다운 모란꽃 나무가 있었는데 마침 꽃이 활짝 피었다. 효종이 이 말을 듣고 중환(中宦)을 보내어 이를 구하시니 시백이 정색하여 말하였다.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일국의 정승이 되어 임금님을 보필하는 책임을 졌으니 어찌 이목(耳目)의 완호(玩好)하는 물건으로 임금을 섬기리오”
그러고는 즉시 뜰 아래 내려가 모란을 베어 버리고나서 북향재배하고 아뢰었다.
“신이 정도로써 전하를 섬기지 못한 고로 오늘에 이르러 전하께옵서 신으로 하여금 바르지 아니함을 행하게 하시니 만일 이와 같을진대 장차 뇌물이 성하여 국가의 위태함이 조석에 있을지라. 신이 보필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는 죽어도 마땅하오나 이는 받들지 못하겠나이다.”
중환이 돌아와서 이러한 사실을 자세히 고하니 효종이 듣고 대단히 기뻐하고 그 후로 시백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국정에 힘썼다고 한다.
이시백이 기르던 모란은 중국에서 건너온 금사낙양홍(金絲洛陽紅)이라는 품종이라고 한다. 이름난 모란 품종을 왕까지 탐내자 이시백은 뇌물로 인해 임금을 보필하지 못할까 하여 모란을 베어버린다. 여기에서 모란은 뇌물인 동시에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방해하는 사물의 의미를 지닌다.



신라 설총(薛聰)의 「화왕계」에서는 모란을 꽃들의 왕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신문왕은 이야기를 듣고 낯빛이 변하여 가로되 “뜻이 깊은 이야기로서 왕자의 경계(警戒)가 될 만하니 곧 글을 만들어 오라”고 하였다 한다.

좋은 봄날에 현란하게 핀 백화의 왕 모란이 수많은 꽃 위에 군림하자 천자만홍(千紫萬紅)의 꽃들이 다투어 화왕의 궁궐에 입조할 때 요염한 절세미인 장미가 아양을 떨며 화왕에게 말하기를 “첩이 일찍 왕의 염덕(念德)을 듣고 흠모하는 마음으로 찾아 왔으니 행여 버리지 않으시면 하룻밤 잠자리를 같이 하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또 포의한사(布衣寒士)로서 길가에 있던 할미꽃[백두옹]이 구부리고 와서 화왕에게 그 곁에 있으면서 일하기를 원하며 요염한 여자에게 현혹되지 말기를 간하였다. 그러나 화왕은 벌써 요염한 장미에게 빠져서 할미꽃의 충언을 알면서도 그것을 듣지 않았다. 그것을 본 할미꽃은 분연히 왕에게 아뢰기를 “신이 처음에는 왕이 총민함이 의리를 깨달으리라 믿었으나 가까이서 보니 그렇지 못하외다. 예로부터 임금이 요염한 여인을 가까이하게 되면 충직을 소원하게 하여 마침내 패망을 부르지 않은 적이 드뭅니다. 서시(西施) 같은 요희(妖姬)가 나라를 뒤집고 맹가(孟軻) 같은 현인이 뜻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인즉 신인들 어찌 하리까” 하고 왕에게서 떠나려 하자 왕도 그제서야 깨닫고 할미꽃에게 사과하였다

모란이 꽃들의 왕을 상징하는 전통은 조선시대의 의인소설에서도 계승된다. 이이순(李頤淳)의 「화왕전(花王傳)」에서도 송대(宋代)의 「낙양모란기(洛陽牧丹記)」에서처럼 모란의 일종인 요황(姚黃)을 왕으로 추대하고 또 다른 종류의 위자(魏紫)를 왕후로 삼고 있다.

임제(林悌)의 <화사(花史)>에서는 모란은 매화 · 부용과 더불어 군왕으로 등장한다.

모란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이다. 모란이라는 이름은 종자를 생산하지만 굵은 뿌리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수컷의 모습이므로 모(牡)자를 붙였고, 꽃색이 붉기 때문에 란[丹]이라 힌 데에서 유래한다. 나무의 높이는 2m 정도이며 가지가 굵고 털이 없다. 잎은 어긋나고 두세 개로 갈라지기도 하고 표면에는 털이 없다. 꽃은 5월에 피고 지름은 15㎝ 이상이고, 홍자색이지만 백색·홍색·담홍색·주홍색·농홍색·자색 및 황색이 있다. 꽃잎은 5∼7개인데 많은 꽃잎이 달리는 품종이 개발되어 있다. 꽃은 2∼3일 동안 피지지만 꽃잎이 많은 종류는 7∼10일간 피기도 한다.

모란은 화려한 색채와 풍성한 모습 때문에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문학적 전통으로는 꽃 중의 왕으로, 인간 중에서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상징되며, 무속신화에서는 세상의 통치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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