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꽃들이 전하는 옛 이야기 본문
민들레는 우리 민족과 오랫동안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땅에 납작 붙어있어서 '안질방이', 여러가지 덕이 있어서 '포공영',
집둘레 문둘레에 흔히 있어서 '문둘레' 등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민들레의 이름은 이 중에 '문둘레'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한 연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을 해보니 그럴듯도 하였다.
민들레 씨앗이 땅에 떨어지더라도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결국 담벼락 밑이나 울타리 밑, 결국 사람이 사는 문둘레에서 멈출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민들레의 생태적 특징과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찜찜함이 남아있었으니... (다음 편에 계속)
...... 부 록 ......
'나는 여러 해 동안 많은 비용을 들여서 여러 나라를 여행 했다.
높은 산과 넓은 바다를 보았다.
그러나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내 집 앞 풀밭에 맺힌 영롱한 이슬방울이었다.' -- 타고르--
'나는 여러 해 동안 많은 비용을 들여서 여러 산들을 다녔다.
아름다운 꽃, 희귀한 꽃들을 찍었다.
그러나 제대로 찍어 보지 못한 것은 우리 집 앞 풀밭의 민들레였다.' -- 아이디카 --
그런데 은방울꽃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름이 있습니다.
강원도 지방에서는 이 꽃을 '바람난 며느리 속고쟁이'라고 한답니다.
이 봄 다시는 이 꽃을 찾지 않으리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깨고
이번에는 바람난 며느리 속고쟁이를 보러 갔었습니다.
은방울꽃 군락에 가도 넓고 무성한 잎 때문에 꽃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치맛자락 들치듯이 잎새를 들쳐보아야
그야말로 속고쟁이 같은 하아얀 꽃을 제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게다가 옛 여인의 은밀한 체취 같기도하고
고급스러운 향수 같기도 한 은은한 향기가 유혹을 합니다.
며느리가......
속고쟁이에 향수를 뿌리는 일은 분명 예삿일은 아니겠지요....
은방울꽃이라는 이름보다는 바람난 며느리 속고쟁이가
훨씬 이 꽃의 생김새와 향기까지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다만 부르기에 너무 길어서 보편적으로 불리우지 않는 듯 합니다.
이 깽깽이풀의 이름에 대하여 그럴듯하게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요즘 어떤 블로그에서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들이 흘러다니고 있다.
이를테면
'개가 이 풀을 뜯어먹으면 배가 아파서 깽깽거리므로 깽깽이풀이라 부른다' 던가
'개가 배가 아파 깽깽거릴 때 이 풀을 먹이면 낫는다' 하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들이 세월이 지나 정설로 굳어질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라고 단정하지는 못한다. 누가 알겠는가?
개가 풀을 뜯어 먹는지....
.......... 부 록 ............
어떤 사람이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옆에 있던 사람이 '개 풀뜯어 먹는 소리 하고있네' 라며 비아냥거리는 것을 들었다.
개가 풀을 뜯는 모습을 우리나라에서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몇 해전에 우리나라에서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일 이 있는데
그곳에 다녀온 군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동티모르에 '5 대 불가사의'가 있다고 한다.
첫 째, 동티모르에서는 개가 풀을 뜯어먹는다. 사람은 개 먹을 것까지 줄 것이 없기 때문에.
둘 째, 거기서는 돼지가 개보다 빠르다, 개는 더위에 약해 비실거리고 돼지는 먹을 것이 모자라 날씬한데다가
더위를 잘 견디기 때문에 개보다 훨씬 빨리 달린다.
셋 째, 그 나라 여자들은 달거리를 하지 않는다.
피임의 개념도, 방법도, 도구도 모르거나 없기 때문이다.
넷 째, 나라안에 교통신호등이 한 개도 없다. 차가 너무 희귀하기 때문에.
다섯 째, 쓰레기가 없다. 문명적 생산품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국군 부대에서 쓰레기 덤프가 나가면 주민들이 몰려들어 순식간에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복수초란 이름은 듣기에 따라 으시시한 복수(復讐)를 떠 올릴수도 있으나 사실은 복 복(福)자에 목숨 수(壽)자,
즉 복을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 담겨 있는 좋은 의미를 지닌 꽃이다.
복수초(福壽草)는 행복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으로 마치 황금잔처럼 생기고
이른 봄에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들꽃으로 이른 봄 노랗게 피어나는 복수초를 보면
누구나 축복을 받은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고 설중 복수초라도 만나면 그 희열 또한 이루말할수 없을 것이다.
