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식물이야기 본문

소금창고

식물이야기

까미l노 2013. 5. 8. 22:57

꽃의 색깔만큼이나 종류도 많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300여종이 있다하고 국내에도 25정도가 자생한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제주에는 현호색 외에도 탐라현호색, 좀현호색 등이 있습니다. 종류도 많고 다른 식물에 비해 잎의 변이가 심하기 때문에 서로 구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현호색과 비슷한 꽃모양을 하고 있는 괴불주머니란 식물도 있어 더 어렵게 합니다. 그러나 괴불주머니 종류는 노란색 계열의 꽃을 피우고 덩이줄기가 없어 현호색 종류와 구분이 됩니다.


탐라현호색

현호색이란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먼저 덩이줄기를 한방에서는 연호색(延胡索)이라 하여 혈액순환을 도와 한기를 다스리는데 이용되기도 했고 진통, 진정제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연호색이 현호색으로 변했다는 것으로 현호색이라는 이름이 한약명에서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꽃의 색깔이 다양하지만 푸른색이 더 많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玄)은 ‘하늘’, 호(胡)는 ‘드리우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색은 ‘꼬이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싹이 꼬이면서 올라오며 하늘과 같은 푸른색의 꽃’이라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현호색은 봄이 되면 모습과 이름이 가장 기억에 남는 꽃 가운데 하나입니다. 봄꽃들 대부분이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꽃잎을 열고 닫는 까칠함이 있는 것과 달리 현호색은 어떤 날이든 만날 수 있는 무던한 꽃입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대부분 진 시점에서 현호색은 그것을 대신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호색의 ‘보물주머니’라는 꽃말처럼 이 시기의 보물주머니인 셈입니다.

 

목련은 백악기에 출현하여 지금까지 남아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릴 만큼 원시적인 식물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련은 중국 원산의 백목련과 자목련입니다. 제주에서 자라는 목련을 보려면 한라산 중턱으로 올라와야만 합니다. 목련의 꽃잎이 6장인데 비해 백목련은 9장이고 자목련은 자주색 꽃을 피우기 때문에 쉽게 구별이 됩니다.

목련은 일본에서도 자랍니다. 목련을 세상 밖으로 알렸던 사람도 일본인 식물학자eh 학명에 고부시(kobus)라는 whdtn명을 사용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외국에서는 목련을 고부시목련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어 제주도의 특산식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목련과 함박꽃나무 2종의 목련과 식물이 있습니다. 산목련이라고도 하는 함박꽃나무도 한라산에 자라고 있으므로 2종 모두 제주에 있는 셈입니다.

목련은 낙엽이 지는 큰키나무로 10m까지 자라며 4월 중순부터 흰색의 꽃을 피워 올립니다.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화사한 신부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열매는 큰 주머니 안에서 익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 구부러져 있어 아기의 주먹처럼 생겼습니다. 다 익으면 주머니의 재봉선 같은 옆줄이 터지면서 씨앗을 퍼뜨리게 됩니다. 다 익으면 주머니의 재봉선 같은 옆줄이 터지면서 씨앗을 퍼뜨리게 됩니다.

목련은 후손을 이어가기 위해 멋진 전략을 폅니다. 겨울철 잎눈에는 털이 없으나 꽃눈에는 푹신한 털로 덮여 있습니다. 이것은 추운 겨울 꽃씨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무들이 꽃을 피우기에 앞서 매개체를 유인하여 꽃가루받이를 끝냅니다. 목련꽃에는 향기나 꿀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른 꽃보다 빨리 꽃가루받이를 끝내지 않으면 안되었던 모양입니다. 그 결과 잎이 달리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예로부터 목련에 붙여진 이름이 많았습니다.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하여 '목련', '옥처럼 깨끗하다'하여 '옥수'. '꽃봉오리가 붓을 닮았다'하여 '목필', '대부분의 꽃봉오리가 북쪽을 향하고 있다'하여 '북향화', '어린 꽃봉오리를 약으로 쓴다'하여 '신이'라고 합니다. 또 목련은 농사의 시기를 알려주는 지표목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꽃을 피우면 못자리를 시작하고 꽃이 지면 파종했다고 합니다. 꽃이 아래로 향하면 비가 오고 위로 향하면 날씨가 좋아져 밭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목련은 많은 시의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삶을 채 살아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목련 - 류시화), '목련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꽃이 먼저 핀다./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보여준다'(정호승 - 인생은 나에게 술한잔 사주지 않았다), 또 고등학교 시절 누구나 한번쯤 불렀을 '목련꽃 그늘 아래서/베르테르에 편지를 읽노라'라는 '사월의 노래'도 박목월의 시입니다.

목련은 겨울을 이기고 꽃을 피우지만 잎을 만나지 못한 채 너무 빨리 꽃을 떨어뜨립니다. 꽃을 오래 보고싶은 사람들에게는 여간 서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애틋함과 아쉬움이 목련이 가지는 아름다움일 것입니다. 시인 정호승은 목련은 가장 아름다운 것부터 보여주는 나무라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부터 보여주고 싶은 우리의 마음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목련의 꽃말은 연모(戀慕)입니다.

 

 

중이무릇은 꽃이 핀 상태로 보아 제주에서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꽃이 피는 곳에 따라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일본, 중국, 시베리아, 유럽에서도 자라고 우리나라에서는 중부이남 지역에서만 자랍니다. 제주에서는 오름이나 한라산 저지대 숲 속의 나무 아래로 가면 중의무릇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의무릇은 빛에 민감하여 아침, 저녁이나 날씨가 흐린 날에는 꽃잎을 열지 않습니다. 꽃을 보려면 봄볕이 좋은 날을 골라야 합니다.


잎은 길쭉하여 날렵하게 생겼고 꽃은 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여섯 개의 꽃잎이 활짝 열리면 마치 숲에서 노란별이 반짝이는 듯합니다. 서양에서 중의무릇을 ‘베들레헴의 노란별’이라 부르는데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꽃대에서 다시 꽃자루가 몇 갈래로 나뉘어져 꽃을 피우고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의 꽃차례를 이룹니다. 중의무릇의 학명 Gagea lutea의 ‘lutea’는 황색이라고 합니다. 노란 꽃을 가진 식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꽃잎은 노란색이지만 뒷면이 녹색이어서 노란 색 바탕에 초록빛이 도는 것처럼 보입니다. 꽃자루 바로 아래는 잎처럼 생긴 포엽이 두 장 달려 있습니다. 줄기는 25cm 정도 자라지만 꽃이 피면 꽃이 무거운지 드러눕고 여러 송이 꽃들은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기 때문에 카메라에 제대로 담아내기가 여간 쉽지 않습니다.




중의무릇이라는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7월이 되면 물기가 많은 곳이나 그 가장자리에 무릇이라는 꽃이 핍니다. 무릇이라는 이름은 물웃의 옛말로 ‘물’은 물(水)이고 ‘웃’은 위 또는 가장자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무릇은 ‘물기가 많은 곳이나 가장자리에 피는 꽃’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중의무릇의 잎과 무릇의 잎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더우기 스님들이 사는 산속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결국 중의무릇은 산속에서 사는 무릇과 비슷한 식물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지방에 따라서는 중무릇, 조선중무릇, 반도중무릇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중의무릇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쓰임이 많습니다. 한방에서는 정빙화(頂氷花)라 하여 심장질환에도 처방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을 주는 꽃이기 때문에 관상용으로도 이용되기도 합니다. 집에서 키워보려 한다면 물이 잘 빠지는 화단을 만들어 6~7월에 열매를 따두었다가 가을에 종자를 뿌리거나 비늘줄기(알뿌리)를 나누어서 심으면 됩니다. 또 물은 2~3일 간격으로 주면 잘 자란다고 합니다.


중의무릇의 꽃말이 일편단심입니다. 이는 꽃대가 약하여 바로 서지도 못하고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지만 추운 겨울을 넘기고 어김없이 봄을 알려 준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느 봄꽃들처럼 중의무릇도 연약함 속에 강인함이 숨겨져 있습니다.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습니다. 3월 중순을 넘기고 있으니 봄이 됐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이 시기에 꼭 찾는 꽃이 있습니다. 봄을 알리는 꽃이라 하는 보춘화(報春化)입니다. 난초과 식물 가운데는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꽃으로 춘란(春蘭)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제주에서는 이미 보춘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에서부터 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예로부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봄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꼭 보춘화가 아니더라도 야생에서 꼭 만나고 싶은 꽃을 꼽으라고 하면 난초과 식물일 것입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난초과 식물들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아름다움에 있을 것입니다. 특히 보춘화는 적당한 향기가 있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독한 겨울을 넘기고 꽃을 피우는 강인함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많이 닮았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춘화의 꽃말을 ‘소박한 마음’이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소나무 숲에서 주로 자생하고 생육환경에 따라 변이가 많은 꽃이기도 합니다. 꽃은 키가 20cm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3월이면 제주에서부터 피기 시작하여 남부지방을 거쳐 동쪽으로는 울릉도, 서쪽으로는 백령도까지 번져나갑니다. 잎은 길쭉하여 날렵하게 생겼고 그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옵니다. 꽃에는 꽃받침보다 조금 짧고 적자색 반점이 있는 입술 모양의 꽃잎이 있습니다. 입술 모양의 꽃잎 때문에 3개의 꽃받침과 함께 십자모양의 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긴 타원을 그리면서 늘어뜨린 잎과 당당하게 곧추선 꽃은 들꽃 중의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보춘화는 꿀을 대신해서 향기로 꽃등에 등 매개체를 불러들입니다. 입술모양의 꽃잎은 착륙장 역할을 하며 양옆으로 둘러싸인 꽃잎은 다른 매개체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향기에 이끌린 꽃등에는 꽃잎 안으로 파고들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꽃가루가 묻게 됩니다. 몸에 꽃가루를 잔뜩 묻힌 꽃등에는 다시 다른 꽃으로 옮기면서 꽃가루받이는 이루어집니다.




