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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의 기세 숫오름 군산

까미l노 2012. 11. 13. 16:42

"쌍봉에서 길게 뻗어나간 기세가 멋"
[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3> 군산
등록 : 2011년 02월 08일 (화) 21:36:59
최종수정 : 2011년 02월 08일 (화) 21:36:59
김철웅 기자 jemin9062@yahoo.co.kr

▲ 대평리에서 바라본 군산 남면. 김철웅 기자.
다양한 탐방로에 정상서 바라본 경관은 '백미'
생성기원 ·진지동굴 등 많은 이야기 담은 '산'


군산의 멋은 정상 부분 우뚝한 두 뿔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뻗은 기세이고 맛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빼어난 경관이다. 도내 오름 가운데 비고는 4번째로 높고 좌우로 긴 '어깨' 덕에 면적은 최대를 자랑한다. 특히 군산은 다양한 스토리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창천리 선비에게 글을 깨우친 용왕의 아들이 중국의 곤륜산을 옮겨왔다는 '신비로운' 생성 설화와 함께 1000년전 화산이 터져 생겨났다는 '가까운' 생성 기원, 일제의 진지동굴까지 많은 얘기와 사연을 담고 있는 '오름'이다.


정상을 안덕면 창천리 564번지에 두고 있는 군산(軍山)은 '산'이다. 이 지역 어른들은 예부터 "제주도에 산이 3개 있는데, 한라산·산방산과 함께 군산"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군산의 다른 이름인 '군메·군뫼·굴뫼오름' 등은 싫어한다.

군산은 해안가에 위치한 탓에 표고가 334.5m에 불과하지만 비고는 280m로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오백나한 389m·어승생 350m·산방산 345m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특히 쌍선망월석(雙仙望月石)이라 불리는 정상의 두 뿔을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뻗은 '어깨' 덕에 둘레 8111m에 면적 283만6857㎡로 도내 오름 가운데 최대(2위 어승생오름 254만3257㎡)다.

어원은 군식구와 군말 등 '가외의' '쓸데없는'의 뜻을 가진 '군'에 산의 우리말인 '뫼(메)'가 더해져 나중에야 갑자기 솟아나 가외로 생겨난 산이라는 뜻과 함께 정상의 두 뿔을 중심으로 뻗어나간 능선이 군막(軍幕)을 쳐놓은 것 같다고 하여 군산이라 부른다는 얘기도 있다.

고려 목종 10년 '상서스러운 산(瑞山)'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근거, 서산이라 불리기도 했다. 결국 상서로운 산이라는 서산과 부정적인 '가외의' 군산은 서로 모순이라는 점에서 '군막을 닮았다'는 군산에 마음이 기운다.

▲ 군산 탐방로 A=예래동 출발점 B=1차갈림길 C=정상 D=2차갈림길 E=대평쪽 출발점 F=창천쪽 출발점 G=감산쪽 출발점
'공식적인' 군산 탐방로는 동쪽자락에 있다. 제주종합경기장에서 평화로를 타고 창천삼거리(좌회전)를 거쳐 36km다. 또 다른 서쪽 대평마을 쪽 탐방로 역시 창천삼거리(우회전)와 안덕계곡삼거리를 거치면 38㎞다.

동쪽(A)에서 출발할 경우 갈림길(B)에서 오른쪽은 사자암을 거쳐 정상으로 바로 가고 왼쪽으로 돌면 진지동굴을 만난다. 갈림길(D)에서 오른쪽은 정상, 왼쪽은 구시물을 거쳐 산책로로 이어진다. 분화구가 함몰돼 검은손 군락지가 돼 버린 '검은덕'과 '애기업은돌' 등이 기다린다.

애기업은돌은 구시물 출발 10여분 경과 지점에서 아래쪽으로 나있는 길로 5분여 내려가면 만날 수 있다. 길이 막혀 있어 되돌아와야 한다. 다시 서쪽으로 15분 정도 가면서는 길 왼쪽에 신경을 써서 '군산산책로' 이정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계속 나아가단 되돌아와야 한다. 역시 사유지에 막혀버렸다. 군산산책로 이정표에서 오른쪽 숲으로 올라가는 리본을 따라가면 서쪽 입구(E)에 도달하게 된다. 여기서부턴 포장된 도로를 따라 700m가량 올라간 뒤 계단 330여개를 올라가면 서쪽 정상이다. 창천리(F)와 감산리(G)에서 시작되는 코스도 있다.

군산은 정상부에 화구가 없어 도내 102개 있는 원추형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생성 시기가 수십만년전인 비교적 오래된 화산체로 본다. 오름 중하부까지의 조면안산암에 이어 정상은 현무암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화산이다.

퇴적층의 차별침식에 의한 기암괴석, 남사면 계곡에 발달된 웅장한 퇴적층의 수평층리 등 군산은 제주도 최대의 화산쇄설성 퇴적층으로 이뤄진 기생화산으로 평가된다.

