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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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의 벤치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까미l노 2010. 9. 27. 22:36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 백창우 

1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어둑한 겨울을 거슬러 성큼성큼 해를 찾아가는
눈 맑은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가슴속에 고운 씨앗 한 개 품고 있는
가슴 저 깊은 곳에 빛나는 칼 하나 마련해둔
그대는 지금 어느 들을 걷고 있는가
멀리 개 짖는 소리 그치지 않고
어둠은 삼삼오오 몰려다니는데
살아 있는 것들은 다 어딜 갔는지
아아, 살고 싶다
그대 앞에 늘 깨어 있고 싶다

 
2

나는
나를 살고 있는 건지
누군가 내 자리에 버티고 서서
자꾸만 떠밀어내는 것 같다
무엇일까
그게 무엇일까
깜깜어둠 아래 나는 점점 작아지고
길 떠난 내 노래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는데
언제쯤이면 내 마음속 별 하나
그 빛을 찾게 될까
그립다
날마다 푸른 별처럼 타오르는
가슴 따뜻한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3

가슴
다 망가지기 전에
세상에 물들어
통째로
무너져내리기 전에
첫 아침 맑은 바람 몰고 다니는
고운 사람 하나
만나고 싶다


4

이렇듯 하루하루 사는 게 힘겹고
자꾸만 마음의 문 굳게 닫고 싶어질 땐
내가 아주 작아 보일
큰 사람 하나 만나고 싶습니다
망가진 가슴에
다시 도랑 하나 흐르게 할
그런, 고운 사람의 노래
듣고 싶습니다


5

내겐
변변한 노래 하나 없지만
민들레 꽃씨처럼, 낮은 자리에 내려앉아
봄날 환히 피어날 고운 시 하나 없지만
아침이면 늘 새롭게 눈 뜨는 그리움이 있어
아직은 그런 대로 살 만합니다

추운 세상, 곳곳에 어둠 들어차고
사람들은 서둘러 불을 끄는데
그대, 깨어 있는 이여
한밤중에도 잠들지 못하고 무엇을 꿈꾸는지요

보고 싶습니다
향기로운 차 한잔 달여 마시며
사람 내음에 흠뻑 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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