또 뿌리 바로 옆에 의구경 또는 가구경이라는 것이 있는데 원예학적인 용어인 벌브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립니다. 벌브 속에는 관다발이 있어 뿌리로부터 수분이나 양분을 잎으로 보내고 잎에서 만들어진 당류를 뿌리로 돌려보내는 줄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벌브 속에는 수분과 양분의 저장되어 있어 환경이 좋지 못할 때면 그것을 사용하여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도 합니다.


예로부터 보춘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사군자의 하나로 그림 속에 등장하기도 하고 시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보춘화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관심이 이어져 최근에는 집에서 직접 키워 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문제는 그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고 대부분 야생에서 가져온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보존이 될 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식물들은 계속해서 후손을 이어가야 하는데 사람의 손에 넘겨진 꽃들은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고 시간의 문제일 뿐 이런 저런 이유로 대부분 말라 죽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야생에서 보춘화를 보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됐습니다. 어쩌면 보춘화를 보려면 야생란 전시회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행해지는 야생란 전시회에는 어김없이 화분에 잘 심어진 보춘화가 등장합니다. 대부분 야생에서 가져온 것으로 꽃과 잎의 모양에 따라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시되는데 변이가 있는 특이한 꽃은 굉장히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기도 합니다. 사람에 따라 자연에 대한 생각이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남채로 인해 야생에서 보춘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멸종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며칠 생태숲에도 비가 내립니다. 기온도 덩달아 올라 지난주 내렸던 눈은 빠른 속도로 녹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눈이 내리면 매년 봐왔던 동백꽃을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꽃이 없는 겨울에 동백나무의 붉은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눈보라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피워내는 꽃이어서 더 마음이 가는 나무입니다. 저의 게으름으로 올해는 눈 속의 동백꽃은 보지 못할 듯 합니다.


동백나무는 겨울에 꽃이 핀다하여 동백(冬柏) 이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닷가에 피는 꽃이라 하여 해홍화(海紅花)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일반적으로 7m 정도까지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남방 일대에도 자생하는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름 내내 영양을 축적했다가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꽃이 피는데 제주도를 시작으로 남해안을 거쳐 동․서해안으로 번져갑니다.


제주에서 동백나무를 보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땔감, 목재 등으로 이용되어 예전 보다는 못하지만 선흘곶자왈을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동산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제주 곶자왈의 가장 흔한 나무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시골 민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남부지방 해안이나 섬 지역에서는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섬이라 부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만큼 유명한 동백나무숲도 많습니다. 전남 여수의 오동도, 거제도의 지심도, 충남 서천군의 마량리의 동백나무숲, 전북 선운사가 그곳입니다.


화려한 붉은 꽃잎과 그 사이에서 올라오는 노란색 꽃술, 꽃 아래의 초록색의 잎은 색깔의 조화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동백나무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꽃잎은 다섯 장에서 일곱 장까지 만들어지고 서로 조금씩 겹치면서 올라옵니다. 꽃잎은 길이가 다소 길어 깊이를 느낄 수 있는데 마치 성벽을 이룬 모양입니다. 꽃잎 안으로 벌레가 들어가면 잘 빠져나오지 못할 듯 합니다. 그래서 동백나무는 벌이나 나비가 아닌 새에게 의존하여 꽃가루받이를 합니다.


이런 형태의 꽃을 조매화라 부릅니다. 동백나무는 새 중에서도 동박새에 꽃가루받이를 맡겼습니다. 화려한 꽃이 많이 피는 남쪽 따뜻한 지역에서는 조매화가 많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동백나무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곤충의 활동이 없는 겨울에 꽃을 피우기 때문에 동백나무는 동박새에 꽃가루받이를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백나무는 동박새를 위해 많은 꿀을 만들어 놓고 향기로 유혹합니다. 동박새는 동백나무의 작은 곤충을 잡아먹기도 하고 꽃이 피면 꿀을 따는 과정에서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고 열매를 맺으면 이를 먹고 다른 곳으로 퍼뜨리기도 합니다. 동백나무와 동박새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인 셈입니다.


꽃이 질 때 동백꽃은 꽃잎을 한 장 씩이 아니라 통째로 툭툭 떨어뜨립니다. 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꽃이 수두룩합니다. 이 모습 때문에 이별이나 사랑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나 노래가 많습니다. 반면 꽃이 지는 모습이 죽음을 연상한다 하여 일본이나 제주도에서는 멀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서 덧붙여서 제주도에서는 동백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어떤 이유에서인지 도둑이 잘 든다하여 집안에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 가보면 지금도 많은 집에 동백나무를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마다 생각의 차이가 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백나무를 생활에 잘 활용해왔습니다. 재질이 치밀하여 얼레빗, 목탁, 칠기의 바탕 등을 만들었으며 종자에서 짜는 기름을 동백기름이라 하여 생활에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가을에 동백나무 열매가 벌어지면 껍질을 떼어내고 종자의 속살만을 가지고 기름을 짜내어 식용하기도 하고 녹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계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또 전기가 없던 시절에는 호롱불을 켜는 데 기름으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백기름은 여성 특히 부인네들의 머릿기름으로 이용했던 것이 더 유명합니다. 동백기름은 냄새가 나지 않고 잘 마르지 않기 때문에 머리를 맵시 있게 보이게 하는 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나 봅니다.


또 동백나무의 생약명은 산다화(山茶花라)입니다. 꽃이 피기 전에 꽃잎을 따서 말렸다가 쓰는데 여성들의 하혈과 산후 출혈에 지혈하는 효과가 있고 멍든 피를 풀어주는 데에도 그만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동백씨를 먹으면 술에 취하지 않는다는 흥미 있는 연구결과도 있어 이래저래 동백나무는 사람들과 함께 해온 나무인 셈입니다.


옛날에는 동백꽃을 겨울에도 만날 수 있는 친구라 하여 세한지우(歲寒之友)라 했습니다. 오래 헤어졌다 만나는 친구처럼 겨울 추위가 지겨울 때쯤 꽃을 피우는 동백꽃이 반갑습니다. 그래서 시에서 노래에서 만나는 동백꽃은 낯설지 않습니다. 그만큼 동백나무는 사람들과 끈이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별꽃

생태숲을 산책하다 무심히 발견한 별꽃. ‘추운 날씨에 꽃이 필까’하는 마음에 잊고 있었지만 제주에서는 겨울에도 별꽃이 피어있는 것을 간간이 볼 수 있습니다. 벌도 나비도 없는 추운 날씨인데도 씩씩하게 꽃을 피워내는 모습이 대견스럽습니다. 요즘처럼 추운날씨가 계속되어 꽃을 보기가 쉽지 않은 시기에는 잡초로 취급받는 꽃이지만 더욱 귀해 보입니다.


별꽃은 밭이나 길가 또는 숲가 등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풀꽃입니다. 땅에 붙어 옆으로 뻗어 나가는 줄기에는 한줄 털이 나 있고 가지도 많이 나 있습니다. 꽃은 5~6월에 핀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겨울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라는 생태나 모습이 별꽃과 비슷하여 혼동되기 쉬운 것으로 쇠별꽃이 있습니다. 두 종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암술머리 숫자입니다. 암술머리가 세 개로 갈라지면 별꽃, 다섯 개로 갈라지면 쇠별꽃입니다.


별꽃이라는 이름은 ‘작은 모양의 꽃이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한꺼번에 핀다’고 하여 밤하늘의 별을 닮은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학명 Stellaria media의 종소명 Stellaria도 별이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꼭 이름의 유래를 이야기 하지 않아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면 당연히 별의 모습을 연상시킬 만큼 닮아 있습니다. 아무리 흔한 잡초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서양 사람들도 이 꽃을 밤하늘의 별로 비유했습니다.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별꽃은 일반적으로 잡초로 취급받습니다. 더욱이 봄이 되어 많은 봄꽃들이 필 때에는 개체수가 급격히 불어나 민가 주변의 길가나 산기슭 아무데서나 볼 수 있습니다. 이 때쯤이면 너무나 흔하여 사람들은 별꽃에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귀하게 대접을 받으려면 꽃도 희귀해야 하는 가 봅니다.


