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잊혀진 옛 흙길 #18 문경 말구리재 본문
신라향기 짙은 문경의 말구리재 넘어가는 길
33번 지방도로를 벗어나 김룡사 표지판을 보고 간다.
운달산 북쪽 가좌리와 문경음의 경계에 있는 말구리재(馬轉嶺)다.
"소금을 싣고 가던 말구루마가 넘어졌다"는 이름의 내력을 가졌고
가좌리에 이르는 길에는 대가람 김룡사와 대승사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는 하늘재인데 원래 이름은 계립령(鷄立嶺)이고
[삼국사기] 권2 <신라본기>에 아달라니사금 3년인 서기 156년 4월에 계립령 길을 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 초기부터 고려 때까지 한양 가는 가장 큰 길
문경의 갈평. 관음리에서충북 중원군(충주)미륵리로 이어지는 남북 교통 대로였고
삼국시대에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 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와서 연남대로의 남북관문인 문경새재가 열리자 사람드이 다니지 않게 되었고
하늘재로 가는 고개인 여우목고개나 말구리제가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점촌.예천 등지에서 하늘재 가는 가장 큰 길이던 여우목고개에서는 하늘재가 한눈에 보이지만
33번 지방도로로 포장이 되어버렸지만 다행히 말구리재는 옛길 그대로 남아있다.
충주땅 미륵리 미륵사지와 남쪽 관음리에도 불교문화의 흔적이 많다.
말루구리재 언저리에는 신라 때 창건한 대가람 김룡사가 말구리재 가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골짜기에 있다.
칠월칠석 무렵에 찾아가면 상사화와 백일홍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옛길 시작 지점인 가좌목에서 가좌리로 드는 포장도로는 끝이 난다.
가재의 목 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재목으로도 불리는 가좌리는 지금도 4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곳이다.
가좌목은 윗동네 묵은 터 주민들이 1948년 공비사건으로 모두 이 마을로 이주한 이후 말구리재로 가는 마지막 동네가 되었다.
가좌목 포장길이 끝나는 곳에서 말구리재가 시작되는데 939 미터의 국사봉이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들과
마치 꽃잎을 벌린 듯 마주보고 있고 그 사이 푹 꺼진 곳에 말구리재가 마치 나팔꽃의 한 부위를 연상케 한다.
백두대간 이정표가 즐비한 곳이고 월악산 품으로 들어가면 하늘재의 비밀을 간직한 미륵리 석루굴사원을 만나기도 한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문경땅이 보인다.
가좌리 가좌목-말구리재-갈평리-갈산 구간만 걸으면 약7 킬로미터다.
신라 빼부터 이어지던 하늘재와 연결된 옛길임을 감안하면 말구리재를 내려선 다음 포장은 되어 버렸지만 하늘재까지 걸어보는 맛도 다를 것이다.
말구리재에 올라서면 성황당이 있고 여기서 보이는 주흘산과 백두대간의 산세와 백두대간을 넘는 구불구불한하늘재 옛길이 인상적이다.
비포장 옛길은 말구리재 넘어 갈산에서 끝나지만 갈산에서 갈평리-관음리 지나하늘재까지 약6 킬로미터를 걷는 것도 좋다.
들머리 가좌와 날머리 갈평리까지 문경시 점촌에서 시내버스(문경여객 054-553-2230)가 다닌다
점촌- ->가좌(들머리)행은 흥덕동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0715, 0840, 1025, 1400, 1630, 1910, 출발 40분 소요
가좌행 버스는 점촌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문경방면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한라유통' 앞에서도 탈 수 있다.
점촌-갈평 행은 점촌에서 하루 약20회 운행하며 점촌-문경-갈평을 경유해 관음리가 종점이다.
갈평에서 나가는 버스는 첫차 0700 막차 1835 1시간 걸린다.
문경새재와 차로 20여 분 거리에 있다.
산악문화 이정숙의 "길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올까"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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