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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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 쫄븐 갑마장길

까미l노 2013. 12. 5. 20:55

 

 

지금으로부터 약 1백20만 년 전.

불덩이를 품은 채 쉼 없이 꿈틀거리며 기어이 솟아오른 백록담의 용암이 바다로 향하다 그대로 주저앉아 드넓은 평탄면을 만들었다.

 

제주도 한라산 동남쪽 능선 자락의 가시리마을.

병풍처럼 둘러싼 13개의 오름과 바람에 흐드러진 억새, 한가로이 뛰노는 마소들을 보고 있노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목장 길 따라 밤길 걸으며 고운 임 함께 집에 오는데….'



 

 

숲으로 둘러싸인 신비로운 가시천

시간을 더한다는 고운 이름만큼이나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곳,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한라산 고산지대와 해안지대를 잇는 이곳에는 과거 말테우리(말떼를 돌보는 목동)들이 말을 키워 임금에게 진상하던 갑마장이 있었다.

이 말들이 다니던 길이 바로 갑마장길이다.

지난해 봄, 가시리는 마을회관에서 시작해 설오름, 따라비오름, 잦성,

큰사슴이오름, 행기머체, 조랑말 체험공원 등 총 20km 구간 8개의 오름을 지나는 '갑마장길'과 그 절반의 구간인 '쫄븐갑마장길'의 문을 열었다.

'쫄븐'은 '짧은'의 제주도 방언이다. 기자가 걸어간 곳은 후자. 국토해양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하나인 녹산로의 끄트머리, 행기머체(지하 용암 덩어리가 지상으로 솟으며 형성된 돌무더기)가

시선을 사로잡는 조랑말 체험공원이 쫄븐갑마장길의 입구다.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가시천을 지나 따라비오름으로 향하는 길인 오른쪽 방향을 선택한다.



제주 특유의 현무암질 용암류가 겹겹이 쌓인 대부분의 하천이 그렇듯 가시천 역시 평상시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다.

 다만 바싹 말라 있지는 않고 군데군데 물이 고여 습지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가시천 주변의 숲은 이리 휘고 저리 굽은 나무들이 이끼가 잔뜩 낀 바위들, 키 작은 야생화들과 어우러져 있다.

풀을 뜯다 목이 마른 말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땅의 할아버지, 따라비오름


빽빽한 숲길을 지나다 보면 갑자기 눈앞이 훤해진다.

 이는 곧 따라비오름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정상부까지 이어진 목재 계단을 절반쯤 올랐을까. 숨이 차오른다.

잠시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봤다. 크고 작은 오름들과 넓은 평원, 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90~570m 사이에 고르게 펼쳐진 가시리마을의 화산평탄면이 답답한 마음의 체증을 시원하게 씻어낸다.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흐릿하게나마 한라산이 보인다.

정상에 올라 오름 전체를 뒤덮은 억새와 마주했다. 가득 찬 억새 물결이 살랑거린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진다. 형형색색의 등산복 차림으로 뒤따른 이들의 모습 또한 한 폭의 그림이다.

고요함을 깨는 건 바람에 일렁이는 억새와 풍력발전기 소리뿐이다.

왜 모두가 입을 모아 따라비오름에서 보는 경치를 칭찬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자세히 둘러보니 따라비오름은 여타의 오름들과 조금 다른 형상이다.

원형으로 된 큰 분화구가 마치 새끼를 품고 있듯 작은 분화구 3개를 안고 있다.

 이 3개의 분화구가 부드럽고 아기자기한 능선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따라비오름의 최고점은 정상부에서 왼쪽으로 250m 정도 더 가야 한다.

주위 풍경을 둘러본 뒤 정상의 남쪽, 서쪽,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걸어본다. 초보자들도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바닥에는 섬유질 그물망이 덮여 있다.



제주도를 다니다 보면 돌로 쌓은 탑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이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액을 막기 위해 마을의 경계나 땅의 기운이 허한 곳에 주로 세워진 거욱대로

제주도 사람들은 탑을 쌓아 올리 때 그 속에 밥주걱이나 솥을 묻고 그 위에 돌을 사람의 키 보다 높게 쌓아야 제기능을 발휘한다고 믿었다.

밥주걱은 솥의 밥을 긁어 담듯이 외부의 재물을 안으로 담아 들이라는 뜻이고, 솥은 뜨거운 불에도 끄덕없이 이겨내듯 마을의 재난을 막아달라는 의미다.