별꽃의 생태에 대해 일본인 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풀들의 전략’이란 책에서 생장방식, 줄기, 꽃, 씨앗으로 나누어 별꽃의 비밀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선 별꽃은 유한성장을 합니다. 즉 줄기가 자라다 꽃이 피면 성장을 멈추고 바로 꽃 아래 줄기에서 양쪽으로 두개의 가지를 냅니다. 그리고 새로 나온 가지가 자라다 그 끝에서 꽃이 피면 다시 성장을 멈추고 꽃 아래 줄기에서 또다시 두개의 가지를 내어 뻗어가면서 성장합니다.


쇠별꽃


그리고 줄기에는 붉은 털이 나있습니다. 비의 양이 적은 시기에 자라는 꽃이기 때문에 적은 양이라도 수분이 생기면 재빨리 뿌리로 옮겨서 저장합니다. 이 작업을 쉽게 하기 위해 털은 모두 아래로 향해 있습니다. 겨울철에도 별꽃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또 줄기 속에는 가는 가닥이 있어 밟히거나 꺾여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별꽃의 꽃잎은 5장이지만 10개로 보입니다. 꽃잎 한 장이 아래에서 두 장으로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꽃이 작기 때문에 꽃을 곤충에게 풍성하게 보이게 함으로써 꽃가루받이를 원활하게 하기위한 전략입니다. 또 날씨가 춥거나 밤이 되어 곤충이 자신을 찾아주지 않을 때는 꽃잎을 닫아 자기 꽃가루받이를 하여 씨앗을 만들어 버립니다.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꽃을 아래로 향하게 합니다. 씨앗이 익어가는 동안 비바람의 피해를 막기 위함도 있지만 아직 꽃가루받이를 못한 다른 꽃이 빨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씨앗이 여물면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해 다시 고개를 하늘로 향합니다. 그리고 씨앗을 루페 등으로 확대해서 보면 표면에 돌기가 가득합니다. 이것은 씨앗이 흙 속에 묻혀야 하는데 쉽게 파고 들어가기 위한 전략인 것입니다. 식물은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다고 하지만 이처럼 식물은 자신이 자란 환경 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방법을 짜냅니다. 이처럼 별꽃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기발한 전략으로 꽃을 피워내는 것입니다.

별을 보면 예전의 모습을 추억하기도 하고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별을 가지고 추억과 그리움을 노래했습니다. 별꽃은 별을 닮았음인지 추억이라는 꽃말을 가졌습니다. 어제는 갑자기 생태숲에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이처럼 눈이 내리는 추운 날에는 봄볕 아래의 따스한 추억이 더욱 새롭습니다.

 



갑자기 다시 추워졌습니다. 어제부터 생태숲에도 눈이 많이 내려 무릎까지 쌓였습니다. 제주의 눈은 가로 방향으로 내린다는 어느 분의 말씀처럼 겨울바람이 드셉니다. 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지난 주 봤던 새끼노루귀가 궁금해집니다. 얼어 죽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한파가 오기 전 꽃을 피웠는지. 어쩌면 새끼노루귀는 이시기에 꽃을 피우기 시작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일지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풀리면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살포시 고개를 내밀 것입니다. 그 시간이 멀지 않았음을 알지만 따스한 봄볕 내리는 날의 새끼노루귀의 귀여운 모습이 그립습니다.


노루귀 종류에는 새끼노루귀 외에도 한반도 전역에 자란다는 노루귀와 울릉도에 자생하는 섬노루귀가 있습니다. 새끼노루귀는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의 섬에 자란다고 식물도감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북쪽인 변산반도 등 중부지방에 있는 것도 새끼노루귀라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노루귀와 새끼노루귀에 대한 차이를 설명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차이에 대한 확실한 정리가 되어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어쨌든 제주에 피는 것은 새끼노루귀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 듯합니다.


새끼노루귀는 2월이면 꽃이 올라오기 시작하여 봄이 시작될 무렵인 3월이면 절정을 이룹니다. 키는 커봐야 7cm 정도를 넘지 않고 꽃자루는 날씬한 각선미를 자랑합니다. 뽀송뽀송한 솜털을 가진 꽃자루와 파스텔로 그린 것과 같은 흰색, 분홍색 꽃은 이름만큼이나 앙증맞습니다. 잎은 꽃이 필 때 함께 올라오지만 굉장히 작아 눈여겨보지 않으면 꽃만 보이고 잎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끼노루귀의 꽃자루 끝에는 꽃이 하나씩 달려있습니다. 꽃을 한창 피울 때쯤이면 잎은 뚜렷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좀 더 자란 잎에는 흰 무늬가 선명합니다. 잎 뒷면도 꽃자루처럼 털이 많아지면서 조금 뒤로 말려있어 모습이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잎은 새끼노루의 귀를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새끼노루귀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눈과 얼음을 뚫고 나오는 풀이라 하여 파설초(破雪草)라는 이름으로 불려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끼노루귀의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꽃받침이 발달한 모습입니다. 이것을 꽃받침조각이라고 합니다. 암수술을 보호해주는 꽃잎이 퇴화하여 꽃받침이 꽃잎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꽃받침조각을 지탱해주는 3개의 포에도 털이 많고 귀여운 모습입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 적응한 결과이지만 꽃의 크기가 크지 않을뿐더러 꽃잎이 퇴화할 정도로 새끼노루귀는 급히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새끼노루귀는 낙엽수가 있는 숲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봄이 되어 나무에 잎이 돋기 시작하면 햇빛을 가려 광합성을 못하게 됩니다. 광합성을 못한다는 것은 영양분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새끼노루귀는 이른 봄 일찍 꽃을 피우고 숲속의 나무가 잎을 만들기 전에 꽃가루받이를 끝내야 합니다. 그리고 새끼노루귀는 꽃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몇 개씩 무리지어 꽃을 피움으로써 멀리서 보면 큰 꽃처럼 보이게 합니다. 곤충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이런 이유로 새끼노루귀의 은은한 아름다움과 그 속내를 보려면 가까이 다가서서 자세를 낮추고 허리를 굽혀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새끼노루귀의 잎도 나물로 무쳐먹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잎에는 쓴맛이 있고 뿌리에는 독성이 있어 조심해야 합니다. 뿌리를 제거하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물에 담가낸 다음 우려내고 먹어야 한다고 합니다. 또 생약명으로 장이세신(獐耳細辛)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한방에서는 두통과 장 질환의 약용으로 이용했습니다. 또 폐결핵, 기침, 류마티스 등의 약재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노루귀의 꽃말은 믿음 또는 인내라고 합니다. 꽃말처럼 새끼노루귀는 여러 해 만나다 보면 작지만 추위에도 꿋꿋이 꽃을 피워내어 대단한 인내를 가졌다는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주의 식물을 공부하기 위해 육지에서 손님들이 생태숲을 방문했습니다. 정년퇴임하고 생태공부를 하는 분들로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만남입니다. 오늘은 눈을 헤치며 제주의 겨울나무를 살펴보았습니다. 잔뜩 내려간 기온 때문에 온 몸을 떨면서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의 열의는 새끼노루귀의 꽃말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지난주는 겨울이라 하기에는 따뜻한 기온이 일주일 내내 이어져 봄꽃이 피어나기에 적당한 날씨의 연속이었습니다. 1월에 이런 날씨가 이어지면 어김없이 복수초를 시작으로 많은 꽃들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흰털괭이눈이 있습니다. 흰털괭이눈은 보통 마지막 겨울추위가 물러가고 봄기운이 무르익을 무렵인 3월이나 4월이면 절정을 이루지만 꽃은 아직 눈이 녹지 않은 1월이 끝나갈 무렵이면 피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가 되면 혹시 눈 속에서 곱게 피어있는 흰털괭이눈을 볼 수 있지나 않을까 싶어 시간이 날 때는 산으로 내닫게 됩니다.


개구리발톱, 새끼노루귀, 쥐오줌풀, 꿩의바람꽃 등 이름에 동물이 들어가는 풀꽃들이 많습니다. 괭이눈도 그 가운데 하나로 옛날에는 고양이를 괭이라고 불렀습니다. 괭이눈은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갈 때는 씨앗을 감싸던 씨방이 벌어지는데 그 모습이 고양이 눈을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괭이눈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즉 흰털괭이눈은 흰털이 많은 고양이의 눈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흰털괭이눈을 흰괭이눈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줄기에 하얀 털이 굉장히 많이 나있는 것을 보면 흰털괭이눈이라 부르는 것이 더 맞을 듯합니다.


제주에 자생하는 괭이눈의 종류로 흰털괭이눈을 비롯해서 털이 거의 없고 높은 산 계곡에서 자라는 선괭이눈, 오름이나 저지대 주변 습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산괭이눈 등이 있습니다. 국내에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 의하면 8종정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특징을 가지고 더 나누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여 각자의 의견에 따라 종의 숫자가 달라질 만큼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여튼 괭이눈속 식물들을 볼 때는 수술의 수와 꽃받침의 모양, 무성지의 유무, 털의 유무 등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런 점들을 유념하여 관찰하면 막연히 꽃을 보고 지나는 것보다 꽃을 보는 재미가 더 할 겁니다.



