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변산바람꽃 본문
(변산바람꽃)
몰리에르는 인간의 위선과 허영을 풍자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출세작은 1659년에 공연된 '재치를 뽐내는 아가씨들'(Les Priceuses ridiculs)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공연된 이 작품의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 파리 귀족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바람이 잔뜩 들어있는 하급 귀족의 딸과 그녀의 사촌 자매가 있었다.
스스로를 대단한 귀족가문의 숙녀로 착각하고 있는 두 자매에게
신사 두 사람이 청혼을 했으나 하찮은 신분이라고 면박을 당한다.
두 남자는 이 아가씨들에게 당한 수모에 대해 복수를 하기로 한다.
그들은 재치가 뛰어난 하인과 마부를 파리의 귀족으로 꾸몄다.
하인과 마부는 세련되고 우아한 귀족사회의 말솜씨와 재치로
허영에 들뜬 두 아가씨를 완전히 반하게 만들었다.
그 작업이 절정에 이를 무렵 그들의 주인이 현장을 덮쳐서
하인들의 귀족 옷을 벗기고 누더기 내의를 입은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하여 두 아가씨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너도바람꽃)
'너도바람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이 있다.
'너'라고 부른 '나'는 과연 누구일까? 그건 변산바람꽃임이 분명하다.
너도바람꽃보다 먼저 피는 바람꽃은 그녀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서풍(西風)의 신, 제피로스(Zephyros)는 말한다.
"변산아 나는 너를 바람꽃이라 한 적이 없다. 진정한 바람꽃은
일찍이 나의 아름다운 연인이었던 아네모네(Anemone)들뿐이다"
한마디로 변산아가씨는 바람꽃도 아니면서 바람만 잔뜩 들어가지고
큰 은총이나 베푸는 것처럼 너도바람꽃의 신분상승을 시켜준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10 여종의 바람꽃속의 꽃들과는 달리
이 두 가지 꽃은 너도바람꽃속(Eranthis속)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분류학적으로 보면 여러 차이가 있겠지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변산과 너도바람꽃 꽃술 주변에 있는 연두색, 노란색의 꿀샘이다.
꿀샘은 원래의 꽃잎이 변형된 것이고, 꽃잎으로 보이는 것은 꽃받침이라고 한다.
(풍도바람꽃)
'변산'과 '너도'는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진짜 바람꽃들을 피우기 전에
망신을 당한 시골 아가씨들 처럼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린다.
변산바람꽃이나 너도바람꽃이 보통 바람꽃들과는 다른 속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본의 아니게 두 꽃의 흉을 본 것 같다.
꽃이나 사람이나 귀하고 천한 차별이 어디 있겠는가.
억지로 귀하게 보이려 하면 오히려 천박해 진다.
인디카 사진 동호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