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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45년 전 650원 하던 하모니카와 명숙이 할배

까미l노 2014. 12. 28. 14:13

 

초등학교 6 학년 쯤 되었을게다

고향 동네 언덕 위 향교라는 옛날로 치면 마을 학교와 제를 지내는 곳이 되는데

도로에서 높은 곳이고 수십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이층 누각이 있고 그 안쪽 좌우에 디귿자로 된 서당같은 건물이 여럿 있다.

다시 계단 수십개를 오르면 역시 디귿자 형태로 건물이 산허리 아래를 빙 둘러선 모습으로 하고 있는 곳이다.

 

동네 청년들은 여름이면 그곳에 올라 노름 같은 것도 하고 남강에서 천렵으로 잡아온 물고기로

매운탕을 해먹기도 하던 가끔은 불량스런 일들이 생기기도 하여 파출소에서 일제 소탕을 하러오기도 했는데

이층 누각에서 잠 자다가 부지 불식간에 잡혀가기도 했다. 

 

그땐 모든 것이 귀할 때라서 검정 사각팬티만 걸친 채 진짜 타이어표 깜장 고무신은 닳을까봐 구겨서 배처럼 만들어 손에 들고

남강으로 가서 하루 종일 수영으로 보내던 시절이었는데 가끔은 수박이며 풍게랑(자두) 복숭아 서리를 하여 강에서 씻어 먹곤 했다.

산으로 들로 천둥벌거숭이처럼 뛰어다니던 시절이라 팬티 속에다 넣어도 복숭아 털이 아무 상관 없을 때였다.

 

심지어는 공동묘지 주변에 숨어있다가 밤 열두시가 넘어 주인이 원두막에서 잠이 들면 딸기 서리도 하곤 했었는데

어떤 날에는 주인에게 잡혀 발가벗긴 채 한 두시간 동안 꿇어 앉아 손 들고 벌을 받기도 했다.

 

해질녘 노을이 산허리를 타고 내려올 무렵이면 어김없이 동네 형이 향교 오르는 계단 중간쯤에서 하모니카를 불곤 했었는데

그 소리와 폼이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나도 저 형처럼 멋진 폼으로 하모니카를 불 수 있을까 궁리를 하다가 하모니카를 사기로 결심했는데

당시의 우리 집 사정으론 지금의 가난한 집 초등학생이 대략 이 삼십만 원 정도 될 별 중요하지도 않을 무언가를 산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궁리 끝에 돈을 모아서 사기로 결심하고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그때부터 열심히 구슬치기를 했다.

 

사진 정면의 이층 누각이 풍화루 라는 곳이고 왼편 빨간 지붕집 옆 초록색 작은 집이(당시 주소가 옥봉북동 향교주택 22호) 내가 살았던 곳이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 호롱불 때문에 창호지에 불을 냈던 적도 있었고 삐걱대는 나무대문 아래 볼록벽돌 동그란 구멍 속에 넣어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불속 찬합엔 말라붙어가는 밥이 점심시간에 집으로 밥 먹으러 오는 내 몫이었고 도시락 싸 가는 게 소원이던 때였다.

 

아마 저곳은 현재도 저 사진 속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집 옆에 동창 명숙이가 살았었고 명숙이 할배한테 맨날 혼나면서 명숙이네 마당 뒤 산으로 가는 길에 커다란 밤나무와 참나무가 있었는데

그 둘의 열매가 정말 잘 생기고 탐스러웠기 때문에 우리는 늘 위험을 감수하면서 숨어들곤 했었다.

 

 

 

 

당시 구슬이 다섯개에 1원 이었는데 근처 동네에서는 구슬치기 왕이라 붙었다 하면 구슬은 몽땅 내 차지였었다.

지금도 구슬치기라면 꽤 잘하지 싶다만,

좌우지간 구슬치기 딱지치기 팽이 따먹기 등으로 닥치는 대로 따서 다시 팔곤 했었는데 얼추 4~%천개 정도의 구슬을 팔았던 것 같다.

그렇게 모은 1원 5원 10원(지금은 그떄의 그 동전이 생산되지도 않지만) 동전을 잔뜩 들고 진주 중앙로터리 신용사 안경점엘 갔었다.

(당시엔 안경점에서 하모니카를 팔았었다)에나 지금이나 난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어떻게든 손에 넣고 마는 타입이기도 하다.

 

천 원을 다 모으지도 못한 채 하모니카에 대한 염원이 얼마나 지독했었는지 잔뜩 모은 동전을 쏟아내어 세었는데 그게 총 656원 이었던 것이다.

안경점 아저씨가 기가 막히는지 어떻게 모았냐고 하시길래 구슬치기 해서 딴 것으로 팔아 모았다고 했더니

기특하다며 열심히 배워 보라고 650원만 받으시고 6원을 더 깎아주셨던 것이다.

 

하모니카를 사온 후 맨날 얼마나 불어댔으면 한달 쯤 지난 후 어지간한 동요들은 다 마스터할 정도였는데

그후 하모니카로는 멜로디만 들으면 다 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으로 늘었었다.

결국 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난 누군가에게 어디서 무얼 배우는 것에 익숙치가 못한데 빨리 배우고 싶어서 절차를 따져 기다리거나

같이 배우는 사람들과 호흡 맞추기가 지루해 혼자 달려가는 성격이기도 하다.

유년의 학교생활과 젊어서 음악도의 길로 들어섰을 때와 군대생활 그리고 늙어(?) 산림교육 전문가 교육 외

누군가에게 배워서 습득한 지식이나 기술이 좀체 없는 편이다.

 

그래서 컴퓨터를 처음부터 오로지 독학으로 배웠었기에 지금도 독수리이고(무조건 만지고 주물러서 배운)

나무공예도 그러한지라 기초가 없고 방법에 서툴러서 손이 엉망이 된 셈이고 꽤 오랜 시간 낚시에 빠져 살기도 했었는데

어중이 떠중이 잘난 체 하는 얼치기들이 많아 손수 만들고 실험해 보고 하여 낚시도구며 기술을 혼자 습득했으니

에지간히 고집불통이기도 한 것 같은데 그래도 나중엔 모두들 내게 낚시도구며 낚싯대의 여러 부분을 더 정교하고 튼튼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다.

 

난 정상 고집하는 등산이라는 용어 자체가 싫어서 그냥 산 속 깊이 드는 산행이라고 하는데 이마저도 산이란 산은 다 들어가보면서 산행지식을 습득했었다.

먼저 배운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알려 주지 않거나 고수의 시선으로 가르치려 드는게 싫고 초보인 내것으로 하기엔 힘들어서

그 후 누가 나에게 어떤 것이든 물어오면 그게 기술이든 지식이든 설령 단순히 길을 물어보는 것일지언정 처음 가보는 사람의 시선으로 알려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책상 서랍 안 하모니카 세개

해가 바뀌는데도 손에 잡아본 지가 여러 해 지나간 듯하다...

꿈이었고 희망이기도 했던 음악가(트럼펫 연주가) 음악교사 프로 낚시꾼 전문 산꾼 회사원

이것 저것 얼마간 하다가 다 포기한 셈이고 지금은 산림교육 생태공예 여행가로 살고 있는 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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