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산티아고 이야기 10일차 "생애 첫 아멘~의 감동" 본문
이 지도는 외국인 순례자기 올린 산티아고 길에 대한 안내에서 옮겨왔음을 밝혀둡니다.
제10일차(10월7일)AZOFRA--15,2km SANTO DOMINGO DE CALZADA---8,1km GRANON 오늘 걸은 거리 약24km
경사진 천장의 지붕에 난 유리창 바로 아래가 내 자리이고
비록 단 하룻밤만 자고 떠나는 곳이었지만 채광창으로 들어오던 달빛 별빛에 마음이 설레어 잠을 쉬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였었다.
그라농이라는 마을의 오래 된 성당의 수도원 다락방 숙소인데 아무리 많은 인원이 와도 다 재워 주는 곳으로 유명하다.
기독교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성당에 다니는 카톨릭도 아닌 사람이 난생 처음 '아멘'이라고 기도를 했던 곳이다.
규모조차 별로 크지 않고 아주 오래된 성당인데 낡아서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당 2층으로 올라가면 부엌이 있고 다락이라는 곳은 상당히 넓고 그런대로 어른 키를 훌쩍 넘을만큼 천장도 높아서
잠을 자는데는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처음엔 침대도 없고 매트리스 한장만 깔고 남녀 구분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자야한다는 사실에
한국여성들은 불편해 하는 기색이 있었지만 주로 성당에 다닌는 분들인지라 곧 종교를 갖지않은 사람들보다 더 편안해 하는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산티아고 순례 동안 통 털어 이곳의 신부님과 호스피탈레로가(순례자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인데 산티아고를 다 걸은 사람만이 할 수 있음)
마치 가족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저녁과 아침을 주시는데 그 음식 또한 너무도 훌륭했다는 사실이다.
온화한 미소에 전혀 가식없는 친절에 기부한 금액이 적어서 그라농을 떠날 때까지 계속 죄송한 마음이었었다.
순례지를 위한 공원의 휴식처
이런 식의 순례길 곳곳에 휴식공원과 식수가 마련되어 있는데
비록 돌로 만든 딱딱한 의자이긴 하지만 순례자들이 햇살 바른 곳에 앉아서 맨발에 자갈로 지압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산티아고 길은 그래서 길을 걷는 사람들을 대접하고(^^)걷는 사람들의 천국이라고 할만하다.
언덕 아래로 계속 이어져있는 먼 지평선
약간 높은 언덕을 올라서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어지는데 눈 가는 곳 끝 무렵이 보이면 저곳을 지나면 오늘의 목적지나 마을이 나타나겠지 하는
희망사항은 여지없이 깨지고 또 다시 이만큼의 지평선이 시야에 나타나곤 하는 길이다.
일행들과 함께 걷다가 잠시 밀밭으로 들어가서 볼일이라도 보고 나오면 일행은 저 멀리 점으로 보일 정도로
길 위에서의 몇 분이라는 시각은 엄청난 차이로 멀어져버리게 되곤 한다.
오래된 성당의 종루에 있는 시계들이 섬머타임제가 있을 떄도 가을에 들어설 무렵
그 제도가 끝나고 한시간씩의 시차로 바뀌어졌을 떄도 어김없이 시간은 맞게 흘어가고 있었다.
관리하는 사람의 부지런한 탓인지 비비람에 씻기고 수 많은 전쟁과 새들의 똥...최신식 시계로 바꾼 것 같지는 않은데도...
그라농 수도원 알베르게의 벽난로
이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찾아 온 수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 함께 음식을 만들고 와인을 곁들여
행복한 경험의 저녁식사 자리를 갖는다.
비록 그것이 훌륭한 레스토랑의 고급 만찬음식 같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인 나로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의 자리로 기억될만큼 한국에 가서도 잊지못할 언젠가는 또 오고 싶게 만드는 그런 행복한 하루였다.
한국인이라서 특별한 경험을 하라고 그랬던 것인지 호스피탈레로가 내게 종루로 올라가는 길을 알려주면서 가보라고 권한다.
(그는 꽁지머리를 했는데 정말 외국 영화배우처럼 훤칠한 키와 온화한 미소를 가진 멋있게 생긴 남성이었다)
산사의 절집 외에는 종교적인 건물에 들어가본 적이 없었던 내가 전혀 뜻밖의 경험으로 성당의 제일 높은 곳인 종루에 올라갔다
비둘기들의 배설물이 군데군데 엉망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래도 햇살 바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었다.
발 아래 마을과 멀리 산들과 길들이 훤히 다 내려다 보인다.
햇살과 바람이 너무 좋길래 재빨리 내려가서 빨래를 가져와 널었다...
하늘 저 높은...그곳에 계시는 분도 내가 순례자로 와서 팬티 같은 것을 성당 종루에 널었다고 나무라시진 않으리라 믿으면서...