복수초의 학명을 찾아보면 모두가 adonis라는 말이 들어가는데 아도니스(Adonis)라고 하면
미소년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는데 아도니스는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정부 노릇을 한 지상의 인간으로
아도니스의 일생에 관련된 기이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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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고대 그리스 시절 스뮈르나(Smyrna)는 처녀가 어느 날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신하여 아프로디테보다 예쁘다고 소문을 낸 모양인데
이에 분노한 아프로디테가 스뮈르나로 하여금 그녀의 아버지인 키프로스의 왕 키뉘라스(Kinyras)에게 애정을 느끼도록 만들어 버렸다.
스뮈르나는 아버지에게 생긴 연정과 욕망을 이기지 못하여 아버지에게 술을 먹인 후 아버지와의 동침하였고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야 이 일을 알게 된 왕은 딸을 죽이려 하였다.
스뮈르나의 기원으로 향나무로 변했으나 화가 풀리지 않은 아버지는 나무를 두 동강 내 버렸다.
그러자 그 속에서 아도니스가 튀어나왔다.
어머니가 없는 아도니스를 아프로디테가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맡겨 키웠는데
아도니스는 점점 자라면서 세상에 보기 드문 미남이 되었으며 그의 양모 페르세포네는 아도니스를 자기의 곁에 두고 몹시 귀여워했다.
이것을 알게 된 아프로디테는 맡겼던 아이를 돌려 달라고 했으나 페르세포네는 물론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인간을 두고 두 여신이 연적이 되고 말았다.
결국 제우스의 중재로 일 년의 삼분의 일은 지하세계에서 페르세포네와 함께 보내고,
또 다른 삼분의 일은 아프로디테와, 나머지 삼분의 일은 아도니스의 자유의사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아도니스는 자신의 몫도 아프로디테와 함께 지냈다.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페르세포네와 지내기보다는 밝은 지상에서 아름답고 관능적인 아프로디테 곁에 있는 것이 훨씬 즐거웠기 때문이다.
아프로디테 역시 아도니스에게 푹 빠져 있었다. 산과 숲에서 사냥하는 아도니스를 따라다니기 위해 올림포스까지 등지고 마법의 띠를 이용하여 아도니스의 정욕을 계속 부추겼다. 이에 화가 난 페르세포네는 역시 아프로디테의 정부인 아레스를 시켜 아도니스를 죽이도록 했다.
아레스는 자기 이외에 더욱이 애숭이 인간이 아프로디테를 사로잡았다는 것이 불쾌해서
곧 한 마리 멧돼지의 모습을 갖추고 마침 사냥을 하고 있는 아도니스에게 달려들어 넓적다리의 동맥을 물어 뜯고 말았다.
아프로디테는 백조가 끄는 이륜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었으나 아직 키프로스 섬에는 닿지 않았다.
그때 다시 백조를 지상으로 향하게 했다. 이윽고 공중에서 피투성이가 된 아도니스의 시체를 발견하자 급히 지상에 내려
시체 위에 엎드려 가슴을 치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그녀는 운명의 여신을 원망했다.
그녀는 그 피 위에 신주인 넥타르(Nectar)를 뿌렸다. 피와 신주가 섞이자 마치 연못 위에 빗물이 떨어졌을 때 같이 거품이 일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지나자, 석류꽃 같은 핏빛 꽃 한 송이가 피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바람이 불어서 꽃을 피게 하고,다시 또 불어서 꽃을 지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아네모네(anemone) 즉 '바람꽃'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그 꽃이 피고 지는 원인이 다 바람이기 때문이었다.
아프로디테는 끝내 아도니스를 잊을 수 없어 아도니스를 지상으로 되돌려 보내 아도니스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페르세포네에게 간절하게 빌었다.
두 연인의 애절한 사랑은 측은히 여긴 페르세포네는 이를 허락하여 아도니스는 다시 일 년의 육 개월 동안은
지상에서 아프로디테와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아도니스는 죽음에서 부활하였다.
이름 짓는데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요즘과 달리 삶이 힘겨웠던 옛날에는 이름짓기에 신경을 많이 쓸 여유가 없었다.
'개똥이''삼식이''또불이'처럼 사람의 이름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름들을 흔히 사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 이름들이 이러했는데 식물의 이름이야 오죽할까.
꽃이 아주 예쁘거나 성분이나 재질이 좋아 쓰임새가 요긴한 놈들은
'참나무''마가목''상사화''능소화'처럼 그럴사한 이름을 얻었으나
그러지 않은 식물들은 '중대가리풀''쥐똥나무''도둑놈의지팡이''며느리밑씻개''여우오줌'처럼 부르기에 거북한 이름이 지어졌다.
사상자도 그중의 하나로 열매가 맺힌 모습이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듯 하다 하여
한자어로 사상이라 하는데 북한에서도 이 식물을 뱀도랏이라 부른다.