특히 화산체 정동 부분까지는 조면안산암이 노출되다가 남쪽으로 진행되면서는 같은 표고에서도 조면암 위에 송이가 노출되는 점으로 미뤄 2차 분출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925년의 일본인 나카무라처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1007년 화산폭발 기록이 군산"이라고 추정하는데는 과학적으로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정상부분만 2차분화의 결과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 1000년전에 분출했다면 그렇게 봐도 문제는 없다"면서도 "그러나 이게 군산 전체를 만든 것은 아니다. 조면안산암이 창고천과 월라봉 퇴적층하고 연결돼 있어 비교적 오래됐다"고 지적했다.

분화구의 위치는 정상부분 2개의 뿔 사이 남쪽에 있었으나, 그 남쪽 사면이 무너져서 매몰되면서 중심부분이었던 검은덕만 남은 것으로 강 소장은 추측했다.

군산 대부분이 침엽수림 및 조림지역이며 정상부 등에 초지대가 형성돼 있다. 해안 인접, 사철나무·까마귀쪽나무 등의 해안식생 요소의 분포도 많은 편이다.

▲ 군산 검은덕. 김철웅 기자.
검은덕 등에서 관찰되는 바위손군락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보이며 매우 빼어난 경관을 만들어준다. 또한 세월의 흔적이 묻은 진지동굴 입구 등엔 천연동굴과 마찬가지로 족제비고사리·도깨비쇠고비·곰비늘고사리·설설고사리 등 다양한 양치식물 생육공간이 되고 있다.

 

▲ 군산 거미고사리. 김철웅 기자.
김대신 연구사는 "거미고사리는 규모가 큰 오름의 분화구 벽면이나 동굴입구 등에 분포, 도내 자생지가 매우 제한적이고 개체수도 매우 적은 편"이라며 "군산처럼 해안에 인접해 분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군산의 일본군 진지동굴은 모두 8개가 발견됐다. 정상부 서사면 9부 능선의 갱도는 총길이가 120m로 군산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D지점 인근 의 진지동굴은 유류고나 탄약고로, 멀리 예래동과 대평리가 보이는 남사면 7부 능선의 진지동굴은 산포가 설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봉우리 밑에도 진지동굴이 있으나 규모는 작다.

군산의 맛은 시원함이다. 북쪽으로 한라산을 비롯, 동쪽의 범섬을 출발해 중문·화순의 모래사장, 멀리 형제섬·송악산·가파도·마라도와 서쪽 저 멀리 산방산까지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한폭의 그림이다. 산방산 해넘이는 물론 군산 남쪽바다의 경관은 앵글의 고민 없이 '굿샷'이다.

대평리 쪽에서 바라보는 게 제 맛이라곤 하지만 제주시에서 평화로로 달려가다 제3동광교를 지날즈음 멀리 보이는 군산의 실루엣도 나름 맛이 있다.

"방치된 일본 진지동굴 평화교육 자원화 절실"

●인터뷰/박찬식 역사학자

▲ 박찬식 역사학자.
"군산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역사학자인 박찬식 박사는 "군산 정상에 오르면 모슬포 송악산에서 서귀포 해안까지 조망할 수 있어 군사적 요충지임을 누구나 알 수 있지 않느냐"는 말로 군산내 일본군 진지동굴(갱도진지)의 숫자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박 박사는 "군산엔 보병과 포부대 등이 주둔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군산은 일본군 제245연대 주둔지로 추정되는 논오름·월라봉 등과 함께 미군의 제주도 상륙에 대비한 강력한 진지구축 장소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태평양전쟁 말기 제주도에서 옥쇄를 준비하던 일본군에게 서남부 해안은 가장 유력한 미군의 공격 예상로였다"면서 "이에 따라 안덕면 해안은 모슬포지역과 함께 가장 먼저 진지 구축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군산 진지는 관통된 '1'자형뿐만 아니라 'ㄱ'과 'ㄷ'자형 등 다양한 구조를 굴착됐다"고 소개한 박 박사는 "가장 긴 게 130m에 달하고 폭은 0.8~2.5m, 높이는 1.1~2.1m 수준"이라고 밝혔다.

박 박사는 군산을 비롯한 도내 진지동굴에 대한 체계적인 보존과 '평화의 섬'을 연계한 평화교육 자원화 등 효율적 활용을 제안했다.

그는 "군산 동굴진지는 등록문화재로 올릴 가치가 충분하다"며 "국가 차원의 등록문화재 지정은 물론 제주도문화재 지정도 언젠가는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 박사는 "대부분의 동굴진지 등이 관리되지 못하면서 오름 탐방 때 찾아가기 어렵다. 오름에 가도 갱도가 있고 굴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책을 주문했다.

그는 "모슬포 알오름 밑으로 일부 구간은 보호시설이 있으나 여전히 접근하기 어렵다"면서 "가치가 있는 동굴진지 등은 오름 탐방로와 더불어 탐사를 위한 안전시설을 마련, 평화교육의 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시걷는 오름나그네 전문가 자문단 △인문=김창집 탐라문화보존회장 △역사=박찬식 역사학자 △지질=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 △식생=김대신 한라산연구소 녹지연구사 △정책=김양보 제주도WCC총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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