이곳에서 나랑은 상당히 가까워져서 줄곧 함께 걷던 프랑스 아가씨 케푸씬은 아일래는 청년인 마이클과
수도원 앞 마당에서 담베를 피면 대화를 한참 했었는데 그그라농을 떠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그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데
사방으로 마이클을 수소문했었지만 끝 내 찾지못하고 마치 상사병이라도 앓는 것인지 순례를 다 마치지 못하고 프랑스로 돌아가버리게 되었다.
미국인 제이티가 전해준 마이클의 메일 주소가 스펠이 한 두어글자 틀려 계속 되돌아오게 되었을 때
케푸씬의 실망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데 부디 내 친구 케푸씬이 마이클과 연락이 되어 그 사랑의 열병이 낫기를 바란다.
마을을 들어서는 길가에 예술품처럼 조각들이 많아서 길을 걷는데도
한국에서처럼 아스팔트에서 운전하는 차량의 기사들 눈치볼 일도 달려오는 차량에 겁을 먹을 일도 산티아고에서는 전혀 없으니
어찌 걷는 사람들의 천국이라 않으랴...
내 옆에 앉아서 손을 흔드는 녹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프랑스 아가씨인 케푸씬이다.
그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이 한국 여성등이었는데 다들 길에서 만나면 아주 반가워 해주던 케푸씬과는 사이가 참 좋았었다.
맨 앞줄의 흰 턱수염 아저씨는 내가 숀 코네리 라고 별명을 붙여준 프랑스 아저씨 알랑인데
그는 정말 한국인에게도 화사한 미소로 답해주는 넉넉한 인상의 숀코네리 같이 생겼었다.
그 옆이 스페인 청년과 독일 아가씨이고 미국인 제이티가 꽁지 머리에 모자를 쓴 모습이 보인다.
수도원 종루 한 구섴에 벗어둔 순례자들의 먼지 묻은 신발들
사람들도 세계 각국에서 모였고 신발들도 전세계적인 메이커들이 총집합한 것 같다.
등산화는 언제나 깔창을 뺴서 꽂아 밤 새 말려서 아침에 신게되면 훨씬 뽀송뽀송해서 감촉이 좋다.
안네판에 보면 한글로도 안내가 되어있는데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산티아고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게 되면 일본인이냐고 물었다고 하던데
내가 갔을 때는 모두들 대뜸 한국인이냐고 물으면서 요즘 왜 한국인들이 이렇게 산티아고에 많이 오냐고 묻곤 한다...
어둡고 허름한 마굿간 같은 곳에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촛불 한개씩을 들고 빙 둘러 앉아
제각기 나라의 언어로 기도를 하는데 종교마저 제대로 없었던 사람이 난생 처음 "아멘' 이라고 기도를 하게 됐었는데
언어도 종교관도 다른 사람이 어떤 것인지는 모를 감동 같은 것으로 인해 가슴이 미어지고 콧등이 시큰해졌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게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으나 산티아고 길에 내가 서 있지 않았으면 느낄 수 없는
행복한 무엇인가를 얻었다는 것에 지금도 나는 그 떄의 그 감동을 가슴에 품고 산다.
종교의 벽도 없고 그냥 있는 보이는 그대로의 가슴을 열어 따뜻하게 맞아주는 분들에게 늘 행복한 충만함이 가득하시기를...
AZOFRA--9,3KM--Ciruna
--6km--Santo Domingo de la Calzada
전엔 기부제로 운영되던 공립 알베르게들도 거의 다 5-7유로 정도로 변경됨,성당이나 수도원 숙소는 기부제
이곳엔 가스레인지도 있고 마당과 전설이 유명한 곳인데 산토 도밍고 라는 성인의 이름으로 지어진 듯함
아나톨 프랑스가 지은 성모님의 곡예사(바르나 베)
닭 두 마리로 유명한 대성당의 전설이 내려 오는데 옯기자면 이렇다.
중세시대 순례를 떠난 어느 가족이 산토 도밍고에서 며칠 지내게 되는데 숙소의 하녀가
이 가족의 아들인 청연에게 사랑을 품게 되어 구애를 하지만 아들은 반대를 하게 되었는데 거절의 수치심을 느낀 하녀가 은촛대를 훔쳐
아들의 가방에 몰래 넣어서 도둑으로 몰리게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들은 성당 앞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하게 되는데
슬픔에 찬 가족들은 어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순례를 계속하여 산티아고 대성당을 방문 후 돌아오는 길에
다시 산토 도밍고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들은 아들이 교수대에 매달린 채 아직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도밍고 성인인 산토 도밍고가 두 손으로 아들을 바치고 잇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수도원장을 찾아가 아들이 살아있으니 당장 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식사중이던 수도원장은 코웃음을 치면서
아들이 살아있다면 여기 식탁에 있는 구운 닭 두 마리도 살아있을 거라고 비웃었는데,
그러자마자 구운 닭 두 마리가 살아나서 하늘로 날아갔다고 한다.
아후부터 산토 도밍고의 성당에서는 매일마다 살아있는 달 두 마리를 보관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순례 내내 행욵이 함께 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순례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우체국과 잔디공원이 있고 좌측길이 가깝고 우측 길은 다소 돌아 가는 먼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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