개사상자는 초여름에 꽃을 피우고 늦여름이면 열매가 익는다.
열매껍질에 돌기가 난 털이 발달되어 동물의 몸에 잘 붙는다.
종자를 여러곳으로 보내서 자손을 널리 퍼뜨려서 종족을 보전하려는 식물의 수 억 년 내려온 진화의 결과인데
기껏 2 만 년 살아오면서 지구의 주인이라 큰소리치는 인간이 어리석다.
열매가 밤처럼 고소하고 생긴 모습이 말의 발굽을 닮아서 말밤이라고 부르기도하고,
물에 자란다하여 물밤이라고도 불렀다. 군것질 거리가 없던 어릴적, 저수지에서 멱 감다가 건져서 깨먹으면 참 고소하였다.
물 가장자리에 자라는 것은 열매가 채 여물기도 전에 아이들의 손을 타고,
제대로 알이 찬 놈은 저수지 가운데에 자라므로 산에서 칡덩굴을 걷어다가 그끝에 갈고리를 메어 던져보지만 별로 신통치 않다.
헤엄실력이 좋은 아이들은 물로 뛰어들어 마름 덩굴을 무더기로 걷어오고,
뚝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은 마름 따온 아이의 몸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주는걸로 분업이 이루어 졌다.
잊혀져가는 그 맛을 느끼고 싶어 날을 정하여 연못이 있는 구토란요를 찾았다.
작은 연못이라 뜰채로 잠시 건진 것이 두 냄비나 된다.
삶아서 입에 넣으니 껍질이 너무 여물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니 아주 단단해졌다.
힘겹게 갈라서 속을 먹으니 맛은 좋다.
마름을 건지면서 살펴보니 재미있는 생존의 지혜가 숨어 있었다.
마름이 물에 뜨는 것은 잎자루와 꽃자루에 공기주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열매가 완전히 익으면 열매의 양 끝에 강한 돌기가 달린 가시가 자라면서 꽃자루와 열매가 서서히 분리되는데
이즈음에 물고기나 개구리 같은 수서 생물들의 몸에 가시가 박히면 빠지지 않게 되고
그 동물이 발버둥치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죽게 되면 거기서 발아하여 식물의 전파가 이루어진다.
열매껍질이 단단한 것은 수 년 동안 물속에서 썩지 않고 견뎌야하기 때문일거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하며 습지를 찾는 이들에게 순백의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좀어리연은 세상에서 가장 자그마한 연꽃입니다.
여름날 몇 차례 비가 퍼붓고 나면 자그마한 수생식물은 물속으로 잠겨버립니다.
수생식물 대부분이 오전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맑은 날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 아름다운 선물을 제대로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발만 동동 구르다 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좀어리연의 반영을 멋지게 담을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이번에도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는 만큼 다음이란 약속을 남겨놓습니다.
보일 듯 말듯 자그마한 꽃, 좀어리연, 좀향유, 좀민들레 등 큼지막한 꽃에 비해 작기 때문에 '좀'이란 접두사가 붙습니다.
'좀어리연'보다 '애기어리연'이라 부르는 것이 정감이 가고 사랑스럽습니다.
애기어리연은 제주에서 처음 발견된 수생식물입니다. 첫눈에도 애기어리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어리연에 비해 아주 작습니다. 꽃의 생김새는 비슷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릅니다.
어리연의 꽃자루는 길게 올라오는 반면에 애기어리연의 꽃자루는 짧아 수면으로 올라와도 꽃만 떠 있는 느낌이 듭니다.
어리연과 애기어리연 크기를 비교해보면 마치 엄마와 아기를 보는 듯 애기어리연은 손톱만큼 작고 아기처럼 귀엽습니다.
1cm도 채 되지 않는 자그마한 하얀 꽃송이가 수면으로 올라와 꽃을 피우는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에 빠진 미소년 나르시스 같습니다.
물속에 비친 좀어리연의 모습에 빠져 버린 것은 사실 애기어리연이 아니라 습지탐사에 나선 우리입니다.
아름다운 모습에 정신이 나가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거머리가 슬금슬금 다리에 붙는 줄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반영으로 인해 더욱 빛나 보이는 애기어리연 꽃잎을 찬찬히 살펴보면 색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꽃잎 뒷면 끝 부분에 연분홍 점을 찍어 놓은 듯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손톱만큼 자그마한 꽃이라
제대로 눈여겨보지 않으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수생식물의 아름다움은 반영에 있습니다. 바람도 숨죽이듯 스쳐 지나가는 못 속으로
피어나는 애기어리연의 반영은 고요함이 깃든 한편의 詩가 되어 습지를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선물로 안겨옵니다.
