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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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까미l노 2011. 9. 30. 01:38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티베트 속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유는 내일과 다음 생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올 것이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공간

파리의 전철역과 혼자 사는 여인의 아파트

 

등장인물

남자

대략 27세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아주 어려서 한국을 떠나 프랑스로 입양되었다.

 

여자

나이를 알 수 없는 여인

느낌으로는 30세 정도로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를 가진 프랑스 여자.

 

Scene1 지하철 플랫폼

벽에 포스트를 붙히고 있는 남자

지하철 한 대가 와서 멎으며 사람들을 풀어놓고 다시 떠난다.

한 맹인 여자가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남자 옆을 지나간다.

똗깍 똑깍  지하 공간을 울려대는 맹인 여자의 지팡이 소리

 

이떄, 저쪽에서 주인(사내)과 함꼐 의자에 안장있던 큰 개 한 마리가

맹인 여자의 지팡이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다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컹컹거리며 짖기 시작하는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사나워진다.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는 여자.다시 걷는다.계속되는 지팡이 소리.

 

지팡이 소리에 더욱 흥분하는 개

주인의 품을 헤치고 나와 맹인 여자에게 달려가 여자의 치마를 물어 뜯는다.

사정없이 찌직는 여자의 치마

당황해하며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는 맹인 여자 

이떄, 느릿느릿 걸어가 개를 말리는 껄렁껄렁한 개 주인

 

이를 지켜보던 남자가 자신의 셔츠를 벗어 맹인 여자의 아래를 가려준다.

여자를 부축하며 일으켜 세운다.

여자는 아까부터 흐느껴 울고 있다.

대충 성의; 없는 사과를 하는 개 주인

 

그런 개 주인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다 개 주인의 멱살을 잡는 남자

그러다 참겠다는 듯 손을 놓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여자의 지팡이를 찾아 손에 쥐어주는 남자

 

여자--고맙습니다. 제가 당황을 해서....

길을 모르겠어요.매일 다니던 길인데...(공간을 감짛라기 위해 두리번거린다)

출구가 지금 제 정면에 있나요?

 

말을 알아듣지 못해 대꾸하지 못하는 남자

 

 

Scene2 여자의 집

 

문이 열리며 맹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맹인 여자의 허리에 감겨있는 남자의 셔츠

대충 자리를 찾아 앉고는 한숨을 몰아쉬는 여자와 멍청히 서서 방 안을 둘러보는 남자

 

 

여자--- 왜 아까부터 아무 말도 하지 않죠?

남자---  .....

여자--- 참 이상한 일이군요. 차 한잔 드시겠어요?

남자---  ....

 

 

남자는 창가에 올려놓은 화분을 보고 있다.

식물은 마를 대로 말라비틀어 있다.

 

 

남자가 아무 대답도 없자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는 여자

남자를 잘못 데려온 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여 한순간 알굴에 두려움이 들어찬다. 

그래도 감정을 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 더듬더듬 주전자를 찾고 물을 채워 가스레인지를 켠다.

 

그녀의 동작이 점선처럼 느릿느릿 더듬더듬 이어진다

다시 찻잔을 챙겨 탁자에 앉는 여자

그녀는 불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고 남자는 탁자 위에다 성냥개비 여러개를 이어붙여 알파벳 글씨를 먼들고 있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성냥개비 글씨를 읽게 하려고 남자가 탁자 위에 올려진 여자의 손을 잡자 깜짝 놀라 뿌리치는 여자

 

여자---이게 무슨 짓이예요?

 

 

가슴이 답답한 남자는 날랜 몸짓으로 찻잔을 집어든 다음

찻잔을 부딪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여자를 집중시키고 진정시킨다

이제 여자는 고요하다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들어 탁자 위에다 뭐라고 쓰기 시작하는 남자

 

---나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여자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여자---미안해요.전 글씨를 몰라요. 점자밖엔...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그녀가 힘없이,하지만 평화롭게 미소짓는다.)

아, 이 얘기조차 알아듣지 못하겠군요.

 

남자, 다시 여자의 손가락으로 뭐라고 글씨를 쓰기 시작한다

남자의 움직입대로 따라가주는 여자의 손마디. 하지만 무슨 글씨인지 여자는 모른다.

 

 

여자---(한숨을 쉬며) 우린 참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군요.

 

주전자의 물이 끓는 것을 보자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차를 만드는 남자

(관객은 남자의 익숙한 행동에서 혹시 그가 이 집에 살고 있는 이가 아니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의 어떤 익숙함을 발견하게ㅐ 된다)

 

탁자 위에 만들어진 두 잔의 차

찻잔에서 피오오르는 더운 김

그 위로 삐거덕하며 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문 닫히는 소리.

 

이병률의 산문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