흑룡만리의 맏형, 잣성길

따라비오름에서 하산한 뒤 서북쪽으로 방향을 틀면 큰사슴오름이 보인다.

여기부터가 제주도 내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돼 있는 잣성길이다.

'잣'은 제주어로 '널따랗게 돌들로 쌓아 올린 기다란 담'이란 뜻이다.

목장과 목장의 경계를 구분 짓고, 말들을 가둬두기 위해 세웠다.

사철 내내 푸른 삼나무 군락과 나란히 서 있는 잣성길은 굳이 갑마장 기행이 아니더라도 30~40분간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해놓았다.

도보로 우회할 경우 2km, 직선거리로 1.3km 정도며 가시리에서 매년 4월 유채꽃 축제를 할 때 트레킹 코스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늘에서 제주 땅을 내려다보면 집과 집, 마을과 마을 사이를 빗겨가며 대평원으로 용솟음쳐 올라붙은 검은 띠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검은빛 현무암이 만들어낸 돌담의 행렬을 '혹룡만리'라고 한다.

조선 세종 때부터 무려 4백 년간 쌓아온 총 31.4km의 잣성은 흑룡만리의 맏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싶다.



큰사슴이오름·작은사슴이오름


잣성길을 따라 곧장 가면 큰사슴이오름 동남쪽에 진입하게 된다. 큰사슴이오름이 목적지라면 이곳부터 산의 정상부를 향해 걸으면 된다.

큰사슴이오름의 매력은 화산평탄면의 원지형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

 

가시리에 왜 목축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알 수 있다.

정상 오른쪽으로는 조선 최대의 산마장이었던 녹산장을, 왼쪽으로는 최고 품질의 말을 길러내 조정에 진상했던 갑마장을 조망할 수 있다.

갑마장이 있던 자리는 현재 가시리마을의 공동 목장이 됐다.

바로 옆 작은사슴이오름은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다. '작은'이라는 수사가 어울리지 않게 2개의 불구멍을 갖고 있는 쌍둥이 화산체다.

큰사슴이오름과의 샛길에 있는 중잣성길도 산행에 이어 걸어볼 만하다.

큰사슴이오름은 바로 옆 작은사슴이오름과 함께 모양새가 사슴을 닮았다 하여 이름이 붙었다.

실제로 예전에는 사슴이 살았다고 한다.



가시리 예술가 지원센터의 예술인 초록누룽지 작가와 함께 따라비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경치를 주제로 오감을 활용해 와인 잔에 그린 그림.



[코스 A] 쫄븐갑마장길 코스

(길이 10km, 소요 시간 3시간)
행기머체→조랑말 체험공원→가시천→따라비오름→잣성→국궁장→큰사슴이오름→ 유채꽃 플라자→꽃머체→행기머체

[코스 B] 갑마장길 코스

(길이 20.2km, 소요 시간 7시간)
방문자 센터→가시사거리→설오름→하잣성길→따라비오름→중잣성길→큰사슴이오름→유채꽃 플라자→꽃머체→행기머체→안좌동→가시사거리→방문자 센터

갑마장길 구석구석 가볼 만한 곳

조랑말 박물관 말과 관련된 유물 및 문화 예술 작품 1백여 점이 전시돼 있다.

특히 3층의 옥상정원에서는 360도 파노라마 뷰로 아름다운 가시리마을을 감상할 수 있으니 반드시 들를 것.

박물관 옆 따라비 승마장에서 말을 타고 탁 트인 초원을 달려보는 것도 좋은 체험이 될 것이다.

가시리 창작지원센터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레지던시 공간이다.

2010년 8월 개관했으며 다양한 장르의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개인별 혹은 협업 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

또 문화생활을 통해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글 & 사진 / 김지윤 기자 ■취재 협조 / 가시리 유채꽃 마을 만들기 사업추진위원회(www.jejugasiri.net),

이어도나사(www.ieodotour.com), 조랑말 체험공원(064-787-0960)>

 




↑ [월간산]가을의 전령 억새 숲을 가르며 걸어가는 오름 나그네들. 따라비오름.

"이젠 올레길 가지 마세요.

사람이 너무 많아 제주의 자연을 제대로 즐기기 어렵고 어수선해서 '힐링' 효과도 별로예요.