흰털괭이눈은 전국의 숲속 계곡 근처나 습지 등 습도가 유지되는 곳에서 자라는 꽃이어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줄기 끝에 노란색 꽃이 몇 개 모여 피며 열매는 6~7월이 되면 까맣게 익습니다. 잎은 마주나고 잎 끝에는 물결 모양의 둥근 톱니가 있습니다. 꽃잎은 퇴화해서 없는데 꽃이 필 때는 꽃잎처럼 보이는 꽃받침 4개가 벌어지면서 꼿꼿이 깃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 안에 수술 8개와 암술 2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괭이눈속 식물들은 흰털괭이눈처럼 대부분 수술이 8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괭이눈속 식물의 대표 격인 괭이눈은 수술이 4개로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흰털괭이눈은 포함해서 괭이눈속 식물들은 특이한 생태를 가졌습니다. 우선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꽃을 피울 때면 꽃 주변의 잎을 노랗게 하여 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다시 노란색을 녹색으로 변하게 합니다.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보충하려는 의도입니다. 또 흰털괭이눈은 씨앗이 그릇 같은 네모난 꽃받침 속에 들어있어 익으면 퍼뜨리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의 전략을 짜냈는데 빗방울을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열매를 장마가 오는 시기에 익게 하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힘에 의해 생긴 탄력으로 씨앗을 멀리 퍼뜨리려 합니다. 자연을 이용한 기발한 전략이 놀랍습니다.


괭이눈 종류는 예전부터 어린순은 나물로 식용했으며 말려서 차로 마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땅 위의 부분을 생약명으로 금전고엽초라 하여 약재로도 이용해왔다고 하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키가 작고 줄기가 땅에 닿으면 뿌리를 내리면서 자라는 습성이 있는데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식물원의 지피식물로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번 주 들어 기온이 내려가고 제 근무지에도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욱 간절한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한해의 풍성한 결실을 위해서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시간으로 받아들여야겠습니다. 갑자가 추워졌지만 봄은 가까이 와 있습니다.

 



이 맘 때쯤 한라산을 오르다 보면 나무 끝에 아직도 새파란 잎을 달고 있는 나뭇가지가 뭉쳐있는 것이 간간이 보인다. 마치 새의 둥지 같다. 그 나뭇가지에는 노란색, 붉은색 열매가 풍성하게 달려 특히 눈이 내린 날에는 고운 모습을 연출한다. 이 열매의 주인이 다름 아닌 나무에 기생하여 사는 겨우살이이다.


스스로 양분을 전혀 만들어 내지 못하거나 또는 조금은 만들어 낼 수 있다 할지라도 필요한 영양분을 모두 만들 수 없어 다른 식물에 기생하기도 하고 동물이나 곤충의 사체에서 영양분을 흡수하여 살아가는 식물들이 있다. 이런 식물을 기생식물이라 하는데 광합성이라는 것을 통해 영양분을 얻고 살아가는 일반적인 식물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생식물 중에는 겨우살이처럼 스스로 엽록소를 가지고 광합성을 하지만 숙주식물에서 유기물, 무기물을 흡수하는 반기생식물이 있고 억새에 기생하는 야고처럼 완전히 다른 식물에 영양을 의존하는 전기생식물이 있다. 기생식물은 ‘흡기’라고 하는 뿌리를 내려 숙주식물로부터 영양분을 얻는다.




반기생식물인 겨우살이는 활엽수에 잘 자란다. 잎이 있어 영양분을 만들 수 있어 숙주식물로부터는 부족한 영양분을 흡수하기도 하지만 주로 수분을 취한다. 간혹 숙주나무에 뿌리를 깊게 내리기도 하는데 영양분과 물을 공급하는 숙주나무의 원줄기 관이 막혀 그 부분이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심하면 가지를 말라 죽게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겨우살이는 숲속의 약탈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제주에 자생하는 겨우살이라고 부르는 식물로는 겨우살이 말고도 꽃이 성냥개비를 닮은 참나무겨우살이, 연초록의 열매 사이에 마디가 있어 원시적인 느낌을 주는 동백나무겨우살이 등이 있다. 제주에는 없지만 꼬리겨우살이라는 식물도 있다. 겨우살이가 한라산 대략 해발 600m 이상에서 자라는데 비해 참나무겨우살이나 동백나무겨우살이는 비교적 지대가 낮은 곳에서 자란다.



겨우살이는 3월에 꽃이 피어 10월부터는 노란색이나 붉은색의 열매를 맺는다. 열매는 과육이 발달하여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하지만 종자에 들어있는 끈적끈적한 점액 때문에 소화가 잘 되지 않아 그대로 배설되는 경우가 많고 배설된 종자는 나무에 달라붙는다. 그리고 새들이 먹고 나면 점액 때문에 부리에 붙은 종자가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떼어내기 위해 새들은 나무줄기에 부리를 비벼대게 되고 나무껍질 사이에 붙은 종자는 발아하여 싹을 틔우게 된다. 어떤 때는 열매껍질을 스스로 열리게 하여 종자를 나무줄기에 붙이기도 한다.




겨우살이는 상록성이어서 겨울에도 푸른 잎을 달고 있다. 흙과 접촉하지 않아도 꽃을 피워서 예전부터 신기한 식물로 여겨져 왔다. 더욱이 요즘은 대부분의 기생식물들이 흔하지 않기도 하지만 약효가 뛰어나 동맥경화, 고혈압, 중풍을 치료하는 것은 물론 항암효과까지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귀한대접을 받고 있다.


서양에서는 겨우살이를 좋은 일의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크리스마스에 문 위에 달아두기도 하는데 그 아래를 지나가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또 연인들이 겨우살이 아래서 키스를 하면 앞으로 행복하고 오래 산다고 여기는 풍속도 전해진다.


겨우살이는 숙주식물이 다 말라죽어도 자신의 영양분을 나누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겨우살이는 영양분을 훔쳐가기만 하고 나누어주지 않는 약탈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많은 혜택을 주는 식물임에도 틀림이 없다. 자연은 이처럼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껴안는다. 그래서 자연을 이야기하면서 쉽게 결론을 내버릴 일은 아닌 듯 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올 겨울에는 한라산을 올라보자. 나뭇가지 위에 눈송이와 어울린 붉은색, 노란색의 겨우살이 열매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움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참통발

생태계에서 식물은 생산자, 동물은 소비자 위치에 있다. 식물은 광합성 작용을 통해 탄수화물이라는 영양분을 만들어 내고 동물들은 식물이 만들어 놓은 영양분을 섭취하고 소화를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나 식물 가운데에서는 광합성으로 만들어 내는 양분만으로 살 수 없기 때문에 곤충을 잡아서 부족한 유기물을 얻는 것들이 있다. 이른바 ‘벌레잡이식물’이라고 하는 것들이다.


벌레잡이식물들은 대부분 물이나 습기가 있는 곳에 자생한다. 잎이 있어 광합성을 하기도 하지만 습지나 연못이 생물의 생존에 필요한 질소나 인산 등이 쉽게 씻겨 내려갈 수 있는 곳이어서 부족한 영양분을 벌레로부터 얻고 있는 것이다.


벌레를 잡는 방법도 다양하다. 덫을 놓기도 하고 끈적끈적한 물질을 분비시켜 붙으면 벌레들이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또 냄새로 유인하여 함정을 파놓기도 한다. 국내에는 11종정도 자생하고 있는데 제주에는 통발과 자주땅귀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통발은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어구인 ‘통발’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일본 만주 사할린까지 분포한다고 한다. 제주에서도 8~10월이면 저지대 연못에서 노란꽃을 피우는 통발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통발의 종류에는 통발, 참통발, 들통발, 개통발 등이 있는데 제주에 자생하는 것은 참통발이다.


통발은 키가 5cm 정도까지 자라고 가늘게 갈라진 잎은 물속에 잠겨있다. 잎 사이에는 고기를 잡는 어구를 연상시키듯 주머니가 대롱대롱 달려있다. 이것이 벌레잡이주머니인데 녹색과 검은색을 띠고 있다. 아직 먹이를 잡지 못한 것은 녹색을 띠고 있고 검은색을 띠는 주머니는 이미 먹이를 잡아 소화중인 것으로 보면 된다.


통발이 벌레를 잡는 과정은 아주 계획적이고 빠르다. 어느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고 물의 흐름에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주머니는 3~5mm 정도의 크기인데 한 쪽을 진공상태로 만들어 놓는다. 주머니의 입구에는 2쌍의 긴 털이 있다. 주위를 지나가던 벌레가 털을 조금만 건드려도 순식간에 문이 열리고 벌레는 물과 함께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입구는 닫힌다. 이 때 걸리는 시간은 수천분의 1초 정도로 매우 빠르다.


