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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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청우

恍惚(안개처럼소리없이나타났다슬며시사라지는)

까미l노 2013. 9. 12. 23:16

 

 

우표 한 장 붙여서

 

꽃 필 때 너를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모서리에 봄볕을 따다가 우표 한 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 않는 네 슬픔 같아

떨어진 후박 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야위어가고

미움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꽃 질 때 널 잃고도 나는 살아남아

은사시나무 잎사귀처럼 가늘게 떨면서

쓸쓸함이 다른 쓸쓸함을 알아 볼 때까지

헐한 내 저녁이 백년처럼 길었다

오늘은 누가 내 속에서 찌륵찌륵 울고 있다

 

마음이 궁벽해서 새벽을 불렀으나 새벽이

새, 벽이 될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 사랑은 만인의 눈을 뜨게한

한 사람의 눈먼 자를 생각한다

누가 한 사람을 나보다 사랑한 적 있나

누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나 말해봐라

우표 한 장 붙여서 부친적이 있나

 

천양희

 

 

음악, The Silver Veil ... Bernward K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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