가시리로 오세요. 목장길, 오름, 숲길을 거닐면 정말 행복해져요. 역사가 오래된 제주의 목장 문화에 대해 알 기회도 생기고요."

가시리마을만들기추진위원회 정경운 부위원장이 자랑하는 '갑마장길'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는 걷기 길이다.

제주도 남동쪽 해발 90~570m대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가시리는 표선면의 42%에 해당할 만큼 넓은 곳이다.

이렇게 넓고 분지를 이룬 가시리는 고려 때부터 말목장으로 이용돼 왔다.

조선시대에는 제주의 13개 말목장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녹마장이 있었고, 최고의 나라 말(國馬)을 길러내던 갑마장(甲馬場) 또한 이곳에 있었다.

목장 경계 목적으로 쌓아놓은 31.4km 길이의 잣성길 또한 지금 그대로 남아 있다.

갑마장길이란 이러한 역사를 지닌 갑마장의 중심을 이룬 사슴이오름과 따라비오름, 목장의 경계선인 잣성,

그리고 삼나무와 편백나무숲에 원시림을 이은 20km 걷기 길이다.

가시리마을추진위원회에서는 2011년 주민들이 힘을 합쳐 갑마장길을 조성한 데에 이어

단축 코스인 쫄븐('짧은'이란 의미의 제주 방언) 갑마장길을 닦고 2012년 11월 초 오픈했다.

쫄븐갑마장길은 정석항공관주차장에서 사슴이오름~잣성길~편백·삼나무숲길~따라비오름~가시천 숲길을 거쳐 다시 정석항공관주차장으로 이어진다.

제주도민은 물론 외지의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쫄븐갑마장길은 2012년 대회에 이어 지난 10월 초 열린 제주국제트레일러닝대회 경기장으로 이용되었다.





↑ [월간산]이른 아침 큰사슴이오름을 내려서는 오름 나그네들.

갑마장은 조선 최고 명마 키우던 목장

"4월에는 유채꽃과 벚꽃이 만발하고 9월엔 코스모스가 장관이에요."

가시리마을에서 정석항공관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약 7km의 도로는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히는 길이다.

갑마장길 안내에 나선 정경운 부위원장은 사슴이오름으로 접근하면서 "마을 주민들이

10월 초 도로 양쪽에 뿌린 유채 씨앗은 이듬해 봄이면 노란 꽃으로 피어나 환상의 꽃밭길로 변하고,

유채씨를 거둔 직후에 뿌린 코스모스 씨앗은 초가을 울긋불긋한 꽃을 피워 또다시 환상의 도로로 변신한다"고 자랑한다.

"18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약 200년간은 녹산장으로 운영됐어요.

그 중심이 사슴이오름, 대록산(大鹿山)이었죠. 따라비오름, 물영아리오름 일원까지 합치면 300만 평에 이를 만큼 넓었어요.

지금 가시리마을공동목장 면적 250만 평보다 더 넓었던 거죠."





↑ [월간산]정석비행장 일원뿐만 아니라 멀리 한라산과 성산일출봉까지 바라보일 만큼 조망이 뛰어난 큰사슴이오름 트레일.

제주에 목장이 본격적으로 설치되기 시작한 조선 초였다.

1492년 세종(11년)은 경지의 경사가 심하게 가팔라 사람이 살거나 농사를 짓기에 부족한 지역으로 여긴 중산간지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국영목장인 10소장(十所場)과 동부 산간지역에 녹산장·침장·상장 등 산마장(山馬場)을 조성했다.

그중 두 개의 사슴이오름, 즉 큰사슴이오름(대록산)과 작은사슴이오름(소록산)을 중심으로 조성된 녹산장이 가장 큰 목장이었다.

새벽녘 비가 흩날리고 아침에도 하늘은 찌푸려 있는 데다 아직 10시도 채 안 됐는데

사슴이오름 트레킹을 마치고 풀벌레 울어대는 억새 길을 내려서는 중년 여인들도 눈에 띄었다.

부드러운 풀을 헤치며 걷다가 '대록산 정상 가는 길 0.5km' 팻말 앞 갈림목에서 편백나무 울창한 작은사슴이오름 길 대신 큰사슴이오름 산길로 접어든다.

나무데크 깔린 사슴이오름 오르는 길은 붉은빛이 대세다. 화산이 폭발할 때 분출된 혼합물이 굳어 형성된 '송이'가 바닥에 깔린 탓이다.

