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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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

산티아고 입구에서 만난 도시에 푹 빠지다

까미l노 2012. 10. 8. 13:20

 

'산티아고의 길'은 무엇일까.

 

흔히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로 불리는 이 길은

 

간단하게 말해 스페인의 북서쪽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정확히 말해 갈리시아(Galicia)에 있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성당까지 가는 순례길이다.

 

 

영어로는 성 제임스의 길(Way of St. James),

 

프랑스어로는 생 자크 드 콩포스텔(Saint Jacques de Compostelle)이라고 한다.

콤포스텔라는 '무덤'이라는 뜻

 

굳이 한국어로 말하자면 '야곱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한 명인 야곱의 무덤이 스페인 갈리시아에서 발견된 후

 

이를 기리기 위해 성당을 지었고, 이후 유럽 전역에서 순례가 시작됐다.

초기에는 순례자가 집 앞을 나서서부터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가는 길이 모두 순례의 길이었다.

 

당연히 걸어갔고 벌이가 좀 괜찮으면, 당나귀나 말이 함께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갈리시아에 사는 사람도 그 옆 마을에 사는 사람도, 스페인 북서쪽에 사는 사람도

 

그냥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가면 순례를 마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1000년 역사가 넘은 이 순례의 여정을 계획하다보면 크게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 번째는 자전거나 차를 이용해도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것,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가 몰려들었다고 하면 도대체 루트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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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보로 100㎞ 이상 걸어야 산티아고 순례를 마쳤다는 인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모로 가도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 가면 된다.

 

사실 이제는 무척 많은 사람이 찾는 세계적인 여행 루트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순례자의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를 미리 예약해주거나,

 

좀 심심한 구간은 버스로 이동해주는 여행 상품도 등장했다.

 

종교적인 의미는 퇴색해버린 지 오래다.

다만 순례를 마쳤음을 증명하는 콤포스텔라 인증을 받으려면

 

도보로 100㎞ 이상, 자전거로 200㎞ 이상을 이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통행증처럼 사용되는 크리덴셜(Credencial)에

 

자신이 거쳐왔던 알베르게의 도장을 받아와 증명하는 것이 필수이다.

 

2010년에는 27만여 명의 순례자가 콤포스텔라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순례자가 스페인을 가로지르는 주요 루트는 하나지만

 

유럽 전역에서 피레네 산맥까지 오는 루트는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런 곳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의 루트는 피레네 산맥을 넘기 직전

 

순례의 출발지로 가장 유명한 도시인 생장피에드포르(St Jean Pied de Port)로 연결된다.

강렬한 색을 지닌 도시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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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출발지는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인 생장피에드포르(위)이다.

생장피에드포르는 프랑스의 남서부,

 

피레네 산맥을 두고 스페인과 이웃한 페이바스크(Pays Basque)의 작은 도시다.

 

페이바스크는 프랑스에 속해 있는 바스크의 땅을 일컫는데,

 

바스크인은 어느 한 국가에 완벽하게 귀속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전통을 꾸준히 지켜오는 게 특징이다.

 

일례로 스페인의 축구클럽 아틀레틱 빌바오(Athletic Bilbao)가 고집하는 바스크 순혈주의처럼 말이다.

 

이들은 프랑스어와 바스크어를 함께 사용하고 이를 당연스레 생각할 정도다.

이런 영향 때문에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순례자가 생장피에드포르에서만은

 

자신의 본분을 잠시 접어두고 도시 자체의 매력에 먼저 빠져버리기 일쑤다.

여하튼 생장피에드포르가 주는 첫인상은 이곳이 강렬한 색을 지닌 도시라는 것이다.

 

바스크 지방 특유의 사암 벽돌로 지은 건물이 옹기종기 들어찬 이곳은

 

웅장한 피레네의 산세에 둘러싸여 도시 전체가 자연과 보색 대비를 이룬다.

 

지붕이며 창문이며 집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듯하다.

 

거기에 바스크의 전통에 따라 집 하나하나에 건물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순례자들은 이런 집에서 몸을 쉬며 여정을 준비하기도 한다.

 

그리고 도시의 옛 관문인 포르생자크(Porte St Jacques)를 기점으로 첫발을 디뎌 순례의 길에 오른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칸타브리아 산맥의 줄기를 타고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 끝까지. 보통 30일에 걸쳐 800㎞를 걷는 대장정이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첫 번째 알베르게가 위치한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가

 

지리적으로 가장 가파르고 힘든 길이다.

 

스페인으로 단숨에 들어가기 위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 이후는 순전히 길을 걷는 자신에게 달렸다.

 

순례자의 길에 중독되기도 전에 지루함과 외로움에 지칠 수도 있다.

 

사진으로는 아름다웠던 풍경이 시시해질 수도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여행자가 반가울 때도 있지만,

 

알베르게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목소리나 코를 고는 소리에 짜증이 날 때도 많다.

 

걷는 내내 이런 과정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다. 그 여정 속에서 이 길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까지는 온전히 개인의 시선과 사색이 존재하기에 타인을 위해

 

그 여정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저 걸으면 된다는 것, 그것만이 전부다.

 

길 위에서 몸과 마음, 생각은 딱 걷는 만큼 움직인다. 이처럼 인생에서 명확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허태우

< 론리플래닛 매거진코리아 > 의 초대 편집장.

 

여행 관련 매체에서 뼈가 굵은 여행통. 예술학을 전공해 깊이 있고 통찰력 있는 여행 정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