![](http://www.indica.or.kr/xe/files/attach/images/2410836/863/411/002/삼도하수오.jpg)
![](http://www.indica.or.kr/xe/files/attach/images/2410836/863/411/002/삼도하수오_꽃.jpg)
![](http://www.indica.or.kr/xe/files/attach/images/2410836/863/411/002/나도하수오.jpg)
몸에 좋은 비싼 보약으로 말하자면 어디 산삼이나 하수오 뿐이겠는가.
녹용, 웅담, 백사, 상황, 영지, 동충하초, 물개머시기... 열거하기도 벅차다.
그런데 이렇게 귀하고 비싼 보약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형편에 있었던 사람들이
특별히 오래 살았다는 소리는 들어 본 일이 없다.
내 생각으로는 귀하고 비싼 이런 보약들보다도 더 좋은 보약이 얼마든지 있을 것 같다.
그것은
'검소한 음식 맛있게 먹기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습관이나 취미
'감동과 감사에 인색하지 않는 마음
'낙천적 생각과 밝은 웃음
'자연과 인간에 대한 진솔한 사랑!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보약들은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으며
사용할수록 풍부해지는 것이며
어떠한 재난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다.^^
오름마다 보랏빛 꽃송이들이 하나 둘씩 피어나 가을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연인처럼 속삭이듯 가을바람이 부드러운 음색으로 살랑거리며 다가옵니다.
두둥실 떠가는 꽃구름 속으로 피어나듯 반겨줄 것만 같은 들꽃, 가을이 오면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보고 싶다 하여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속에서 그리다 보면 만날 수 있나 봅니다.
보고 싶다 하여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마음속에서 그리다 보면 만날 수 있나 봅니다.
몇 년 전부터 소황금을 찾아 헤맸으나 꽃이 피는 시기를 몰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충 여름에 피우는 꽃으로 생각하고는 무더위 속에서 무작정 헤맸던 적이 있습니다.
자생지에서 한번쯤은 꼭 만나고 싶었던 꽃, 드디어 만났습니다.
제주에만 자생한다는 희귀식물 '소황금'이 가을 하늘처럼 어여쁘게 피어났습니다.
소황금은 골무꽃속 꿀풀과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꽃의 생김새는 골무꽃과 비슷하나,
잎은 피침형으로 마주나며 '황금'과 달리 식물 전체가 소형으로 땅을 기다시피 자란다고 하여
'소황금'이란 이름을 가졌나 봅니다. 하지만, 땅을 기다시피 자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가을 하늘에 수채화를 그려 놓은 듯 화려하지도 않은 수수한 빛깔로 피는 소황금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 이름을 가졌습니다.
꽃, 잎, 줄기를 아무리 봐도 황금빛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황금색이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뿌리를 캐서 확인 해 볼 수는 없습니다.
검색을 하여 여기저기 찾다 보니 황금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찾았습니다.
뿌리가 황색이라 황금색의 뿌리를 지닌 풀이란 뜻으로 황금(黃芩)이란 이름을 가졌다고 하네요.
아름다운 소황금이 겨우 한 개체만 꽃을 피워 아쉬움은 있었지만,
멸종위기에 처한 소황금을 자생지에서 본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입니다.
'소황금'은 2002년 '한라식물사랑회'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희귀식물이며 보호식물입니다.
'소황금자생복원사업'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가을 하늘에 푸른 물결 일렁이듯
소황금이 만발하게 피어나기를 기원해봅니다.
서두에 마타하리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던 까닭이 딱 한 가지가 있다.
마타 하리는 1876년 8월 7일, 네델란드에서 인도네시아인 부모로부터 태어났고
원래 이름은 마가레타 (Margaretha Geertruida Zelle) 였었다.
마타 하리(Mata Hari)라는 애칭은 인도네시아어로 ‘여명의 눈동자’ 즉 ‘태양’이란 뜻이다.
마타하리는 1917년 10월 15일에 총살형으로 삶을 마감했다.
형장에서 그녀는 스스로 모든 옷을 벗어 던지고 전라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눈을 가리는 것마저 거부하고 10 개의 총구 앞에 당당히 섰다.
가혹한 판결에 대한 항변이었는지, 한 여자였을 뿐이었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는지
사라진 여인은 침묵할 뿐, 이제 와서는 알 길이 없다.
마타리의 꽃은 8월 초에 피기 시작해서 10월 중순까지 피어있다.
이 꽃과 이름이 비슷한 마타하리도 8월초에 태어나 10월 중순에 사라져갔다.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의 문턱에서 피어나는 마타리를 보며
치명적으로 매력적이었던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생각해 보았다.