삼나무숲을 빠져나가자 오름 뒤편으로 정석비행장이 내려다보인다. 대한항공 측에서 비행 훈련장이나 VIP를 위한 활주로로 이용하는 곳이다.





↑ [월간산]일제 때 군인들이 큰사슴이오름 분화구 등성이에 파놓은 동굴진지.

"이 풀은 병풀이라 불러요. 마데카솔 원료예요. 옛날 사람들은 상처를 쉬 아물게 하고

염증을 치료하는 데에 효험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민간치료제로 사용했어요. 저기 애기곰취도 보이네요.

그런데 사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노루는 간간이 눈에 띄지만."

사슴이오름은 다양한 식물들이 모인 식물박물관이었다.

곰취도 지천이요 꽃 피기 전 따서 데쳐 먹는다는 양하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옛날 제주에선 집 지으면 주변에 양하와 대나무를 심었어요. 양하는 반찬으로 사용되고, 대나무는 바구니나 농기구 만드는 데 쓰였어요.

제주 옛 사람들의 지혜가 놀랍죠?"

높이를 더할수록 정석비행장은 점점 넓어졌다. 벤치가 놓인 정상에 올라서자 따라비를 비롯해 여러 오름들이 동산처럼 솟아 있고

 널찍한 들녘도 한눈에 들어왔다. 사슴이오름 바로 아래로는 풍력발전기가 날개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 [월간산]삼나무와 편백나무 숲 가로 이어지는 잣성길.

정경운 부위원장은 정상에서 곧장 뻗은 길 대신 왼쪽 숲길로 인도했다.

동백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자귀나무 등 80여 종의 수종이 어우러진 원시림 숲길은 분화구를 따라 이어졌다.

"아시죠? 구지뽕나무는 항암효과가 있고, 예덕나무는 다려 먹으면 위염이나 심장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걸.

저기 보이는 청미래 덩굴은 태워도 연기가 나지 않아요. 그래서 제주 4·3사건 때 주민들이 밥 지을 때 사용했대요.

저기 보이는 동굴은 일제 때 정석비행장을 관측하는 군인들이 지낸 곳이고요."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져 숲을 이룬 사슴이오름에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분화구를 따라 도는 사이 눈에 들어온 좁은 굴은 일본군이 정석비행장을 조성할 때 만든 진지였다.

정 부위원장은 "당시 가시리 일원에서 젊은이 400여 명이 희생됐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제주 특유의 돌담길 분위기 자아내는 잣성 길





↑ [월간산]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가을빛을 띤 따라비오름.

분화구 길을 빠져나와 오름을 내려서는 사이 띠처럼 이어진 삼나무 방풍림과 제트기 날아가는 소리를 내는 풍력발전기와

그 뒤로 봉긋 솟아오른 따라비가 풍경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오름을 내려서자 콘크리트길. 거대한 풍력발전소는 풍차를 향해 달려가는 돈키호테를 떠오르게 한다.

다행히 쫄븐갑마장 길은 풍차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왼쪽 잡목지대를 가로지르고, 숲 속으로 들어서리란 예상을 벗어나 돌담을 끼고 이어진다.

"고려를 침략한 원나라에서 제주 목장에서 말을 키우게 했어요. 몽골식 목장이 생긴 거죠. 처음에 160마리가 들어왔대요.

그러다 조선시대에는 중산간지역을 10개 구역으로 나누어 10소장과 녹산장, 침장, 상장 등 산마장(山馬場)을 조성한 거고요.

갑마장은 산마장에서도 가장 좋은 말을 키운 곳이에요."

정 부위원장은 "지금 옆으로 이어지는 잣성은 목장의 경계 표시이자 말이 넘나들지 못하도록 쌓은 간장(間障)"이라며

"잣성은 위에서부터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으로 나뉘며 큰사슴오름과 작은사슴오름의 경계를 이룬 잣성은 중잣성에 속한다"고 일러 주었다.





↑ [월간산](위)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행감목관 경주 김씨 묘를 지키는 아기 석물. /

따라비를 오르다 발견한 양아. 살짝 데쳐 먹는 식물로 옛날 제주도민들은 집 주변에 심었다고 한다.

잣성길로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흩날린다.

그런데도 삼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실컷 마시면서 거무튀튀한 현무암을 쌓아 만든 제주 특유의 돌담길을 걷는 기분은 너무도 좋다.