먹이가 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소화효소가 분비되면서 먹이가 분해되어 식물체에 영양분이 공급되게 된다. 통발은 이런 과정을 통해 물벼룩이나 장구벌레 등 작은 벌레를 잡아먹는다.


자주땅귀개

제주에는 또 다른 벌레잡이식물인 자주땅귀개가 있다. 한라산 중턱 고산습지에 자생하는 자주땅귀개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2급 식물로 알려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경상남도 등 4~5 곳에 자생지가 있지만 분포면적은 한정되어 있다. 귀개는 열매의 껍질이 귀지를 후비는 ‘귀이개’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자주땅귀개 외에 이삭귀개, 땅귀개가 있다.


자주땅귀개의 키는 커봐야 5cm 정도이며 8월부터 자주색 꽃을 피운다. 땅 속에는 줄기가 실처럼 뻗어 있고 그 줄기에서 드물게 잎을 낸다. 꽃은 매우 작아 꽃이 필 때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자주땅귀개도 통발과 마찬가지로 벌레잡이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연못의 물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습지에 살며 잎줄기 사이에 벌레주머니가 있는 통발과 달리 땅에 위나 땅속에 벌레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땅 위나 땅속으로 기어 다니는 작은 벌레들을 주머니로 빨아들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벌레잡이식물들의 사는 곳은 오래된 연못이나 고산습지 등으로 한정되어 있고 분포면적도 매우 좁아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더욱이 자주땅귀개가 자생하고 있는 한라산의 고산습지에는 탐방로가 시설되어 있다. 탐방로 시설 후에 많은 개체수가 이미 사라졌고 남아있는 것도 사라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 들꽃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시설물이 설치되면 그 곳 환경의 기후를 변화시켜 자생식물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탐방로 등 시설물을 만들 때는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

 


감국

늦가을 제주의 바닷가에는 감국향기로 가득하다. 그리고 감국이 피기 바로 전 제주의 오름이나 들판에는 산국이 핀다. 꽃은 감국보다 작지만 향은 산국이 더 진하다.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들꽃들이어서 그런지 그 향은 유독 코끝을 자극한다. 가을색이 조금씩 사라지고 겨울로 가는 초입에 아직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 감국 산국을 만나면서 들꽃과 함께 보낸 일 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국화향기 가득한 제주의 오름이나 올렛길을 걸으면서 일년의 마지막 들꽃을 즐길 수 있음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감국이나 산국은 이른바 들국화라 불리는 꽃 가운데 하나이다. 대부분의 가을꽃들이 보랏빛의 진한 꽃을 피우지만 감국이나 산국은 노란색 꽃을 피운다. 무리지어 터뜨린 꽃망울은 도드라지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산국은 키가 1m 정도 크고 잎은 쑥잎처럼 생겼다. 감국은 키가 산국보다 좀 더 작아 60cm 정도 자란다. 꽃색은 산국과 마찬가지로 노란색이지만 꽃의 크기는 더 크다. 꽃은 작은 꽃들이 무리지어 피어 진한 향기로 벌들을 유혹하고 벌들은 꿀을 모으러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벌들만 꿀을 모으러 감국이나 산국을 찾는 것이 아니다. 감국의 꽃잎을 따는 사람들로 감국의 계절이 되면 바닷가는 붐빈다. 예전부터 감국이나 산국은 생활에 애용되어 왔는데 향이 좋기 때문에 꽃잎을 따서 차를 만들어 마셨다. 감국이나 산국으로 만드는 차를 국화차라 하여 만들어 마셨다. 차는 머리가 아픈 것을 낫게 하며 기침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는 향에는 신경안정 작용이 있어 꽃잎을 말려 베개나 이불속에 넣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머리가 맑아져 아주 기분 좋은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국화차를 만드는 방법은 감국은 말린 꽃잎과 꿀을 버무려 그릇에 3~4주 밀봉했다가 뜨거운 물에 타서 마시면 된다. 산국은 약간의 독성이 있어 뜨거운 소금물에 살짝 데쳐야 된다. 데친 꽃잎은 그릇에 건져 물기를 짜고 그늘에 말려야 하는데 건조과정에서 곰팡이가 피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잘 말린 꽃잎을 보관했다가 서너 송이를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시면 겨울까지 은은하고 따스한 국화차의 향기를 즐길 수 있다.



산국

또 예전부터 음력 9월 9일에 국화주라는 술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싱싱한 꽃송이를 물에 헹구어 물기를 뺀 다음 용기에 넣고 소주를 꽃봉오리의 3배 정도 부어 밀봉하여 그늘에 저장한다. 3개월 정도 지나서 술이 익으면 찌꺼기는 걸러내고 보관한다. 하루에 2번 소주잔으로 한잔씩 마시면 향기와 함께 느껴지는 맛이 그만이라고 한다.


산국과 감국은 비슷하여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 구별법은 꽃을 보는 사람마다 다르고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자료도 조금씩 차이가 있다. 자료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실물을 보고나면 두 종의 중간 형태를 보이는 것이 많고 자료와 맞지 않은 것들이 있어 초보자들에게는 쉬운 일을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차이는 산국은 감국에 비해 꽃이 작다. 산국은 가운데 관상화의 지름이 꽃잎처럼 생긴 설상화 보다 같거나 짧은데 비해 감국은 설상화가 길다. 또 산국은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가지마다 우산모양의 꽃을 무더기로 피우지만 감국은 가지가 많지 않고 비스듬히 누워 자라며 가지 끝에 2~3송이 꽃을 피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산국은 ‘고의(苦薏)’라 하여 맛이 쓰고 매운데 비해 감국은 ‘감국(甘菊)’이라 하여 향과 단맛이 난다.


감국의 꽃말은 ‘가을의 향기’이다. 그리고 감국이 피고 나면 한해의 들꽃은 제철을 다했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시들어 가는 가을의 끝이지만 감국의 진한 향기는 아직도 제주가 가을 속에 있음을 말해준다. 감국을 보면서 가을을 즐겨보자. 제주의 늦가을 풍경은 감국향이 있어 아름다움이 두 배이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오름에는 초겨울까지도 꽃들이 남아있다. 그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꽃이 용담이다. 용담은 빠르면 8월 말쯤이면 한라산 정상 근처에서 볼 수 있지만 오름에서는 겨울로 접어든 12월까지도 만날 수 있을 만큼 꽃이 피는 기간이 아주 길다. 마른 풀섶 사이로 봉긋이 내민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지만 계절이 주는 황량한 느낌과는 달리 너무 당당하다.


용담은 용담과의 여러해살이 풀꽃으로 제주에서부터 북쪽지방까지 가을철 햇볕이 잘 드는 풀밭이면 어느 곳에서나 잘 자란다. 크기는 보통 사람의 무릎 가까이 자라는데 추운 고산지역에서는 손바닥 정도밖에 자라지 않는 녀석도 있다. 꽃은 꽃잎 하나가 암수술을 싸고 있는 통꽃으로 꽃잎 윗부분은 다섯 갈래로 갈라지며 가운데 부분이 조금 볼록하다 아래로 내려오면 급하게 좁아지는 종 모양을 하고 있다. 꽃잎 안쪽에는 작은 반점들이 보이고 수술 5개와 암술 1개가 있는데 꽃은 꽃자루 없이 잎겨드랑이나 줄기 끝에 여러 송이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잎 표면은 처음에 녹색을 띠고 있으나 가을이 깊어지면 붉은 색으로 단풍이 들기도 한다.


용담의 꽃 색깔은 여느 가을꽃처럼 진한 색을 띠고 있다. 화려하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자주색과 보라색을 섞어놓은 독특한 색으로 쓸쓸한 가을의 느낌과 잘 어울린다. 꽃이 지고 난 다음에도 열매를 오래도록 달고 있어 시들어버린 주변의 황량한 모습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용담의 꽃말은 ‘슬픈 당신을 사랑합니다’이다. 꽃말은 또 한편으로 슬프고 어려울 때 위로해주고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그렇게 하자는 메시지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런 느낌이 있어 그런지 용담을 노래한 시도 많다. 김진수는 ‘용담’이란 시에서 ‘여름 내 깊어진 남보랏빛 그리움 / 온 몸에 짙디짙게 물들이지요’라고 용담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 한다. 또 정일근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숙을 알고 있다’라는 시에서 ‘길 잃은 벌들이 찾아와 / 하룻밤 자고 떠나는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숙’이라고 용담을 표현하기도 했다. 사실 용담은 초겨울까지 꽃을 피워 식량을 구하기 힘든 시기에 활동하는 벌들에게는 아주 고마운 식량창고의 역할을 한다. 또 복효근 시인은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라는 시에서 ‘그대 슬픔의 산 높이에서 핀다 /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고 하여 진솔한 사랑의 의미를 돌아보기도 했다.