![](http://www.indica.or.kr/xe/files/attach/images/2410836/784/411/002/달맞이꽃군락_보름.jpg)
![](http://www.indica.or.kr/xe/달없는_달맞이꽃.jpg)
![](http://www.indica.or.kr/xe/files/attach/images/2410836/784/411/002/달맞이꽃_월식.jpg)
보름달 뜨는 밤에 어울리는 시 한 편 올려본다.
젊은 나이에 애석하게 작고한 고정희 시인의 '파도타기'란 시인데
그녀가 사랑하는 이와 보냈던 황홀한 밤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묘사했다.
.......... 파 도 타 기.......
둥근 젖무덤에 보름달 떠올라 하룻밤 사무치자 하룻밤 사무치자
팔벌린 그 밤에 동쪽 샘이 깊은 물에 보름달 주저앉은 그 밤에...
느닷없는 부드러움이 두 가슴을 옥죄이던 그 밤에
깊고 푸른 밤이 불을 켜던 그 밤에
사십 도의 강물이 범람하던 그 밤에...
불꽃춤 찬란하던 그 밤에
서해안의 파도소리 하얗게 부서지던 그 밤에
물미역 아름답게 흔들리던 그 밤에
별들이 내려와 드러눕던 그 밤에.....
새벽 달빛 호호탕탕 넘어가던 그 밤에
아아 아홉 가지 봉황깃털 창궁에 자욱한 그 밤에
그대와 나 수미산 꼭대기에 떠올라 우주와 교신하던 그 밤에....
바위솔....
와송이라는 예명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남들은 다 기와지붕에 있는 와송을 촬영 하는데
난 아직 고 사찰에 핀 와송을 본 적이 없다.
기와라는 것이 황토흙으로 적당한 온도에 구워 지붕 재료로 쓰였겠지만
요즘들어 전통기와를 모방한 콘크리트기와
프라스틱 기와도 많아 눈속임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직은 잘 모르지만 고온열처리된 흙과 석회질
그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 군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옛 선조들이 지붕에 기와를 얹을때 황토흙으로만 하면
내구성이 없어 석회를 섞어 공사를 했다.
요즘에야 석회보다도 더 강한 시멘트가 있지만
옛기와 지붕에서 와송이 자라는 것은 석회질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와송이 자라는환경은 PH산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을 한다.
내가 봐왔던 바위솔이 자라는 환경은 석회질의 푸석한 바위틈사이에서
관찰할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공사하는 현장에 정자를 시공하면서
프라스틱 기와면 어떻고 ..시멘트 기와면 어떠랴..
그 비싼 전통기와를 고집했던 이유 하나는
와송을 심고 싶었다...
황토와 소석회를 반죽할때 와송 씨앗을 섞어 반죽을 했고
기와 얹을때 바위솔을 식재하였는데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혼자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이야 잡초라고 하면 어떠랴...
나는 와송이 만발한 지붕을 만들고 싶고..
남몰래 고압 분무기로 지붕에 물을 뿌리곤한다...
올해 노란별수선이 70년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지요.
신문을 보는 순간 앗! 하고 스치는 식물이 있었습니다.
2005년도에 처음 보고는 순간 이상한 식물이라 여겼던 적이 있었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희귀한 식물임은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2년 동안 묻히게 되었지요.
사초과처럼 생긴 잎은 가늘고 털이 많으며 곧게 서지 못한 채 누워 있으며,
잎 밑동에서 올라오는 꽃자루는 3cm 이며 그 당시 지방이 열려 있는 상태를 보고는 꽃이 피어 있는 상태로 착각을 했습니다.
자방이 금방 열려 있는 것을 보면 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마치 꽃처럼 보입니다.
하얀 꽃으로 핀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혹시 떠들썩한 노란별수선은 아니라도 같은 종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잎의 형태를 보면 영락없이 노란별수선과 흡사했습니다. 뿌리는 알뿌리에 수염뿌리입니다.
꽃이 피면 정확히 알 수 있겠다 싶어 기다렸습니다.
올해에는 제대로 관찰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갔습니다. 겨우 꽃봉오리만이 반겨줄 뿐 꽃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정도 기다리면 꽃이 피겠지 라는 생각으로 두 번 째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꽃은 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될듯싶었습니다.
꽃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너는 누구니? 꽃이 피면 제대로 알 수 있겠지 라는 생각으로 기다렸습니다.
세 번째 찾아가는 날, 오늘은 분명히 꽃이 피었을 거라는 생각으로 마음은 급해져 갔습니다.
늘 오후에 찾아갔던 숲으로 얼른 달려가서 만나고 싶은 생각에 서둘러서 갔습니다.