부드러운 흙길이다 보니 푹신푹신.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조금은 귀에 거슬렸던 풍차 돌아가는 소리가 사라져 마음 또한 편안하다.

"저기 오름 보이죠? 물영아리오름이에요. 주변에 마을공동목장이 있는데 주민들이 중국 사람에게 280억 원에 팔았다는 소문이 들려요.

걱정이에요. 이러다 제주 땅이 몽땅 외국 사람들에게 넘어갈까봐. 이렇게 600년 동안 지속돼 온 우리 목장문화의 가치를 그들이 알겠어요?"

정 부위원장은 제주의 전통문화 훼손에 대한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최근 몇 년 새 물밀듯이 들어오는 귀농자들에 대해서도 염려했다.

그는 "가시리에도 귀농인이 30~40명에 이른다"며 "1~2년 정도 살아본 다음 결정해야 후회하는 일이 없다"고 충고했다.

잣성길은 어느 샌가 사라지고 대신 숲속으로 들어선다.

수종은 역시 삼나무와 편백나무. 대부분 1970년대 말 산림녹화 차원에서 심어진 나무들이지만 간벌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목재로 사용하기에는 적합지 않다 싶었다.

 그래도 우거진 숲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힐링'시켜 준다.





↑ [월간산]눈꽃이 내린 듯 하얀 꽃이 밭을 이룬 메밀밭. 따라비오름 기슭. 가시리마을에서는 메밀가루를 순대 재료로 이용한다.

숲길을 빠져나가자 억새가 반짝이며 반겨 준다. 부드러운 흙길 따라 오름 허리를 휘감아 도는 사이

 세 개의 봉우리가 부드럽게 이어진 따라비오름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비는 '땅의 하래비'라는 의미다.

17세기 문헌부터 이름이 등장한 따라비는 다라비악(多羅非岳), 다리비(多羅非) 등으로 표기되다가

19세기 이후 땅의 하래비라는 뜻의 지조악(地祖岳) 또는 지조봉(地祖峰)으로 표기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따라비 주변에는 모지(母地)오름, 장자(長子)오름, 새끼오름 등 크고작은 오름들이 한 가족처럼 모여 있다.

따라비와 400m쯤 떨어진 새끼오름은 따래비의 아들 격이고, 새끼오름과 1km쯤 거리를 둔 모지오름은

며느리, 그리고 모지오름과 330m 거리를 둔 장자오름은 손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잣성길을 따를 때에는 따라비는 곧장 정상을 너머 가시천 숲길로 들어설 참이었다.

그러나 현무암으로 돌담을 두른 선략(宣畧)장군 행감목관(行監牧官) 경주 김씨 묘 앞에 다다르자 가을 햇살 받은 억새는

찬란한 가을을 구가하며 길손의 눈을 붙잡고, 따라비는 웅장하면서도 부드럽고 수더분하면서도 화려한 풍광으로 길손을 붙잡고 오름나그네로 만들었다.

팔색조처럼 다양한 풍광 뽐내는 '땅의 하래비'





↑ [월간산]울창한 숲과 이끼 덮인 바윗덩이가 어우러져 원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시내 걷기 길.

따라비오름은 제주의 380여 오름 가운데 독특한 오름이다.

세 차례의 화산폭발로 형성된 3개의 굼부리와 6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로 형성돼 있다. 이렇듯 지질적 특성이 아니더라도

따라비는 팔색조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빛의 각도와 세기,

바람에 떠도는 구름의 조화에 따라 수시로 변신하면서 감탄케 하고, 그 오른쪽으로 힘차게 돌아가는 풍력발전기들과

부드럽게 솟아오른 대왕오름이 한라산과 어우러져 이국적인 풍광을 자아낸다.

따라비는 외양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그 안에 온갖 식물이 살고 있었다.

굼부리(분화구) 세 개를 잇는 능선길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길 양옆에 억새가 가을 햇살에 반짝이며 바람에

사각사각 소리 내어 시심을 돋우고, 고들빼기 노란 꽃, 섬잔대와 쑥부쟁이 보랏빛 꽃은 오름나그네들의 발목을 수시로 붙잡는다.

따라비 정상에서 내려서자 편백나무 숲길. 곧 이어 억새와 잡목 무성한 평지를 가로지르다가 원시림 우거진 가시내를 거슬러 오른다.

"가시리에는 가시내, 두리물내, 구성물내 세 하천이 가로질러요.

