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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병곳오름

까미l노 2012. 11. 13. 16:18

의연함이 매력인 진짜 '자연산' 오름
그 흔한 돌계단 하나 없는 '천연의' 탐방로
토심 깊어 '발맛'도 일품…코스 왕복에 80분
등록 : 2012년 05월 16일 (수) 10:00:37 | 승인 : 2012년 05월 16일 (수) 10:07:13
최종수정 : 2012년 05월 16일 (수) 10:06:37
김철웅 기자 jemin9062@yahoo.co.kr

<다시걷는 오름나그네 26. 병곳오름>

 

병곳오름은 의연함이 멋이다. 비고가 도내 오름 가운데 상위 4분의1에 속하지만 우쭐대지 않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비굴해 보이지도 않는 형상이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서 있을 뿐이다. 특히 병곳오름은 말 그대로 '자연산'이다. 탐방로 어디에도 사람의 손을 거친 돌계단 하나 없다. 여느 오름에는 타이어매트와 목재계단도 모자라 야자수매트까지 깔려도 병곳오름은 자연 상태 그대로다. 탐방로의 화산재 토심도 깊어 한발 한발 내디딜 때 느껴지는 '발맛'이 좋다. 능선의 숲길과 정상부의 개활지 등 탐방로 구성도 다채로운 병곳오름이다.

병곳오름은 비자림로와 가시리사거리를 잇는 녹산로 서쪽인 표선면 가시리 산8번지 일대(표고 288.1m)에 위치하고 있다. 원형분화구와 북동향의 말굽형 화구를 갖고 있는 병곳오름은 비교적 큰 오름이다. 비고가 113m로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86번째로 높고 면적은 48만2903㎡ 56번째로 넓다. 저경 896m에 둘레는 2584m다.

이름은 '병곳(벵곶)오름' 또는 '안좌오름'·'봉귀악' 등으로 불리다 병곳오름으로 정리됐다. 병곳의 유래는 한자로 병화악(屛花岳) 등으로 표기됐던 점으로 미뤄 오름에 병꽃풀이 많았던 데서 찾는다. 안좌오름(安坐岳)은 기러기가 둥우리에 앉은 형상이어서 기러기 '안'이 들어간 안좌(鴈座)에서 비롯됐다는 설, 봉황새가 보금자리에 돌아온 지형지세여서 봉귀악(鳳歸岳)이라 썼다는 설 등이 있다.

▲ <병곳오름 탐방로> A=입구 B=계곡 시작 지점 C=갈림길 D=동쪽 개활지 E=최정상 F=서쪽 개활지 G=서쪽출구(입구) H=분화구 I=번널오름 J=녹산로
병곳오름은 제주시(종합운동장)에서 34㎞다. 번영로를 타고 가다 대천동 사거리에서 우회전, 1㎞ 진행하면 만나는 녹산로(탐방로 지도 J) 상 가시리 방면으로 8㎞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난 시멘트 포장길로 들어서야 한다. 170m 위쪽은 번널오름 탐방로 입구로 이어진다.

샛길을 따라 남쪽으로 700m 들어가면 병곳오름 안내판이 있다. 그런데 여기가 탐방로 입구가 아니다. "가시리 설촌의 역사를 품고 있는 …"으로 시작하는 주홍색의 '병곳오름' 안내판에서 시멘트길로 30m 더 가야 탐방로 입구다. 오름 입구를 알려주는 그 흔한 안내판도 없다. 따로 주차공간도 마련돼 있지 않고 노폭도 좁아 노견에 바싹 붙여 주차해야 한다.

입구(〃A)출발해서 7분가량 탐방로를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계곡이 시작되는 지점(〃B)이 나온다. 높이 5~7m 정도의 스코리아괴가 큰 입을 떠억 벌리고 있다. 그 옛날 용암을 분출해냈던 또 하나의 화구로 추정된다. 절벽 같은 스코리아괴 위에 수령 150~200년 정도의 구실잣밤나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조금 올라가면 갈림길(〃C)이다. 오른쪽으로 가도 원형분화구를 지나 정상으로 이어지지만 통행이 적은 탓에 가시덤불 아래와 옆을 통과해야 하는 곳이 많아 왼쪽 길을 택하는 게 훨씬 낫다. 완만한 숲길을 5분가량 올라가면 동쪽 개활지(〃D)가 맞이한다. 좌우로 병곳오름 남·북쪽의 오름군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병곳오름의 최정상(〃E)이다. 출발한지 20분이다.

병곳오름은 분화구(〃H)가 있지만 깊지 않고 북동쪽에 또 하나의 터진 화구가 있어 원형 분화구를 갖는 대부분의 오름처럼 분화구를 일주하는 탐방로가 개설돼 있지 않다. 그래서 병곳오름은 동쪽 입구에서 출발해 정상을 거쳐 서쪽으로 나와 바로 북쪽(정상간 직선거리 약 820m) 번널오름(〃I)까지 '세트로' 오르기도 한다. 아니면 반대로 번널오름을 출발, 병곳오름까지 탐방하는 경우도 있다.

