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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

[스크랩] 지는 해를 따라가다 보면

까미l노 2016. 1. 19. 11:58

비가 오는 날에 어디론가 떠나

밤사이 처마 밑에 서서 내 발 끝을 오래 쳐다보게 되면

그만 이화 생각이 떠올라서 괜시리 곁에 없는 누군가를 원망합니다.

 


안개비 속에서 터벅터벅 걸으며

온종일 나무 냄새나 맡았으면 좋겠습니다.

 

곁에 아무도 없어도 잘 참아야 되는 날입니다.

하지만 혼자이면 어떻습니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사라진 내 모습은 30번 도로 끝에서

비에 젖은 바다를 두고 함께 머무를 사람 찾아

이제 그만 젖은 신발을 고쳐 신고 길을 떠나야 할 테지요...
 
 


지는 해를따라 가다 보면 30번 국도를 만나고

그 도로에서 바다를 면한 곳에 변산반도가 있습니다

 

멈춘 듯 서서히 넘어가는데도 따라갈 수는 없는

스러져가는 저 해처럼 그렇게 조용히 명멸해 갈 수 있다면 좋겠다던

어느 작가의 글이 생각납니다

 

서해에도 섬 하나 없이 끝 간데 모를 창망한 바다가 있고

는개에 쌓인 희뿌연 노을의 끝자락이 내 발 앞까지 뻗어오는

퍼질러 앉아 울기 좋은 사구 언덕의 파도리 샘기미가 있고

갯벌에 모로 쓰러진 채 죽어가는 배들이 있고

바다 비린내에 절은 아낙네들의 치열한 아우성이 곰삭은 곰소만이 있습니다

 

내소사 산사 처마 밑에서

헤진 내 신발 끝만 바라본 채

밤 새 내린 아픈 비를 실핏줄 닮은 긴 고랑으로 흘러 바다로 향하게 하고

바다 비린내에 절은 육신일랑 밤이슬에 씻고

한잔 간신히 목구멍에 털어부어 남은 소주병 모래밭에 남겨두고

언제나처럼 서해를 떠나며 되돌아 보곤합니다...

 

탁한 바닷물 따라 건너간 해당화 곱게 핀 서해 위도

그곳엔 40여 년만에 명예회복을 했다는 납북어부의 이야기가 있고

벽보처럼 종이에다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부고장이 길 가 전봇대에 있고

언젠가 많은 사람들을 그만 바다로 데려간 아픈 옛얘기도 있고

카페리라고 대단한 여객선인양 요란한 이름을 한 매연을 내뿜는 철선이 있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무서운 곳입니다

무인도 돌섬에 오두망실 올라 앉아

굼실거리는  밤바다의 너울파도를 보면

언제나 나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서해의 밤바다는 언제나 낮고 침울합니다

해무 때문인지 삶이 팍팍한 내 우울모드 때문인지 모를...

 

서해 바다에서는 좀처럼 시거리라 불리우는 야광충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탁한 바닷물 때문인지 깊이가 덜한 파도 때문인지

가도 가도 물에 닿을 수 없는 긴 갯벌이 있었습니다.


느닷없이 찾아가도 언제나 제몸 활짝 열어 반갑게 맞이하는 길

그게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이든 길을 찾는 일이든

길여행이란 어차피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일이고 길 위에 오롯이 서게 되는 짓거리 일테니까요

멀어서 가는 길은 오히려 내내 설레임이 있어서 더 좋습니다


이번 위도에는 한밤중에만 비가 내렸었습니다

여여하십시오

비가 오는 날 또 오겠습니다

 

 

출처 :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
글쓴이 : 카미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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