우리만이 아는 숲으로 갔습니다. 가만히 앉아 꽃봉오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실망을 시켜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그마한 희망을 안고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꽃봉오리만이 눈에 띕니다. 아, 더 기다려야 꽃이 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차마 일어서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그 순간 자그마한 노란 꽃송이가 활짝 웃으면서 '나 여기 있어!'라고 속삭이듯이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아름다운 자그마한 꽃송이에 반해 한참 동안 눈맞춤을 했습니다.
여름 햇살의 뜨겁게 숲 가장자리로 내리쬐어 준 덕분인지, 꽃잎이 다물지 않고 활짝 피었습니다.
꽃잎은 여섯 장이며 꽃의 길이는4mm,정도 이며 여섯 장의 꽃받침 뒷면에 털이 나있습니다.
한참 동안 꽃잎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꽃이 부끄러워서 그런지 서서히 꽃잎이 다물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만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꽃도 부끄러웠을 테지요?
노란별수선은 아침에 피었다가 낮에 꽃잎을 서서히 다물기 시작하더군요.
꽃이 피는 때를 모르고 찾아갔으니 꽃잎은 당연히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을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줄 알고 꽃이 피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미 꽃은 피고 진 후에도 꽃봉오리라 착각을 하고 기다렸던 날들은 나에게 아름다운 설렘의 시간이었습니다.
꽃은 지고 이제 다음 세대를 기약하고 있습니다. 검은 씨앗들이 여물어가면 자방은 다시 꽃처럼 열리게 되고
깨알보다 자그마한 검은 씨앗들은 또 다른 세상을 열어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레몬향으로 풍겨오는 매발톱꽃을 만나려 한라산으로 달려가고 싶었습니다.
한 주가 지나도 이런저런 핑계로 산행을 미루게 되었습니다.
관음사코스로 가려면 아침 일찍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 탓에 섣불리 나서지 못했습니다.
주말까지 꽃이 기다려 주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성급한 마음에 늦게라도 한라산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배낭이 가벼워야 한결 편안하게 오를 수 있습니다. 물 한 병과 바나나 두 개를 챙기고 집을 나셨습니다.
관음사 야영장에 도착하니 11시 35분이 되었습니다.
매표소에서 어디까지 갔다올 거냐고 묻습니다. 용진각 계곡까지 갔다올 생각이라 말했습니다.
공군사관생도들이 하산하기 전에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렇겠다고 말씀을 드리고 한라산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관음사에서 백록담까지는 8,7Km, 보통 5시간 소요합니다. 왕복 8시간 정도 잡으면 됩니다.
정상은 포기하고 용진각 계곡까지는 6,8km, 3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왕복 5시간 잡으면 됩니다.
그러나 꽃을 촬영하면서 오르다 보면 24시간도 부족합니다.
오늘의 목표는 용진각 계곡까지 정했습니다. 왕복 소요시간은 7시간으로 정했습니다.
관음사 야영장에 도착하면 6시 35분이 되어야 합니다.
느지막이 오르는 산행이라 시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라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함은 물론이고
날이 어둡기 전까지는 하산해야 한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렌턴도 챙기지 않아서 날이 어두워지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한적합니다. 울창한 산길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외롭거나 고독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시원스러운 풀향이 산바람에 실려와 성급한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삼각봉까지는 그다지 꽃이 눈에 띄지 않습니다.
가끔 호자덩굴과 눈맞춤을 하면서 조용한 산길을 올랐습니다.
초록으로 물든 숲, 그 자체만으로도 상큼하니 좋습니다.
삼각봉까지 적어도 2시까지 도착은 해야 합니다. 꽃과의 만남의 시간도 넉넉히 가져야 하니까요.
다를 때 같으면 쉬엄쉬엄 여유를 갖고 올랐을 것인데 오늘은 다릅니다.
삼각봉에 도착하니 1시 50분, 아름다운 꽃, 매발 톱 꽃이 그 자리에 어여쁘게 피어 있습니다.
어찌나 고마운지 전에 맡았던 레몬향이 그리워서 다시금 맡아보았습니다.
살며시 풍겨오는 레몬향기에 마음이 자꾸 끌립니다.
매발톱꽃의 꽃말은 '승리의 맹세'입니다. 용맹스러운 매의 발톱을 닮은 꽃, 매발톱꽃은 얼짱입니다.
사진발도 잘 받는 화사한 색감에 큼지막합니다.
매발톱꽃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피로가 풀립니다.
언제 힘들게 올라왔나 싶을 만큼이나 피로가 쫙 풀립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데 상큼한 향기로 피로를 풀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꽃잎 뒤쪽에 있는 네 개의 뿔 모양을 '꽃뿔'이라 합니다.
꽃뿔, 예쁜 말이지요. 그런지 뿔 모양이 꽃처럼 예쁩니다. 꽃뿔은 달콤한 꿀이 들어있는 꿀주머니지요.