병곳오름의 경우 최정상을 둘러싸고 해송 등이 웃자라 경관이 시원치 않다. 그러나 서쪽 개활지의 풍광은 오름들이 담긴 시원한 한폭의 풍경화다. 갑선이오름·설오름·영주산·모지오름·개오름·비치미오름·따라비·새끼오름·성불오름·대록산·소록산과 한라산을 배경으로 구두리오름·감은이오름·쳇망오름·붉은오름과 ·여문영아리·물영아리·민오름 등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정상을 출발,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조금 내려가면 오름 정상부 서쪽 부분의 개활지(〃F)가 끝나고 숲길이다. 서쪽 입구(〃G)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약 15분 정도다. 중간 중간 꽃이 노란 금난초와, 꽃이 눈같이 흰 은난초가 반긴다. 그리고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춘란도 몇몇 개체가 눈에 띈다.

▲ 병곳오름에서 자생하는 다양한 야생화들. 왼쪽부터 국수나무꽃, 금난초, 은난초, 찔레꽃.
병곳오름 서쪽 입구에서 번널오름으로 계속 가도 되지만 병곳오름에 충실하기 위해 갔던 탐방로를 되돌아가는 것도 좋다. 급하게 오르거나 내려올 때 보지 못했던 봄꽃들을 만날 수 있다. 고은이 시 '그 꽃'에서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내려갈 때 보았네"했던 것처럼 돌아가는 길에는 마음이 여유로워 눈이 밝아지는 느낌, 그것이다. 사실 은난초는 되돌아오는 길에 만났다.

올라가는 길도 경사가 '적당하여' 20분 정도면 다시 정상에 설 수 있다. 정상을 출발, 갈림길까지 10분에 이어 5분을 더 내려오면 탐방로 입구다. 동쪽에서 정상을 거쳐 서쪽으로 오가는 데 각 35분씩 왕복 탐방에 70분 정도가 소요된 셈이다. 경관과 봄꽃 감상하기에 따라 탐방시간은 매우 유동적이다.

병곳오름은 얼핏 보기에 북동쪽으로 터진 말굽형 화산체로 보이지만 원형분화구도 가진 오름이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정상부에 깊지는 않지만 원형분화구를 갖고 있다"며 "탐방로 초입부분에서 만나는 계곡은 말굽형 분화구가 시작된 곳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말굽형 화구에 물이 고이고 침식이 계속되면서 계곡 형태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식생과 관련, 김대신 연구사는 "병곳오름은 분화구와 계곡 등 독특한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규모나 비고에 비해 식생이 다양하다"며 "바위들이 나출된 골짜기를 따라서는 나도히초미·홍지네고사리·모람·뱀톱·고깔제비꽃 등 하천과 같은 식생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해송림이 형성된 오름 하단부에는 우점하는 사스레피나무·말오줌때나무 사이로 생달·참식·천선과·산뽕·동백·꾸지뽕·때죽나무 등이, 하층에는 고비·곰비늘고사리·금난초·상산 등이 자라고 있다. 정상부에는 부분적으로 초지가 남아있으나 목본식물군락으로 천이가 진행되는 가운데 내외사면에는 보리수·사스레피·화살·가막살·국수나무 등이 많이 보인다.

"오름이 맞은 식생의 위기
그 많던 것들 어디로 갔나"
[인터뷰]김창집 탐라문화보전회장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김창집 탐라문화보전회장(방송대 오름길라잡이 전담강사)은 "제주오름의 식생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멸종'의 원인으로 사람들의 '욕심'을 들었다.
김 회장은 "제주 오름의 식생에선 제일 먼저 수난을 당한 난 종류에 이어 백작약·피뿌리풀 등도 사람들의 손을 타기 시작했다"며 "발에 밟히듯 하던 그 많던 개체들이 이제는 으슥한 곳에서나 드물게 보일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춘란은 토산봉 같은 데선 발 디딜 틈 없이 널려 있었지만 1980년대 마대로 캐어다 팔고 일부 악덕 조경업자들의 무차별 도채로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다"면서 "제주한란과 한라새우란의 사정도 비슷, 조직 배양돼 화분에 담긴 모습뿐 현장에선 거의 볼 수 없는 식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피뿌리풀도 도내 오름 곳곳에서 무더기로 자생했으나 '귀하다'고 알려지면서 들꽃 애호가나 들꽃농원을 만들려는 사람들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줄었다"며 "2000년대 초까지도 많이 서식하던 백약이오름에서조차 이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최근 어느 오름에서 오랜만에 활짝 핀 백작약 자생 군락을 발견, 너무 반가워 카메라에 담고 왔는데, 이튿날 누군가 20여 뿌리를 캐어 쌓아놓은 모습을 발견했다"며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개탄했다. 백서향도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오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곶자왈 정도에만 남아 있다고 한다.
그래도 김 회장은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자연의 복원력이 있는 만큼 인간이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면 복원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일례로 몇몇 오름에서 최근 춘란이 다시 보이는 것은 도채 과정에서 비교적 양호하게 남아 있던 뿌리들이 싹을 틔운 덕분이나 문제는 '존재'가 알려지면 금방 없어질 것이란 점"이라며 오름 식생 보호를 위해 '한심스런' 도채 행위 자제를 당부했다. 김철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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