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렌의 애가(哀歌) - 모윤숙 본문

드레퓌스의 벤치

렌의 애가(哀歌) - 모윤숙

까미l노 2010. 9. 27. 22:33

렌의 애가(哀歌) - 모윤숙

시몬!
이렇게 밤이 깊었는데 나는 홀로
작은 책상을 마주 앉아 밤을 새웁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작고 큰 별들이 떨어졌다 모였다
그 찬란한 빛들이 무궁한 저편 세상에 요란히 어른거립니다.

세상은 어둡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 위는 무한한 암흑 속에 꼭 파묻혔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허공 중에서 마치 나는
당신의 이야기 소리를 들으려는 듯이
조용히 꿇어앉았습니다.
광명한 밤하늘 저편으로부터
어둠을 멸하려는 순교자의 자취와 같이  당신은
지금 내 적막한 주위를 응시하고 서신 듯도 합니다.

이 침묵의 압박을 무엇으로 깨치리까?
밤 바람이 주고 가는 멜로디가 잠깐 램프의 그늘을 흔들리게 합니다.
아직 나는 뜰 앞의 장미를 볼 수 없습니다.
당신이 심어 주신 그 장미를!
여름 신의 애무가 있기 전에 장미는
나에게 향기를 전할 수 없을 줄 압니다.
이런 밤 장미가 용이하게 내 곁에 가까이 있다면
나는 그 숭고한 향기로 당신을 명상하기에
기쁨이 있었을 것입니다.

책을 몇 페이지 읽으려면 자연 마음이 흩어지려 합니다.
그것은 책 속에 배열해 놓은 이론보다
당신의 산 설교가 더 마음에 동경되는 까닭입니다.

시몬!
그러나 저는 책보다 당신을 더 동경하여서는 안 될 것을 알아요.
저 하늘에 윤회하는 성좌의 비밀을 알기 전에
당신이란 환상의 비밀을 알려고 고민함이 의롭지 못함인 줄 잘 압니다

시몬!
당신의 애무를 원하기보다 당신의 냉담을 동경해야 할 저입니다.
용서하세요.
그러나 저는 당신의 빛난 혼의 광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알려 준 인생의 길, 진리,
평화에 대한 높은 대화들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때로 내 생명을 장성시켜 주는 거룩한 사도이기도 합니다.
신에게 향한 이 신앙의 비애를
마음 속으로부터 물리치려고 때로 노력합니다.
당신은 저에게 고독의 벗이 되라고 일러 주셨습니다.
감정을 초월한 곳에 우리 인생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고인생을 젊음으로 사귀지 말라시던!


시몬!
죽음 위에 이 생명을 빛나게 조각할 수 있도록
순결한 몸과 마음으로인생의 관문을 지나치고 싶습니다.

종교.예술.철학이 설명하는 진리의 일부분이나마
이 뇌수로 해득하여그것으로 평생의 양식을 삼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저의 가장 큰 욕망이요
소원이 최후입니다.

이 소원을 이루는 데에 당신은 큰 도움을 주시기 때문 입니다.
당신의 말씀과 같이 저는 제 자신을 바르게 하는 데 힘쓰고
제 의무에 노력하다가 세상을 마칠 수 있도록 힘써 보오리다.
램프는 피곤한 듯 좁니다. 벌써 새로 두 시.

시몬!
들으세요.
성당에서 부활제의 종이 웁니다.
불안한 육체속에 폐쇄되었던 영혼이 천성문의 암시를 기다리듯
창문 옆에 가까이 기대었습니다.
저는 오늘밤 침상으로 가기보다 저 거룩한 음향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내 운명의 암시와 함께 탁자에서 밤을 보내렵니다.

시몬!
당신이 좀더 내게 가까이 계셨다면!
그리고 숭엄한 저 종소리를 함께 들으셨다면!

그러나 시몬!
당신은 너무 제게서 멀리멀리 계십니다.
내 창문은 너무 당신이 알지 못하는 곳에 새워져 있어요.
두 번째 종이 웁니다.
빈 벌판에 유랑의 나그네가 되어 가던 카츄샤의 애처로운 심정도
이 새벽종이 다시금 알려주는 애련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몬!
당신이 걸어 주시고 가신 수정 십자가를 만져 봅니다.
검은 구름이 가까운 하늘에 돌고 있습니다.
이제 창문을 닫습니다.
오늘밤 당신을 연상함으로 어두운 밤 시간을 행복으로 지냈습니다.
날이 오래지 않아 밝아올 테니
아름다운 수면으로 이 밤을 작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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