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자작나무 본문
강원도 이북의 높은 산에 자라는 낙엽활엽 큰키나무다.
깊은 산 양지쪽에서 자란다.
높이 20m에 달하고 나무껍질은 흰색이며 옆으로 얇게 벗겨지고 작은가지는 자줏빛을 띤 갈색이며 지점(脂點)이 있다.
잎은 어긋나고 삼각형 달걀 모양이며 가장자리에 불규칙한 톱니가 있다. 뒷면에는 지점과 더불어 맥액(脈腋)에 털이 있다.
암수한그루로서 꽃은 4월에 피고 암꽃은 위를 향하며 수꽃은 이삭처럼 아래로 늘어진다.
열매이삭은 밑으로 처지며 깊이 4cm 정도이고 포조각의 옆갈래조각은 중앙갈래조각 길이의 2∼3배 정도이다.
열매는 9월에 익고 아래로 처져 매달리며, 열매의 날개는 열매의 나비보다 다소 넓다.
나무껍질이 아름다워 정원수·가로수·조림수로 심는다.
목재는 가구를 만드는 데 쓰며, 한방에서는 나무껍질을 백화피(白樺皮)라고 하여 이뇨·진통·해열에 쓴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그림의 재료가 자작나무껍질이며, 팔만대장경도 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자작나무의 이름은 이 나무를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붙인 이름이다.
물론 어떤 나무든 불을 붙이면 타는 소리가 ‘자작자작’ 나지만, 자작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그 소리가 크다. 자작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소리가 많이 나는 이유는 자작나무의 성분 때문이다.
이 나무의 속에는 기름기가 많다.
기름이 없던 시절에는 이 나무로 불을 밝혔다.
자작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화(樺)도 나무의 성분을 본뜬 이름이다.
흔히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화촉을 밝힌다’라고 하는데, 이때 화촉이 바로 자작나무를 껍질로 만든 초이다.
이런 특징을 지닌 자작나무는 만주에서 시베리아, 남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나무이다.
중앙아시아 및 북아시아에서 알타이 굿을 할 때 샤먼은 자작나무와 말을 이용하여 제례를 치른다.
말의 등 위에서 자작나무 가지를 흔들며 말을 죽인 뒤 자작나무 가지 불 속에 던진다.
몽골의 부리야트족은 자작나무가 천상계의 문을 열어 주는 문의 수호자로 생각했다.
만주족의 창세신화에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작나무로 별을 담는 주머니를 만들었다.
자작나무는 켈트족의 달력인 ‘나무들의 알파벳’ 중 양력 첫 번째 달, 즉 12월 24일부터 1월 21일까지 놓여 있다.
자작나무를 이 시기에 놓은 것은 이 나무가 태양의 재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작나무는 빛의 재생을 기념하는 축제인 성촉절(聖燭節)에 성녀 브리지트에게 바쳐진다.
그녀는 불과 식물의 재생을 주관하는 켈트족의 고대 신이다.
게르만의 신화에서 자작나무는 벼락과 전쟁의 신인 도나르(토르)의 나무이다.
이 신은 노르웨이에서는 오딘보다 힘이 세다. 자작나무는 갈리아인의 나무이다.
갈리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끓여서 비투멘을 뽑아냈다.
더욱이 갈리아(현 프랑스 지역) 사람들은 이 나무를 길조의 나무로 생각했다.
로마인들이 사바니 여자들을 유괴할 때 이 나무로 불을 밝혔기 때문이다.
즉 로마 건국설화에 따르면, 로마를 건국한 후 여자가 없어서 인근 사바니 지역의 남녀들을 부르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
로마인들은 남자들이 축제를 보고 있는 동안 자작나무로 불을 밝혀 부녀자를 유괴했다.
자작나무에 얽힌 얘기도 적지 않은데, 특히 이 나무의 탄생설화가 유명하다.
몽골의 영웅이자 세계 역사를 바꿔 놓은 칭기즈칸이 유럽을 침략하던 시절, 왕위계승에 불만을 품은 한 왕자가 칭기즈칸 군대의 우수함을 과대 선전해서 유럽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게 했다.
이 사실을 안 유럽의 왕들이 이 왕자를 잡으려 했으나, 그는 깊은 산 속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어 구덩이를 파고 흰 명주실로 친친 동여매고 그 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
흰 비단을 겹겹이 둘러싼 듯, 하얀 껍질을 아무리 벗겨도 흰 껍질이 계속 나오는 자작나무가 바로 이곳에서 자란 나무이다.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백두산에도 자작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옛날 백두산 기슭에 사냥하면서 살아가는 백 노인과 손녀 설화가 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설화는 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예쁜 처녀로 자라났다.
백 노인이 포수들과 사냥하러 나가고 없을 때였다.
부인을 아홉이나 둔 부잣집 막내아들이 백 노인의 집을 지나다가 설화를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 후 막내아들은 중매쟁이에게 설화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결국 설화는 중매쟁이의 간청으로 부잣집 일을 돕고, 막내아들의 시중까지 들게 되었다.
얼마 후 마을에서는 설화가 막내아들에게 손목 잡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설화는 이러한 소문에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꼈지만 쉽게 부잣집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그 후 백 노인은 사냥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설화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소문을 들은 백 노인은 곧장 부잣집으로 달려가 주인과 아들을 모두 죽이고 어디론가 도망갔다.
혼자 남은 설화는 하늘을 보고 통곡하다 그만 기절했다.
설화가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사방은 어둠뿐이었다. 설화는 정신없이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녀가 할아버지를 찾아 험한 봉우리에 오르다 보니 어느덧 동이 트고 있었다.
설화는 동이 트는 속에서 할아버지를 보았다.
설화는 너무 기뻐 할아버지에게 달려갔으나, 할아버지는 설화를 반기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돌처럼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설화는 돌처럼 굳은 할아버지를 부둥켜안고 목 놓아 울었다.
설화도 울다가 지쳐 그만 죽고 말았다.
그 후 백노인과 설화가 죽은 자리에서 하얀 자작나무와 진달래과에 속하는 상록활엽관목인 노란 만병초가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