용담은 독특한 모습과 달리 약재로 더 알려져 있다. 한자로는 龍膽(용 용, 쓸개 담)이라 쓴다. 풀이하면 용의 쓸개라는 뜻이 된다.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쓴 맛이 웅담보다 더 강하여 용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름에서 느껴지지만 용담의 뿌리는 예부터 한방에서 아주 특별한 약재로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약효가 얼마나 영험했으면 상상속의 동물인 용을 등장시켰을까. 간기능보호, 이뇨작용, 혈압강화, 진정작용, 항염증 작용을 하여 소화불량, 담낭염, 황달, 두통, 당뇨, 고혈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용담이 약재로 중요하게 쓰였다는 것은 전설에서 잘 나타난다. ‘강원도 산골에 사는 어느 농부가 겨울에 쓸 땔감나무를 하러 갔다가 포수에 쫒기는 토끼를 구해줬는데 토끼가 이상한 풀뿌리를 캐어 주었다. 그것을 입에 넣고 씹었더니 쓴맛이 말 못할 정도였다. 농부가 화가 나서 토끼를 잡아 죽이려 하자 토끼는 산신령으로 변하여 그 풀이 용담이라는 약초이며 그 약효를 알려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또 서양에서도 용담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용담은 젠티아나(Gentiana)라는 학명을 가지고 있다. 젠티아나는 일리리안이라는 나라의 왕 젠티우수(Gentius)의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나라에 흑사병이 돌아 많은 백성이 죽어가자 왕은 높은 산에 올라 ‘이 병을 물리칠 약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활을 쏘았는데 쏜 화살이 풀뿌리에 박혔는데 그 풀이 용담이며 그 뿌리를 모아 병을 낫게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설에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약재로 용담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 약효는 오래전부터 유명했던 모양이다.


용담은 계절에 맞게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늦가을까지 피어 황량한 들판을 조금이라도 채워주는 것 같아 좋다.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꽃이 용담이다. 은은한 자줏빛의 꽃과 서서히 초록색에서 갈색으로 단풍이 드는 잎은 늦가을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린다. 이 시기에는 꽃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거기다 아름답기까지 한 용담을 본다는 것은 꽃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바위솔

유년기를 보낸 고향 바닷가에는 커다란 절벽을 끼고 절이 하나 있다. 어릴 적 그 절벽 주변에서 이런저런 놀이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바위틈에서 올라온 이상하게 생긴 꽃이 있어 한참을 쳐다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꽃이 지금 생각해보면 바위솔인 듯 하다. 고향을 떠난 지 세월이 꽤 흐른 터라 지금도 잘 자라고 있을 지 궁금하지만 마음만 앞설 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바위솔은 돌나물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꽃으로 잎이 돋아나는 모습이 소나무의 솔방울과 닮았으며 바위에서 자란다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또 기와지붕에도 산다하여 ‘와송’이라 부르기도 한다. 키는 다 자라봐야 30cm를 넘지 않는다. 솔방울처럼 생긴 잎 위로 올라온 꽃대 위에 수많은 작은 흰꽃들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씨앗을 다 떨어뜨리고 나면 말라버리는데 바로 옆에 올라온 어린잎이 겨울을 보내고 다음 해에 꽃을 피운다.


육지에서는 9월부터 꽃을 피우지만 제주에서 빨라야 10월 중순은 되어야 꽃을 볼 수 있다. 국내에 15종정도 자생하고 있으며 제주에서는 주로 산북지역 바닷가나 오름에 자생하는 바위솔 외에도 남쪽 섬지역에 자라는 연화바위솔, 한라산 정상 근처에 자생하는 좀바위솔이 있으며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애기바위솔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속이 달라 사촌지간인 난쟁이바위솔도 있다.


바위솔은 바위틈이나 기와집 틈새에 흙이 조금밖에 없어도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곳이면 잘 자라는데 특히 건조한 환경에 강하다. 더욱이 꽃은 풍매화로 자연교잡이 잘 이루어지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탓인지 같은 종이라도 생육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 서로 다른 종으로 착각하게 하기도 한다.


연화바위솔

바위솔이 조건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꽃을 피울 수 있는 이유는 다육질의 잎에 있다. 잎 속에 수분을 평상시에 충분히 저장해 두었다 가뭄으로 건조할 때 사용한다. 이처럼 잎이나 줄기에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적응된 다육질의 두꺼운 조직이 있는 식물들을 통틀어 ‘다육식물’이라 한다. 바위솔 뿐만 아니라 꿩의비름, 선인장류도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어려운 조건에서도 잘 자라고 번식이 쉽다는 특성과 독특한 꽃의 모양 때문에 바위솔은 관상용으로 가장 인기 있는 꽃 중의 하나가 되었고 최근에는 다육식물 동호회까지 생겨나고 있다.


바위솔은 관상가치와 함께 열을 내리고 해독하는 성분이나 노화를 방지하는 성분이 있어 약용으로도 쓰임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일반인의 관심을 반영하듯 최근에는 특용작물로 재배하는 농가도 늘어나고 있으며 바위솔에 대한 의학적 연구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인기에 비례하여 무분별한 채취도 발생하여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이미 제주도의 동쪽 바닷가에 많던 바위솔은 지난 2~3년 사이에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다른 자생지에서도 서서히 개체수가 줄고 있다.


들꽃은 사람의 손을 타는 순간 들꽃으로서의 매력을 잃는다. 그것은 반대로 자연 상태에서 보는 꽃이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된다. 더욱이 바위솔은 씨앗을 떨어뜨리고 난 다음에는 말라 버리기 때문에 꽃을 집으로 옮겨간다고 해도 다음 해에 꽃이 핀다는 보장도 없다. 자연에서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혹 집에 놓고 혼자만 보겠다는 욕심이 없었는지 바위솔을 보면서 돌아볼 일이다.

 

 



그 시기에 꼭 봐야할 들꽃들이 있다. 그 때를 놓쳐버리면 일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꽃을 볼 계획은 사실 연초에 짜여 진 셈이다. 계속해서 매년을 봐오는 꽃들이지만 궁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들꽃의 매력이다. 11월이 시작될 무렵이면 해국을 보기 위해 바닷가로 나가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지난 토요일에도 해국을 만나러 일출봉이 보이는 바닷가를 찾았다.

해국은 중남부 내륙에도 고루 분포하지만 남해안 여러 섬을 비롯해서 울릉도 독도에서도 자란다. 제주에서도 10월 중순이면 동쪽 바닷가를 시작으로 겨울인 12월까지 꽃이 피는데 제주의 바닷가를 연보랏빛으로 물들인다. 키는 30~60cm 정도 자라며 다른 국화과 식물처럼 가운데는 노란색의 관상화가 있고 그 주위에는 연보라색 아니면 흰색의 설상화가 달려 집산화서를 이루고 있다.

줄기는 바위나 절벽 틈새를 찾아 뿌리를 내리고 있고 가지는 줄기 아랫부분부터 많이 갈라지면서 비스듬히 드러누워 자란다. 키가 작은 대신 뿌리가 아주 깊게 박혀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바닷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하여 번식을 해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꽃은 줄기 끝에 모여 피며 주걱 모양의 잎도 바닷바람을 잘 견디기 위해 양면에 두툼하고 보송보송한 털을 가졌다. 이처럼 작은 꽃들이 모여서 집산화서를 이루고 바닷바람에 잘 견디기 위한 여러 갈래의 줄기 등 모든 것이 좋지 못한 바닷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해국의 전략인 것이다.

바닷가 바위는 식물들이 자라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흙을 머금을 수 있는 토양도 부족하고 꽃이 피는 시기에는 일교차도 심하다. 이런 좋지 못한 환경에서 해국은 꽃을 피우고 있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바위틈이든 벼랑이든 뿌리를 내리고 짠물을 견디면서 꿋꿋하게 자라서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해국은 이렇게 불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잘 자라는 꽃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관상용으로도 많이 심고 있는데 공원이나 도로변 화단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키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꼭 바닷가로 나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꽃이 된 셈이다. 또 뿌리, 줄기, 잎은 이뇨에 좋고 방광염에도 효과가 있어 민간에서는 예전부터 이용되어 왔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국화’라 하여 해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연보랏빛의 꽃은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꽃무리에서 풍겨 나오는 그윽한 향기는 더할 나위 없다. 바로 옆의 풀밭에 갯쑥부쟁이가 피어 있기라도 하면 그 곳이 바로 천상의 화원이다. 꽃은 먼 바다를 향하고 있다. 바다 건너 육지로 간 연인을 기다리고 있음인지 그리움이 잔뜩 묻어있다. ‘기다림’ ‘이별’이 해국의 꽃말이라 하는데 잘 붙여졌다는 느낌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그렇듯 가을에 피는 해국도 지난 일을 추억하게 하는 힘을 가졌다. 해국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이 새롭다. 7년 전 토요일 오후 일출봉을 배경삼아 바닷가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바위 위를 꽃으로 뒤덮은 광경을 보고 너무나 흥분했던 기억. 한라산은 저녁노을로 붉은 색이었고 길게 늘어뜨린 흰 구름으로 휘감긴 다랑쉬오름. 거무티티한 현무암과 함께 담아보기도 하고 우도를 배경으로 담아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첫 만남이었다.

