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비경 한라산 탐사 산행 본문
비경을 찾아…설렘 가득한 한라산 탐사등반 | ||||||||||||||||||||||||||||||||||||||||||||||||||||||||||||||||||||||||||||||||||||||||||||||||||||||||||||
<위크앤팡> 여행과 풍경 [진창기의 ‘이런디 알암수광’] 논고악과 성널폭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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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성판악휴게소에서 5·16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2.6㎞를 내려가면 숲터널이 나온다. 숲터널은 천장과 벽이 살아있는 활엽수림으로 이뤄졌으며, 길이가 1.2㎞다. 한라산이 사시사철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듯 숲터널 역시 계절마다 다른 풍광을 연출한다. 변화무쌍한 한라산의 날씨와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방문자들을 천의 얼굴로 맞이한다.
한라산의 비경을 소개하기 위한 탐사등반은 출발부터 마음이 설렌다. 논고악(論古岳)과 성널폭포를 가기 위해 숲터널에 도착했다. 모두 숲터널 서쪽에 있는데,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탐사여정은 제2논고교 옆으로 입산하여 논고악을 등산한 후 성널폭포를 경유하여, 성판악을 오른 다음 약다린목으로 내려서 성판악 등산로를 만나 하산하기로 했다. 표고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개설했던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은 흔적이 아스라이 남아있어서 잃어버릴까봐 긴장이 된다. 목에 건 나침반을 수시로 확인하며 방향을 익혔다. 논고악을 왼쪽에 끼고 숲길을 따라 30여분 들어가면 돌담을 만난다. 조선시대 운영하던 목장의 잣성이다. 조금 더 가서 논고악 방향으로 무작정 20여분 올라가니 논고악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은 삼태기 모양으로 여느 오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오름 정상에는 능선을 따라 길이 나 있듯이 논고악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동물들이 다니면서 생긴 길이지만, 요즘은 오름 등산객들이 많아지면서 뚜렷해진 길이 많다.
'논고악'과 '성널폭포'
논고악에 대한 설명을 보면, 오창명씨가 지은 「제주도 오롬 이름의 종합적 연구」에는 "'논궤' 또는 '눈궤'는 누워있는 '궤'(바위 굴)라는 뜻이다. 곧 바위굴이 누워있는 오롬이라는 데서 '논궤오롬' 또는 '눈궤오롬'이라 하고 논고악(論古岳)으로 표기한다"고 나온다. 김종철씨의 「오름나그네」에는 "'논고오름'은 보통 줄여서 '논고름'이라고 하지만 '논고'는 그 어원을 알 수가 없다. 論古岳(논고악)이란 한자표기가 주는 인상에서 본다면, 이 오름에 올라 나무 그늘에 앉아서 선비들이 옛 글·옛 일(古)이나 선현을 논하였음직도 할 만큼 고아(古雅)한 정취가 감돌기도 한다"고 설명하였으나 모두가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성널폭포의 규모는 높이가 11m이고, 계곡전체의 너비는 30m 정도다. 폭포 바로 위에서 집수시설을 만들어 성판악등산로 입구까지 파이프로 물을 끌어가기 때문에 수량은 줄었지만, 그래도 한라산중의 폭포는 신비롭게 보인다. 물맛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솟아나기를 거듭하며 내려온 물이라서 어느 약수보다 달다. 성널폭포에는 폭포 속과 동쪽에 굴(궤)가 두 개가 있다. 폭포 속의 굴은 남향인데, 시멘트를 이용하여 굴속에 기도터를 꾸며놓았다. 기도터 규모는 바닥 폭 2.3m, 길이 7.7m, 높이가 2.2m다. 제단은 한라산 방향인 서쪽에 설치됐다. 동쪽 굴은 폭 15m, 깊이 5m, 높이 3.5m의 규모로 앞쪽은 개방되었고 굴 앞에는 조그만 공터가 있다. 인공이 살짝 가미되었지만 신선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보여진다.
여름철 물맞이터로 유명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지적측량을 위해 한라산을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고 헤매게 됐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우연히 이 굴에 찾아들었는데, 마침 사냥꾼들이 머물고 있었다. 사냥꾼은 사람이 죽게 생겼으니 정성스레 간호를 해줬다. 기력을 찾은 일본인은 사냥꾼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사냥꾼은 '이 일대를 내 것으로 해 달라'고 해서 그리 해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러나 1932년 한라산에 산도(山道)를 개설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위치가 성널폭포 옆을 지나는 도로였다. 도로개설을 위해서 측량을 해야 하므로 설득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신경통에 물맞이가 좋다 하여 해마다 여름철이면 먼 길을 찾아와 며칠씩 묵으며 물맞이를 했다. 주로 부녀자들이었으며, 특히 해녀가 많았다. 이 성널 물맞이터는 옛날엔 조천읍 교래리의 공유재산으로서 마을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고 간단한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어서 얼마씩의 돈을 받기도 했다"는 기록도 전한다. 억척스럽고 강인한 제주여인들이 한가한 농한기를 맞아 성널폭포에 가서 물맞이를 하며 고달픈 심신을 추스르고, 휴양을 취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떨어지는 폭포수로 무거운 어깨의 짐을 떨궈내 흘려보내고, 이른 새벽이면 정화수 한 그릇을 기도터에 떠다 놓고 자식들의 무운·무탈을 빌었으리라. 필자는 1980년대에 성널폭포를 방문했던 것이 마지막이어서 길동무가 필요했다. 흔쾌히 동행해준 고광익 산벗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리나 성널폭포 접근로는 정규 등산로가 아니므로 반드시 허가를 받고 들어가야 한다. /산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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