모두 가마리 포구에서 바닷물과 합쳐지죠. 옛날엔 가시내에서 물허덕에 물을 담아 등짐으로 나르거나 우마차에 실어 옮겼어요.

대개 여자들 몫이었죠. 그래서 특히 물이 귀하고 자연이 험악한 모슬포나 구좌 처녀 만나면 잘 살겠단 소리 들었어요."





↑ [월간산]조랑말박물관 입구에 있는 행기머체. 용암이 분출될 때 형성된 돌무더기로서

다양한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머체'란 돌무더기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바위 골짜기에는 물이 흐르다 끊기기를 반복한다. 정 부위원장은 "제주 하천은 대개 폭우 직후에 잠

시 물이 흐르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건천으로 변해 버리기 때문에 늘 물이 귀하다"며 제주의 자연에 대해 설명해 준다.

가시리내 숲길은 원시 세계 속을 걷는 기분이다. 어둠침침한 분위기. 특별히 설명할 게 없다

말할 수도, 얘기할 게 너무 많다 싶은 오묘한 숲길이다. 가막살나무, 때죽나무, 노린재나무, 사스레나무

우거진, 원시림 같은 숲을 가로지르다가 숲 밖으로 빠져나오자 정 부위원장은 활짝 웃으며

"이 길이 아름다운 길 100선에 꼽힌 길"이라며 다시 한 번 가시리 꽃길을 자랑했다.

쫄븐갑마장길 트레킹 팁

조랑말체험장 기점 10km 3~4시간 걸려





↑ [월간산]앙증맞은 디자인의 갑마장길 팻말

가시리 쫄븐갑마장길은 10km 거리에 3~4시간 걸린다.

기점은 조랑말체험공원으로 잡고 꽃길 따라 유채꽃프라자까지 접근한 다음 큰사슴이오름~잣성길~따라비~가시내 원시림 숲길을 이은 다음

다시 조랑말체험공원으로 빠져나온다. 조랑말체험장~유채꽃프라자 구간은 차로 이동할 수 있다.

가시리 방문자센터를 출발해 따라비오름~잣성 길~국궁장~큰사슴이오름~ 요채꽃프라자~

가시천~꽃머체~ 행기머체~ 조랑말체험공원 ~목장길~혜림목장~ 소꿈지당~ 창작지원센터~ 한씨방묘~

방문자센터를 잇는 갑마장길은 20km 거리로 7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쫄븐갑마장길 트레킹 팁

조랑말체험장 기점 10km 3~4시간 걸려





↑ [월간산]조랑말박물관

가시리 쫄븐갑마장길은 10km 거리에 3~4시간 걸린다.

기점은 조랑말체험공원으로 잡고 꽃길 따라 유채꽃프라자까지 접근한 다음 큰사슴이오름~잣성길~따라비~

가시내 원시림 숲길을 이은 다음 다시 조랑말체험공원으로 빠져나온다. 조랑말체험장~유채꽃프라자 구간은 차로 이동할 수 있다.

가시리 방문자센터를 출발해 따라비오름~잣성 길~국궁장~큰사슴이오름~ 요채꽃프라자~가시천~꽃머체~

행기머체~ 조랑말체험공원 ~목장길~혜림목장~ 소꿈지당~ 창작지원센터~ 한씨방묘~ 방문자센터를 잇는 갑마장길은 20km 거리로 7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대중교통

제주시

→가시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4회(06:28, 11:28, 15:28, 18:28) 출발하는 버스 이용. 약 1시간, 3,000원.

문의 1688-5300.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www.jeju.go.kr) '관광정보' 좌측 '관광도우미 1교통정보' 참조





↑ [월간산]가시리 돼지국밥과 삼겹살 구이.

제주

→표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1일 46회(06:10~21:30) 운행. 1시간5분, 2,500원.

표선

→가시리 버스정류장에서 4회(07:10, 11:40, 15:40, 19:40) 출발. 15분, 1,000원. 문의 표선면사무소 064-760-4925.

자가용

제주공항→해태동산사거리→광양사거리→교래사거리 우회전→ 거로사거리 직진→교래사거리 직진→대천동사거리 우회전→

대록산 아름다운 길 가기전 삼거리에서 좌회전 후 직진→가시리사거리 1시 방향 우회전→ 가시리문화카페(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1899-1)

문의

가시리사무소 064-787-1305www.jejugasi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