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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산청우

집 짓다 도망간 딱따구리 부부에게 나무가 한 말은?

까미l노 2014. 8. 28. 13:00

 

 

때죽나무로 만든 연필과 사스레피 나무로 만든 연필

두녀석 다 몸을 칭칭 휘감아 올라오는 으름과 마 청미래 그리고 잡다한 덩굴식물들을 피하다가 조이거나 뒤틀려서 특이한 모양들을 하고 있다. 

 

 

올해 비바람이 유난히 심했던 지지난 주 무렵 갓 태어난 애기 밤송이들이 우수수 떨어져내렸다.

손바닥 위에 올려 만지거나 굴려도 가시조차 아프지 않은 부드럽기만 한 녀석들이 그만 측은하게도 흙으로 일찌감치 돌아가게 생겼다.

 

돌보지도 않고 병충해 약 같은 것도 치지 않아 해마다 실한 밤톨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가을이면 그런대로 알토란 같은 밤송이를 몇알씩 줍는 재미가 쏠쏠 했었는데

올해는 숲 속 더 깊숙히 들어가봐야 가능할 일일 것 같다.

 

모르지 또 멧돼지란 녀석이 겨울에 내려와서 통째로 씹어 먹을지도...

 

한라산 둘레길 초입(무오법정사 문화재 보호구역 주차장 부근)안내센터 입구

한라산 둘레길 동백길 구간(구 1코스 시작점) 비목나무들이 몇그루 있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은 비목이라는 나무도 있다는 것에 다소 의아해 하기도 한다.

 

그 비목나무 가운데 한그루가 그에 시름시름 해져서는 봄이 되어도 잎을 드러내지 않다가  가지들이 더러 부서져 내리거나

한겨울 눈의 무게에 못이겨 부러지기도 하더라만 숲의 여러 나무들 가운데 하나이고 세심하게 관찰하지는 않아서 죽었다는 걸 몰랐었는데

어느날엔가 오색 딱따구리 부부가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아, 또 나무 한그루가 흙으로 되돌아 가는구나 그랬었다.

 

암수가 번갈아 가면서 부인이 망을 보면 남편은 열심히 나무를 쪼아 구멍을 파는데 탐방객이 나타나면 나무를 빙빙 돌아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가

지나고 나면 다시 쪼으기를 몇날 거의 집을 다 만들었다 싶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딱따구리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더니 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마도 소란스러운 곳이고 불안해서 산란 장소로는 위험하다 여겨 다른 곳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나로서는 참으로 서운했지만 달리 어떻게 안심을 시켜주거나 보호해줄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기만 했었다.

 

그후론 도둑 산란이 전문인 뻐꾸기도 남의 집 잘 뺏는 종달새도 역시나 불안한 곳이라 여겼는지 오지를 않은 채 쓸쓸한 폐가가 되었다.

그러다가 삼일 전 색깔이 화려하고 예쁜 버섯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붉은덕다리 버섯이라고 하는데 새순일 때는 식용으로도 가능한데 지금처럼 크게 자란 것에는 독성이 있다고 한다.

 

포근한 밍크 담요나 솜사탕처럼 생겼는데

대개 버섯들은 죽은 나무를 분해하기 위해 고사목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이 비목나무도 고사 되었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가지가 나오기 시작했고 푸르른 잎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하는것이다.

 

아랫부분의 둘레가 1미터 가까이 됨직한 나무에 버섯들은 이미 분해를 시작했을텐데 어쩌자고 원 줄기에 새로 가지가 태어난단 말인가...

맹아지가 벌써 여러개 생겨서 잎이 무성한 것을...

딱따구리 부부도 나무가 죽은줄 알고 열심히 부리를 쪼아 구멍을 팠을텐데

나무가 어느날  "나 아직 안 죽었다"  라고 하는 바람에 놀라서 집으로 삼지 않고 도망가버린 건 아닐까...

 

그나저나 붉은덕다리버섯 재네들은 또 어쩌누?

산 놈을 분해시켜?

아직 살아있는 나무가 용이라도 써 버섯들을 튕겨 내기라도 할까?

 

자연의 법칙이라 내가 함부로 간섭을 할 수도 없고...

 

 

누룽지를 잘 눌게 만들어 뻥튀기 기계에 넣어 튀긴 붉은덕다리 버섯...^^

최고급 명품 뻥튀기 과자...

 

 

자연의 오묘함

인위적인 간섭이  전혀 없이 자연 그대로 꼬인 으름덩굴의 모습

매듭법 같은 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실이나 끈으로도 잘 만들지 못하는 여덟팔자 매듭으로 자랐다.

 

으름덩굴들은 세월이 지나면 그대로 썩거나 삭아 내려 일정 이상은 더 굵어지지를 않는데 살아있을 때 표면은 비교적 깨끗하지만

조금씩 늙어지면 사람처럼 피부가 흉측해지고 군데군데 곰팡이 자국이 생기기도 한다.

 

그늘에 오랫동안 말려 수분을 제거한 후 조심스럽게 맨 바깥쪽 껍질을 벗기고

다시 그늘에서 말려가면서 속껍질을 또 한꺼풀 벗겨낸다.

 

덩굴식물들은 제 몸을 스스로 가눌수가 없고 빙빙 돌아 비틀면서 다른 나무에 기대어 수십가닥이 꼬여서 살아가기 때문에

속을 보면 마치 오렌지 속살처럼 생긴 것을 알 수 있다.

그늘에서 수분 제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세로로 갈라져 버리기도 한다.

 

 

분재도 수석도 아니고 취미도 없다만

구멍이 숭숭 뚫린 한라산 화산석 위에다 놓았다.

으름덩굴은 세로로는 무수히 많은 줄이 그어져 있는 것 처럼 보이고 가로 단면으로 잘라 보면 온전한 오렌지 무늬가 보인다.

 

하지만 비슷한 덩굴로 살아가는 송악이나 마삭줄 다래 멀꿀등덩굴나무엔 그런 무늬가 없이 일반 나무의 속과 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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