그 모양새가 매의 발톱처럼 안으로 굽어 있어서 '매발톱꽃'이라 합니다.
한라산에서는 유월 중순에 피기 시작합니다. 꽃은 가지 끝에서 아래로 향해 달립니다.
꽃받침은 꽃잎 같습니다. 꽃받침 안쪽으로 보이는 노란 빛깔의 꽃입니다.
꽃잎 안쪽을 들여다보면 자그마한 노란 꽃술이 보입니다.
아름다운 꽃과의 만남을 넉넉하게 가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고산구슬붕이)
또 한 가지의 상상은 구슬붕이와 땅구슬이라고도 불리우는 현호색이
비슷한 시기와 장소에 핀다는 점에서 생각해 본 것이다.
현호색의 뿌리는 얕아서 그냥 뽑아도 딸려나오는데 그 모양이 아주 동그랗고
구슬붕이에 올려놓고 놀기 좋은 크기와 무게의 구슬이다.
그래서 현호색을 어떤 지방에서는 땅구슬이라고 부른다.(P섬 주민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렇다면 옛날 아이들이 누가 땅구슬을 구슬붕이에 빨리 올려 놓나 내기를 했거나
그와 비슷한 어떤 방식의 놀이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보았다.
어쨌거나 옛 추억을 더듬어가는 것이나 상상을 해 보는 것은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로 행복을 맛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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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부터 장마가 온다 하니 그 사이에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한라산을 오를까? 아니면 혹난초가 꽃을 피웠는지 확인하려 가볼까 이런저런 궁리 끝에 우선 물 한 병과 도시락을 챙겨서 집을 나섰습니다.
혼자 찾아가는 산길, 조금은 외롭지만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좋습니다.
깊은 산 속을 가는 데는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렇지만, 만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무서움을 각오하고 계곡을 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겁이 많았던 나였는데 언제부터 강심장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도 아닌데 겨우 꽃을 만나러 가는 일인데 무서움을 각오하고 가야하는지 자신에게 되물어보았습니다.
올해 보지 못하면 내년에 보면 되는대도 고집스럽게도 꼭 만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니 몸은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꽃이 피어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헉헉거리면서 올랐습니다.
숨이 찼지만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꽃이 지지 않고 피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꽃이 하도 작아 꽃의 어떻게 생겼는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꽃처럼 흐릿하게 보입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디카를 꺼내 아무리 담았지만, 제대로 담을 수가 없어 안타까움으로 가득 찼습니다.
혹난초가 피기를 또 얼마나 기다렸는지 꽃봉오리 상태를 확인하고 하산했던 일, 꽃이 피기만을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꽃에 열중하다 보니 깊은 산 속에 혼자 있다는 생각마저 잊었습니다.
혹난초는 상록수나 바위에 자라는 소형의 상록성 착생종으로 잎은 육질이며 두껍고 긴 타원형입니다.
잎 밑에 타원형이 혹처럼 생겨서 혹난초, 또는 보리 알을 닮았다 하여 보리난초라 부릅니다.
종명으로 inconspicuum은 라틴어의 '현저하지 않다.'라는 뜻으로 꽃이 작아 잘 보이 않는다는 뜻입니다.
난과 식물 중에서 꽃이 가장 작습니다. 이보다 자그마한 꽃을 피우는 난초는 없을 것입니다.
꽃의 모양은 눈으로 봐도 제대로 확인이 되지 않습니다. 눈곱만큼이나 작습니다.
꽃은 황백색으로 피며 꽃이 작기 때문에 꽃이 피어도 잎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가까이서 담아도 뚜렷하게 담을 수 없는 안타까움에 혼자 깊은 산 속에서 혹난초 꽃과 씨름을 하다
꽃을 본 것만으로 만족하며 깊은 숲 속을 벗어났습니다.
깊은 숲 속을 벗어나 안도의 숨을 몰아쉬는데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직감하고는 친숙했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나 봅니다.
천진스러운 눈빛, 바로 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일 테지요.
서로 같은 길을 가는 사람끼리 부담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
말없이 있어도 서로 통하는 일, 즐거운 만남이란 바로 이런 것 일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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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ndica.or.kr/xe/files/attach/images/2410836/610/411/002/기생꽃기둥서방.jpg)
조선조 말에 기생사회에서 가체라는 가발이 유행을 했고
여염집 여인들에게도 널리 번져나갔다.
급기야 머리장식을 하는데 그 비용이 칠팔만냥에 달하였을뿐만아니라
어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들어서는데 예를 갖춘다고 급히 일어서다가
가체의 무게때문에 목뼈가 부러지는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출처: 이덕무의 청정관전서)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영조는 가체금지령을 내리고
정조는 이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가르마를 타게 했다.
