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대지에 봄비가 내린다.
한겨울의 추위도 아랑곳 없이 메마른 산야에 노랑 꽃을 피워 올렸던 복수초도 형형색색의 노루귀도
꽃쟁이들의 시야에서 한 발짝 물러섰을 쯤에 완숙한 봄을 알리는 아지랭이와 함께 피어나는 꽃이 있다.
이름하여 산자고(山慈姑),
慈姑는 자애로운 시어머니를 뜻하는 말로 옛날에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자고(慈姑)가 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는 일이였다.
시아버지에게 홀대받은 시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며느리였음을 말해 주는 꽃도 있다.
그 꽃이 꽃며느리밥풀과 며느리밑씻개이다.
이 두 식물은 고부간의 갈등을 그리는 대표적인 식물이라면 고부간의 아름다운 사랑을 담고 있는 식물이 산자고이다.
다음은 산자고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를 간추려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효성 지극한 며느리가 등창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날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등창을 치료할 약재를 찾아 산 속을 헤매다가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별처럼 예쁘게 핀 작은 꽃이 눈에 띄었는데
꽃이 피기에는 좀 이른 계절이라 신기하게 바라보다가 그 꽃 속에서 며느리의 등창에 난 상처가 떠올라
그 뿌리를 캐어다가 으깨어 며느리의 등창에 붙여주자 흘러내리던 고름도 없어지고 며느리를 괴롭히던 상처도 며칠만에 깜쪽같이 치료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로 인해 이 식물은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등창을 치료해 준 "산에 자라는 자애로운 시어머니"라는 의미가 담긴 산자고(山慈姑)가 되었다 한다.
며느리는 늘 피해자의 입장을 묘사해서 식물 이름이 붙여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산자고는 이름의 유래만으로도 사람들로부터 크나 큰 사랑을 듬뿍 받아도 손색이 없는 식물이 아닌가 생각한다.
가느다란 줄기에 지탱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큰 꽃을 달고 있는 산자고,
이 산자고도 서식지 환경에 따라 두가지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 자란 산자고는 꽃줄기도 길게 자라고 줄기가 꽃을 지탱할 힘도 없어 꽃이 옆으로 누워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첫번째 사진이 빛이 잘 들지 않은 야산 숲 속에 있는 것을 찍은 것으로 자신의 꽃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옆으로 누워 있는 형상이다.
반면에 따뜻한 양지녘 언덕배기에 자라는 산자고는 꽃줄기가 짧고 단단해서 강한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자라며,
줄기는 더욱 단단해지고 일천한 환경에서도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나간다.
2010년 2월 말경 제주도에 세복수초를 보러 갔었는데 제주의 해안가 언덕배기에 봄마중 나온 산자고가 꽃을 피워
아름드리 자라고 있는 모습에 감탄을 자아낸 적도 있었다.
특히 이 식물은 빛에 민감한 식물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는 꽃잎을 연 모습은 볼 수 없다. 빛이 없는 날에는 하루종일 꽃잎을 열지 않는다.
산자고는 '까치무릇'이라는 이명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까치무릇이라는 예명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어떤 이는 무릇과 비슷한 점을 찾으려고 하는데 무릇보다는 중의무릇에서 까치무릇과 비슷한 점을 찾는 것이 훨씬 좋을 듯하다.
단지 '무릇'이라는 이름 앞에 '까치'라는 접두어가 더 붙어 있어서 억지로 '무릇'과 비슷한 면을 찾으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저렇게 맞추어 보기도 한다.
좌우로 뻗어나간 줄기 잎의 형태는 뿌리에서 나온 하나의 잎을 가진 '중의무릇'과 아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화색과 꽃이 달리는 수에 차이가 난다. 까치무릇은 줄기 끝에 흰색의 꽃을 하나만 가지며 꽃잎 뒷면엔 붉은 색의 줄무늬가 강하게 발달되어 있다.
그런데 중의무릇은 꽃줄기에 보통 3개 이상의 꽃(10개 이하)을 가지며 화피도 6장에 노란색 꽃으로 화피 뒷면은 초록색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총상꽃차례로 피는 무릇보다는
화피도 6장으로 같은 이 중의무릇이 까치무릇에 더 가깝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단지 '까치'라는 말은 꽃잎 뒷면의 붉은 색 줄무늬가 까치의 형상을 닮아서 '중의'라는 말을 빼고 '까치'를 넣어서 '까치무릇'이라고 했다고 하면 비약일까?
뒷산엔 시어머니 산자고가 피어나 고부간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고,
앞산엔 봄처녀 까치무릇이 아름답게 피어나 봄소식 전해주고 있다. 이 까치무릇의 꽃말이 '봄처녀'라고 한다
인디카 사진 동호회 -푸른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