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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의 벤치

강물에 빠진 달을 보러 가듯

까미l노 2007. 11. 23. 20:07

강물에 빠진 달을 보러 가듯

 

새벽에 당신 사는 집으로 갑니다

 

깨끗한 바람에 옷깃을 부풀리며

 

고개를 수그러뜨리고 말없이 걷는 동안

 

나는 생각합니다

 

어제 부친 편지는 잘 도착되었을까

 

첫줄에서 끝줄까지 불편함은 없었을까

 

아직도 문은 열어두지 않았을까

 

아예 열쇠 수리공을 부를까?

 

아니야, 그건 일종의 폭력이야

 

새벽에 어울리는 단정한 말들만이

 

내가 그에게 매달리는 희망인가?

 

신은 그 희망으로 목걸이를 약속하셨지

 

눈물로 혼을 씻는 자에게만 주시는 목걸이.....

 

아침이슬이 몸에 오싹하도록 걷고 또 걸어

 

나는 당신 집 앞에 발걸음을 멈춥니다

 

골목은 고요하고 문은 굳게 닫겨 있습니다

 

삼백 여든 아홉 번째 부자를 누르지만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습니다

 

품 속에 간직한 초설같은 편지 한장

 

문틈에 꽂아놓고 하늘을 봅니다

 

--고 정희 시집, '아름다운 사람 하나'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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