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도시락 본문
도시락...
어릴적...아마 1960년대 말경이겠지...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그땐 국민학교라고 했었지,
기억에 노란색 도시락통을(점심 뺀또)한 번이라도 제대로 싸간 기억이 있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빈부의 격차야 비슷했겠지만 도시락을 제대로 싸 오는 아이들이
집이 다 잘 살아서만은 아니었을테지...
훔쳐갈 물건도 없는데 아무도 없는 우리 집은 맨날 대문에 자물쇠가 채워져있다.
담을 넘어 들어가거나 대문 근처 벽돌아래에 숨겨둔 열쇠로 집에 들어가면 이불 속에 찬합이 있고
그 속엔 미지근하게 식어가면서 말라 붙기 시작하는 밥이 들어있었다.
밥이 많이 말라있을 땐 어김없이 삶아서 먹곤 했는데 김치 한가지에 먹는 밥은
여름엔 찬물에 말아먹고 겨울엔 삶아서 먹으면 그나마 잘 넘어간다.
지금도 난 간장 하나에 밥을 먹는 한이 있어도 갓 지은 밥을 좋아하고 냄비와 돌솥에다 밥을 해서 먹는다...
어떤 녀석은 도시락 맨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오고
또 어떤 녀석들은 오뎅을(고추장에 버무려진 덴뿌라 볶음)반찬으로 싸오기도 했었는데
나는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그래봐야 초딩 걸음으로 2-30분 거리)도시락을 싸 주지 않았었고
가끔 싸주는 도시락의 반찬은 언제나 김치였었지,
에나 지금이나 초딩들은 집에서 가까운 학교를 다녔었고 이사를 멀리가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면 그 뿐이었으니
다른 녀석들도 집은 다 가까웠었는데 꼭 도시락을 싸왔었던 걸 보면 부모들의 사랑이 남달랐었다고 그렇게만 믿었었다.
정치 한답시고 사업 한답시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느니라 집에는 6개월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던 양반...
가정을 돌보지 않아 내게서는 아예 존경따위 받지도 못했었지만 마지막 까지 나를 힘 들게만 했던 ...
이미 이세상 사람 아닌데 탓해 무엇하랴만...
배급으로 나오던 까만 밀가루...
한달 내내 그 밀가루로 수제비만 끓여먹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도 나의 형은 수제비를 싫어하는데 나는 오히려 수제비는 좋아하고
그 떄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오뎅이나 계란 프라이는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너무 자주 먹어서 그랬던지 지금도 내 수제비 끓이는 솜씨는 수준급이다...
군 생활을 미군부대 카투사로 근무를 했었는데 양식이 입에 맞지않아
늘 밤이면 세면장에서 수제비를 끓여 미군들과 나눠먹기도 했었다...
어릴 떄 종종 먹어보는 버릇을 길들이지 못해서인지 지금도 찬 음식과 우유 삼겹살 같은 기름진 음식은
식성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장이 괴로워서 입에 잘 대질 않는 편이다.
나를 잘 모르는 여성들은 가끔 이런 나를 보고 입이 까다롭다거나 짧다고 핀잔한다...
어릴적엔...
커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도시락도 맛있게 싸 주고 지극한 사랑으로 키워야지 그랬었는데
어찌 하다보니 아이도 없이 지금은 혼자 살게된 몸인지라 맛있게 만든 도시락을 싸줄 대상조차 없다...
두부와 소시지를 굽고 파와 양파를 섞어 계란 말이를 하고 쌀뜨물을 받아 슝늉까지 끓여 갓 지은 밥으로 도시락을 싼다...
사랑하지 않는 대상을 사랑하는 것처럼 포장하지 마라...
하루를 사랑해도 지극히 사랑하며 사는 게 좋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헤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