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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관계(모호) 본문
이 남자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 김지룡
6년 전 일본에서 살 때의 일이다.
6년 전 일본에서 살 때의 일이다.
재일교포 여성을 사귄 적이 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많았다.
우리 두 사람은 한일 관계를 공부하는 모임에서 만났다.
공부하는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토론은 한 시간 정도 하고 술은 서너 시간 마시는 날라리 모임이었다.
술자리가 길어지다 보면 사람들이 한둘씩 자리를 떴다.
술자리가 길어지다 보면 사람들이 한둘씩 자리를 떴다.
그녀는 술을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고,
술이 센 편도 아니었지만,
술 마시는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는지 항상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나는 술이 좋아 마지막까지 버티는 타입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우리는 옆에 앉아 얘기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그녀에게 모임을 떠나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말했고 그녀는 승낙했다.
나는 그녀에게 모임을 떠나 개인적으로 만나자고 말했고 그녀는 승낙했다.
그리고 몇 번 데이트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나와 그녀는 어느 선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전철 막차시간이 다가와 -
일본은 택시비가 살인적으로 비싸기 때문에,
막차를 놓치면 큰일이다 - 나는 그녀에게 일어서자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더 마시자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그녀가 나를 유혹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새벽 두시가 되었다.
새벽 두시가 되었다.
더 이상 술을 마시는 것이 힘들어졌다.
그리고 의아심도 들었다.
도대체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가자.”
“어디를.”
“잠자러.”
“싫어.”
“왜 갑자기 빼고 그래.”
“빼는 게 아니라 진담이야. 우리 그냥 밤새 술이나 마시자.”
“술이 그렇게 좋아.”
“바보. 너는 여자를 몰라.”
여자를 모른다는 말이 내 자존심을 긁은 것 같았다.
“가자.”
“어디를.”
“잠자러.”
“싫어.”
“왜 갑자기 빼고 그래.”
“빼는 게 아니라 진담이야. 우리 그냥 밤새 술이나 마시자.”
“술이 그렇게 좋아.”
“바보. 너는 여자를 몰라.”
여자를 모른다는 말이 내 자존심을 긁은 것 같았다.
더구나 나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말이 함부로 나왔다.
“너, 나를 꼬시고 싶은 거잖아.
“너, 나를 꼬시고 싶은 거잖아.
그것 외에 이 시간까지 술 마실 이유가 뭐 있어. 왜 자신을 숨기고 그래.”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그녀는 빙긋이 웃었다.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너무 보채지 마.
“너무 보채지 마.
너와 내가 무슨 관계인지 파악하고 싶어서 술을 마시고 있는 거야.
벌써 다섯 시간이나 마셨지만 아직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조금만 더 마시자.”
결국 나는 세 시간이나 더 술을 마셨다.
결국 나는 세 시간이나 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첫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도무지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전화로 데이트하자고 말하면 항상 오케이였다.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대낮에 만나건 밤에 만나건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키스는 아니지만 입을 맞춘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그 이상의 진도를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와 그녀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의 애매모호한 태도에 지쳐서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녀가 고개를 가볍게 위아래로 흔들면서 우리 사이는 막을 내렸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뒤 그녀가 나를 거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난 뒤 그녀가 나를 거부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흔히 남자들끼리 하는 말 중에 ‘팔장, 구장, 십장’이라는 것이 있다.
연애의 진도를 표현하는 은어다.
교과서에 나오는 ‘8장, 9장, 10장’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팔장은 팔짱을 끼는 것, 구장은 키스,
십장은 성행위까지 했다는 뜻이다.
나도 이런 말을 버젓이 할 정도로 남녀관계를 ‘진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남녀관계는 진도도 아니고 진도에 따라서 주어지는 허용 범위도 아니다.
남녀관계는 진도도 아니고 진도에 따라서 주어지는 허용 범위도 아니다.
성행위까지 한 여성, 남자들의 말을 빌리면
‘몸을 허락한 사이인 여성이 어떤 날은 키스는 커녕 손을 잡는 일조차 거부한다.
이런 상황에 부딪치면 ‘오늘따라 왜 이래’
혹은 ‘왜 갑자기 빼는 거야’라고 남자들은 말한다.
성을 ‘허용 범위’라고 생각하고 한번 허락한 부분은
마음 내킬 때마다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녀관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서로의 ‘관계성’으로 파악한다.
여성은 남녀관계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서로의 ‘관계성’으로 파악한다.
남자와 둘이 영화를 보러 갔다.
이 남자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 친한 친구일까,
이성 친구일까, 애인일까. 손을 잡았다.
이 남자는 나를 진짜로 좋아하는가. 키스를 했다.
나도 이 남자를 사랑하는가. 이런 식으로 항상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인지 끊임없이 정의하려 한다.
심지어는 상대방이나 자신의 마음을 시험해보기 위한 목적으로 잠자리를 같이하기도 한다.
한번 같이 잤다고 항상 잘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에게 남녀관계는 그 순간의 감정이고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관계성인 것이다.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은 중대한 일이다.
나는 그런 중요한 일을 하자고 말하면서 그 전에 정리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녀와의 관계성을 정의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와 내가 어떤 사이이고 앞으로 어떤 사이가 되기를 원하는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그녀가 나를 거부한 것은
그녀가 나를 거부한 것은
내가 서로의 관계성을 정립하지 않은 상태로 자러 가자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사랑은 하지만 결혼은 생각하지 않는다거나,
단지 성적인 매력에 끌릴 뿐이고 그 이상의 감정은 없다거나,
하여튼 어떤 것이든 서로의 관계성을 명확하게 할 것을 그녀는 원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녀에게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우 비겁한 일을 한 것 같다.
서로의 관계성을 애매모호한 상태로 두려고 했다.
여자를 잘 몰랐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통해 여성이 원하는 것은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성’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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