가을이 깊어 조금 있으면 겨울이다. 모두가 겨울을 준비하며 조금이라도 몸을 움츠릴 수 있는 시간에 해국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은은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 시기가 되면 해국을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지만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내년이 늘 기대가 된다. 내년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피어 있을지.

 

벌써 10월도 마지막 주를 향해 달린다. 며칠 전부터는 아침, 저녁으로 옷을 하나 더 껴입지 않으면 안될 만큼 쌀쌀해졌다. 지난 주말에는 오전에 초등학교에서 기후변화교육을 마치고 물매화를 보러 오름을 찾았다. 이미 2주 전에 꽃봉오리는 본 터였다. 꽃향유는 더 기세 좋게 오름을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고 그것을 배경삼아 물매화가 하나씩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국화과의 들꽃들이 대세를 이루는 가을이지만 물매화는 국화과가 아니면서도 가을에 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싶다.

물매화는 범의귀과 여러해살이 식물로 전국에 자라는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제주에서는 7월말이면 벌써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피기 시작하며 겨울까지도 저지대에 오름에서 만날 수 있다. 꽤 긴 시간 볼 수 있는 꽃인 셈이다. 물매화는 꽃의 모습이 매화와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거기에 습기가 많은 곳에 자라서 ‘물’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고 한다. 하지만 반드시 습기가 있는 곳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고 오름 언덕에 피어 있기도 하고 작은 웅덩이 옆에 피어 있기도 하여 햇볕이 드는 풀밭이면 어느 곳에서든 잘 자라는 듯하다. 또 풀매화, 매화초, 다자매화초 등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어진다.


국내에 자생하는 물매화 종류에는 애기물매화와 물매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기물매화의 헛수술은 7개 이내로 갈라져 보통 12~22개로 갈라지는 물매화와 구분이 되며 한라산 정상근처에서 자라는데 물매화의 생태형인지 관찰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꽃이 피는 시기의 차이는 조금 있지만 같은 곳에서 20여개의 헛수술을 가지는 물매화도 관찰되기 때문이다.


물매화의 꽃의 구조를 보면 정말 특이하다. 길이는 10~40cm로 줄기에는 심장 모양의 잎 하나를 달고 있으며 줄기 끝에도 하나의 하얀 꽃이 달린다. 꽃잎도 다섯장, 암술과 수술도 5개, 꽃받침도 5개이며 특이한 헛수술이라는 것도 가지고 있는데 이것 또한 5개이다. 수술은 씨방에 기대어 있다가 하나씩 밖으로 펴지면서 꽃밥을 펼쳐서 꽃가루받이 준비를 한다. 전체적인 꽃의 모양은 마치 비행접시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밤하늘의 별을 닮아 보이기도 하다.


헛수술 끝에는 동그란 물방울 모양의 가짜꿀샘을 가지고 있다. 영롱한 이슬처럼 보이는 물방울 모양의 가짜꿀샘은 황록색을 띠기도 하고 하얀색을 띠기도 한다. 이 헛수술은 꽃가루받이를 위해 곤충을 유인하려는 물매화의 전략으로 암수술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꽃이 피는 시기가 곤충의 활동이 뜸해지는 늦가을이면서 곤충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흰색의 꽃을 피우는 터라 헛수술이라는 나름대로 전략을 가지고 꽃가루받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매화의 꽃말이 고결, 결백이라 했다. 물매화를 보고 있으면 꽃말이 얼마나 꽃과 잘 어울리는 것인지 알 수 있다. 가을꽃들이 대부분 색이 진한 꽃을 피우는데 반해 봄철이나 어울림직한 너무나 청초한 순백의 꽃을 피운다. 꼭 꽃가루받이를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꽃잎 속에 숨겨져 있는 헛수술의 영롱한 모습은 사람들의 눈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더욱이 아침 햇살이 비치기라도 하면 보석처럼 반짝이는 투명한 수술은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아직도 물매화울 처음 만났을 때의 감흥을 잊을 수가 없다. 마치 큰 보물을 찾은 것 같은 기쁨이었다.


물매와의 모습에는 다른 가을꽃에 뒤지지 않는 당당함이 묻어있다. 하늘을 향해 곧게 핀 꽃은 사진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열매를 맺고도 고개 숙이는 법이 없이 꿋꿋하게 서 있어 겨울까지도 아주 고운 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늘을 배경삼아 피어있는 카메라 속 물매화는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가 작품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물해화는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을이 되면 반드시 기다리는 꽃인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가을은 꽃향유를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지난 휴일에는 꽃향유를 만나러 오름을 찾았다.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억새와 가을하늘을 배경삼아 꽃향유가 서서히 피기 시작했다. 꽃향유를 보러온 사람들도 한해의 꽃을 서서히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꽃향유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제주에서도 오름뿐만 아니라 야트막한 언덕의 풀밭이나 길가라도 햇볕이 드는 곳이면 어디서라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키는 높게 자라야 사람의 무릎 정도이며 줄기는 네모지고 식물체 전체에는 털이 많이 나있다. 여느 가을꽃들처럼 작은 꽃들이 빽빽이 모여 하나의 큰 꽃차례를 만들며 전체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준다. 또 꽃은 자주색으로 줄기와 가지 끝에 피는데 모양은 반쪽만 꽃이 달려있는 것처럼 꽃들은 한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국내에 자생하는 향유속 식물에는 꽃향유 외에 꽃향유 보다 꽃색이 좀 더 연한 자주색인 향유, 잎이 가는 가는잎향유, 한라산에서 누워 자라며 키가 매우 작은 좀향유 등이 있다. 또 제주도에 자라는 꽃향유는 키가 15cm로 육지에서 자라는 꽃향유 보다 훨씬 작아 한라꽃향유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밖에 키가 4cm 이하로 매우 작고 이른 봄인 3월을 전후한 시기에 제주에서 자라는 봄향유도 있지만 좀 더 연구가 필요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꿀풀과의 식물들이 대부분 향기가 강한 것처럼 꽃향유 역시 식물체 전체에서는 풍기는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어 그 향기로 각종 식품과 향료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어린 순은 나물로 먹으며 쑥처럼 욕탕에 풀어 사용하면 향기가 좋아 좀 더 즐거운 목욕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꽃향유는 꿀이 많고 무리지어 피기 때문에 양봉농가에는 밀원식물로 이용되기도 하는데 꽃이 거의 없는 초겨울까지 꽃이 피어있어 늦게까지 활동하는 곤충들에게는 필요한 양식창고가 되기도 한다.

꽃향유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한번 심으면 계속해서 씨앗을 퍼뜨려 군락을 이루기 때문에 흙을 보호하는 지피식물로도 매우 효과적이라고 한다. 또한 열을 내리는 성분이 있어 여름철에 열이 많은 사람들은 차로 마셔 열병을 다스리기도 하며 한방에서는 각종 종기를 치료하는 약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꽃향유의 꽃말은 가을의 대표적인 꽃이라는 것을 증명이라 하듯 ‘추향(秋香)’, 즉 가을향기이다. 꽃에서 나오는 향기도 향기지만 대부분 꽃들이 시들고 낙엽이 한층 두꺼워진 초겨울까지 꽃을 피워 꽃이 없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또한 꽃향유가 주는 향기이다. 이처럼 가을이면 꽃향유를 생각할 만큼 가을이라는 계절과 잘 맞아 있다.


또 다른 꽃말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또는‘ 회한’이라고 한다. 이것은 꽃향유에 관련된 전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 충청도 어느 시골에 살던 남자가 청운의 꿈을 안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막상 집 떠나면 고생인지라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러는 사이 청년이 간직했던 꿈은 시련과 고통에 조금씩 시들어 갔다. 자신의 신세가 짝이 없이 한스럽게 생각했던 청년은 그때부터 돈이 모이면 바쁘게 도박판으로 술집으로 전전했고 중년을 넘기면서는 오갈 때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 후 젊음을 허비하여 망가져버린 자신을 추수려 보려 했지만 아무도 그를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끝내 거지가 되어버린 그는 회한의 눈물을 뿌리며 떠돌다 추운 겨울밤 알지도 못하는 담벼락 아래서 죽고 말았다.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으로 옥황상제에게 빌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나를 저들 옆에 곱게 있게 해 주십시오’ 옥황상제는 그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역시 뒤에는 꽃이 없고 앞모습만 화려하게 무더기로 꽃을 피우게 되었다‘


그 꽃이 꽃향유이다. 전설이 아니라도 꽃향유가 꽃을 피우고 가을이 끝나가는 시점에는 한번쯤 뒤돌아 볼일이다. 혹시 소소한 일들을 너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여 쉽게 포기한 결과 시간을 소모해버린 일은 없었는지.

 


깊어가는 가을이다. 지난 봄 이후 제각각 다양한 색깔로 자신을 뽐내던 들꽃들도 이제는 서서히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들꽃을 찾는 이들에게는 아쉬움 잔뜩 묻어있는 시간인 셈이다. 일년 중 절반을 넘어선 계절이 주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가을에 피는 들꽃들에는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있다. 그래서 가을에 들꽃을 보는 일은 또 다른 묘미가 있다.


