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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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의 벤치

이정하/ 빈 강에 서서

까미l노 2009. 3. 19. 22:42


이정하/ 빈 강에 서서



1
날마다 바람이 불었지
내가 날리던 그리움의 연은
항시 강 어귀의 허리 굽은 하늘가에 걸려 있었고
그대의 한숨처럼 빈 강에 안개가 깔릴 때면
조용히 지워지는 수평선과 함께
돌아서던 그대의 쓸쓸한 뒷모습이 떠올랐지
저무는 강, 그 강을 마주하고 있으면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목숨처럼 부는
목숨처럼 부대끼는 기억들뿐이었지


2
미명이다
신음처럼 들려오는 잡풀들 숨소리
어둠이 뒷모습을 보이면
강바람을 잡고 일어나 가난을 밝히는 새벽 풍경들
항시 홀로 떠오르는 입산금지의 산영(山影)이 외롭고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슬픔의 시작이었지


3
다시 저녁
무엇일까 무엇일까 죽음보다 고된 하루를 마련하며
단단하게 우리를 거머쥐는 어둠
어둠을 풀어놓으며 저물기 시작한 강
흘러온 지 오래인 우리의 사랑
맑은 물 샘솟던 애초의 그곳으로 돌이킬 수 없이
우리의 사랑도 이처럼 저물어야 하는가
긴 시름 끝의 마지막 인사를
끝내 준비해야만 하는가


4
바람이 불었다
나를 흔들고 지나가던 모든 것은 바람이다
그대 또한 사랑이 아니라 바람이다
강가의 밤, 그 밤의 끝을 돌아와
불면 끝의 낭자하게 움트는
저 새벽 여명까지도 바람이다
내 앞에선 바람 아닌 게 없다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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