기생꽃은 옛날 기생의 머리를 장식하던 꽃 모양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체금지령이 내려진 이후에 머리에 꽃을 꽂는 풍습이 생겼을 듯하다.
꽃으로 머리를 장식한 기생의 모습은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으나
조화를 만들어서 머리장식으로 썼다면
기하학적으로 단순하게 생긴 기생꽃 모양을 닮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 사 족 ---
조선 중기의 문인이면서 정치가였던 송강 정 철(鄭澈)은 명기 진옥(眞玉)과 교유했다.
어느날 정 철이 농삼아 진옥의 이름을 빗대어 시조 한 수를 읊었다.
옥이 옥이라하니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사 보아하니 진옥(眞玉)임이 분명하다.
마침 내게 살송곳 있으니 꿰어볼까 하노라.
이에 답하는 진옥의 시조가 걸작이다.
철이 철이라하여 석철(石鐵)만 여겼더니
이제사 보아하니 정철(正鐵)임이 분명하다.
마침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본들 어떠리.
명기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를 맞으며 랜턴 불빛만을 의존해 산길을 올랐습니다.
그림자도 숨어버린 칠흑 같은 산길은 으스스한 기운이 감돌며 깊은 장막을 깨우는 산물 소리에 가끔 철렁 내려 앉기도 했습니다.
뒤척이며 흘러가는 산물도 나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밤새 쉬지 않고 흘러가고 있을 것입니다.
꽃님과의 만남을 생각하면 무서움도 사라지고 힘이 절로 솟구칩니다.
그를 향해 가는 마음에는 거짓 없이 때묻지 않는 마음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디선가 산나그네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흘러가고 있는 산물의 깨끗함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눈맞춤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만을 생각하며 가야 하는 발걸음에는 무겁게도 세상사 시름을 실어 놓았으니 헉헉거리며 산길을 올랐습니다.
칙칙했던 어둠을 뚫고 여명이 밝아왔습니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산길은 조금만 오르면 정상에 서게 되는데도 왠지 무거운 발걸음을 쉽사리 옮겨놓기 힘이 들었습니다.
무거운 세상사 이야기를 가득 싣고 왔기 때문인가 봅니다.
아, 어딘가에 훌훌 벗어 놓고 가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운무에 내려놓아도 좋으련만, 산길에 벗어 놓아도 좋으련만,
자꾸만 무겁게 짓눌리는 세상사 이야기를 안고 가야하다니 그 짐은 두 배로 무거워져 갔습니다.
깊은 심호흡을 해도 쉽사리 내려놓지 못하는 무거운 세상사 이야기….
새벽을 깨우는 산새소리에 조금씩 가벼워져 갔습니다.
그러다 첫눈을 마주친 나도옥잠화의 하얀 꽃잎에 무거운 짐들을 훌훌 벗어 놓았는지
어느새 그를 만나고 나서는 새털처럼 날아오를 수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밤새 내린 비에 흠뻑 젖은 꽃잎, 살며시 고개를 숙인 수줍음과 난처럼 고고한 품위를 지닌 아름다운 꽃, 나도옥잠화입니다.
구상나무 숲 아래 있는 듯 없는 듯 피어나는 아름다운 들꽃의 순수함에
나도 모르게 그 무거웠던 짐을 훌훌 벗어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떠오르는 붉은 정열의 불덩어리를 보지 않아도 그가 내 앞에 있음으로 행복한 순간입니다.
청초한 하얀얼굴,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한 떨기 나도옥잠화 앞에 한참이나 머물었습니다.
강열한 빛이 내리던 날에는 그의 고운 하얀 얼굴을 어여쁘게 담을 수 없어 안타까움이 많았으나,
청초한 순수함을 담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이슬비에 젖은 풀잎의 싱그러움과 고요한 새벽을 깨우는 산새의 노랫말이 흩어져 갈 즈음
자그마한 풀꽃과의 눈맞춤으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나의 주변에 있는 그 모든 것들이 고맙고 사랑스러움을 다시금 느껴 봅니다.
꽃을 쫓는 눈먼 사람이 되지 말자고 꽃을 좇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꽃처럼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을 내다보고 꽃처럼 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져보자고 다시금 혼잡한 마음을 추슬러봅니다.
작은 풀섶에 맺힌 이슬 한 방울처럼 영롱하게 빛날 수 있는 추억을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나와의 스치는 그 모든 것을 더욱 사랑하고 소중함을 간직해야 한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봅니다.
자그마한 풀섶의 인연이라도 이슬 한 방울의 눈물도 소중함을 다시금 새기면서….
인디카 사진 동호회 회원들의 글과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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