가을은 들국화라 부르는 들꽃들의 계절이다. 구절초를 시작으로 쑥부쟁이 감국 산국이 피어난다. 이들은 봄이나 여름에 피는 꽃들처럼 하려하지도 않지만 가을이라는 계절처럼 생각에 젖게 하는 힘을 가졌다. 지난 휴일에는 그저 수수하게 피어 들판을 수놓고 있는 연보랏빛 쑥부쟁이를 만났다.


제주에서는 바닷가에서부터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쑥부쟁이를 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주의 오름에는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깔려있고 한라산에는 누워 자라는 눈개쑥부쟁이가 한창 이다. 조금 있으면 갯쑥부쟁이가 제주의 바닷가를 천상의 화원으로 바꾸어 놓는다. 또 꽃은 작지만 잎이 조금 크면서 가칠한 까실쑥부쟁이도 있다. 더욱이 요즘은 미국에서 건너온 귀화식물인 미국쑥부쟁이까지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쑥부쟁이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국내에 15종 정도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9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월에는 만개하며 키는 사람의 무릎 정도 자란다. 꽃의 모습은 여느 국화과 식물처럼 가운데는 수많은 노란 꽃의 관상화로 이루어져 도드라져 보이고 그 주위는 연보랏빛 꽃잎의 설상화로 이루어져 있다. 멀리서 보면 꽃이 하나로 보이나 실제로 수많은 꽃의 집합체이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꽃을 피우는 이유는 적은 양의 꽃가루를 가지고 능률적으로 꽃가루받이를 하려는 쑥부쟁이의 전략에 기인한다.



쑥부쟁이라는 이름은 이 꽃에 대한 슬픈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대장장이를 불을 다룬다하여 ‘불쟁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불쟁이’는 ‘부쟁이’로 발음이 된다. 결국 '쑥부쟁이'란 이름은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불쟁이의 딸이 죽어 그 위에 돋아난 풀이라는 뜻이라 한다. 자기를 데리러 오겠다는 사냥꾼을 기다리며 먼 산을 바라보던 쑥부쟁이의 전설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오름 중턱 또는 정상에 가녀리게 핀 모습은 누구를 간절히 기다리는 듯하다. 그래서 쑥부쟁이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쑥부쟁이는 습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피는 꽃이어서 예전부터 생활에 이용해왔다. 제주에서는 보기 쉽지 않지만 예전부터 쑥과 함께 쑥부쟁이의 어린 순은 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며 국도 끓여먹는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주요 소득원으로 대량 재배하기도 하는 곳도 있다. 또 쑥부쟁이를 민간에서는 권영초라 하여 이뇨제나 해열제 등 응급약으로 중요하게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해도 오름 들판에는 쑥부쟁이가 무리지어 피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 삼아 한 컷 한 컷 셔터를 누르는 사진사의 얼굴에도 쑥부쟁이의 아쉬운 전설처럼 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있다. 이렇게 꽃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쑥부쟁이가 피면 한해를 마무리 하는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또한 그 아쉬움이 화사한 봄꽃을 기다리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음도 알고 있다.

 

 



한라산에서 시작된 가을은 9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오름에서도 만난다. 오름 등성에는 억새가 꽃을 피워 은빛 가을을 준비하고 있고 숲에는 붉은색, 파란색의 가을꽃들이 한창이다. 이 시기에 숲에서 꽃을 피우는 한라돌쩌귀를 보는 일이 언제부터인가 매년 해야만 하는 일상이 되었다.


한라돌쩌귀는 꽃의 모양이 하도 특이하고 꽃잎의 색이 진해서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꽃이다. 한라산 정상에서부터 중산간 오름에 이르기까지 널리 분포하며 ‘한라’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제주에서만 자라는 제주특산식물이다. 이처럼 해발 고도상 분포지역이 넓어 한라산 정상 근처에서는 8월 말이면 꽃이 피기 시작하지만 오름에서는 10월까지도 볼 수 있다.


한라돌쩌귀는 주로 산속의 계곡주변이나 낙엽수림 아래 등과 같이 습기가 있는 곳에서 덩굴식물처럼 비스듬히 자란다. 잎은 세 갈래로 갈라지고 꽃은 진한 자주색을 띠며 줄기 끝에 모여 핀다. 오랜 시간 환경에 적응한 결과이지만 꽃은 고깔모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옛날 서양 무사의 투구를 닮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생김새 때문에 한라돌쩌귀는 사촌지간인 투구꽃으로 혼동되기도 한다.


한라돌쩌귀의 꽃은 보면 볼수록 신비함이 느껴진다. 꽃잎은 다섯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각의 역할이 다르다. 맨 아래에는 타원형의 두장의 꽃잎이 나란히 있는데 벌이 날아오면 편하게 앉을 수 있는 발판으로 이용된다. 발판 바로 위 두장의 꽃잎은 둥글게 만들어 벌이 꽃의 중심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유도선 역할을 한다. 맨 위의 동그란 모양의 꽃잎은 꿀을 모아두는 장소이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될 수 있으면 다른 꽃에서 꽃가루를 얻으려 한다. 그래야 건강한 후손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꽃의 모양, 크기 또는 환경에 따라 방법도 다양하다. 한라돌쩌귀처럼 매개곤충을 위한 배려가 들어있기도 하고 천남성처럼 꽃가루받이가 끝나면 매개곤충을 죽게 하기도 한다. 한라돌쩌귀는 꽃가루받이를 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차이를 두고 하나의 개체가 암꽃과 수꽃의 역할을 바꿈으로써 한 식물의 꽃가루를 같은 개체의 암술에 묻게 하는 ‘제꽃가루받이’를 하지 않으려 한다.


꽃 입구 바로 안에는 암수술이 있는데 꿀을 얻으려고 안으로 들어갈 때 벌은 암수술을 건들게 되어 있다. 먼저 구부러진 상태로 암술을 덮고 있던 수술은 벌의 자극으로 한 가닥씩 일어나 꽃가루를 내고 바깥쪽으로 젖혀진다. 수꽃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약 일주일 사이수꽃이 꽃가루를 모두 내고 나면 세 갈래의 암술이 일어나 다른 꽃의 꽃가루를 받을 준비를 한다. 암꽃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꽃에서 암꽃으로 변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한 개체의 꽃에서 꽃가루를 받는 일을 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라돌쩌귀의 뿌리를 초오(草烏)라 부른다. 그래서 계통분류학상 속명도 초오속이다. 초오속 식물에는 한라돌쩌귀, 투구꽃을 비롯 25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에 자생하는 초오속 식물은 한라돌쩌귀와 진범 정도이다. 잎의 형태, 꽃, 뿌리 모양(진범, 흰진범, 노랑투구꽃 등은 제외)이 모두 비슷하다. 초오속 식물의 뿌리에는 독성이 있어 옛날 사약의 성분으로 쓰기도 했지만 독성을 없앤 후 한방에서는 원기를 회복하는 좋은 약재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한라돌쩌귀의 꽃말이 그리움이라 한다. 꽃봉오리를 꼿꽂이 세운 모습은 먼 곳을 응시하며 지난 일들을 추억하는 듯 하다. 한라돌쩌귀는 짙은 자주색의 꽃도 그렇고 꽃말도 그렇고 가을이란 계절과 정말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올 가을에도 오름을 오르고 한라돌쩌귀도 만나는 일이 훗날 하나의 멋진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꽃 하면 들국화가 떠오른다. 그러나 구절초류, 쑥부쟁이류, 해국, 감국, 산국 등을 통틀어 들국화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사실 식물분류학에서 들국화라는 꽃은 없다. 요즘 제주의 오름이나 들판에는 쑥부쟁이류의 꽃들이 한창이다. 더불어 한라산에도 한라구절초, 쑥부쟁이, 개쑥부쟁이, 눈개쑥부쟁이 등 소위 들국화라 불리는 가을꽃들이 많이 피었다. 그 가운데 한라구절초는 언제 봐도 품위 있어 보여 좋다.


구절초에는 한라구절초 외에 바위구절초 산구절초 등 국내 10여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도에는 한라산에 자라는 한라구절초와 제주도 북쪽 섬 지역에 자라는 남구절초가 있다. 한라구절초는 ‘한라’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라산에서만 자생하는 제주의 특산식물이다. 다른 구절초에 비해 키가 작지만 꽃의 크기는 크고 줄기 끝에 한 송이만 꽃이 핀다. 꽃잎은 흰색이나 분홍색을 띠어 은은한 느낌을 주며 꽃으로 다가서면 바람에 실린 꽃향기도 그만이다.




한라구절초는 오랜 시간 살아나기 위한 전략을 갖추고 있다. 높은 산의 바람과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키를 작게 하고 다른 구절초와 달리 잎도 가늘게 갈라놓았다. 다른 국화과 식물들처럼 한라구절초도 자세히 보면 가운데에는 전체적으로는 볼록하여 거대하게 보이지만 굉장히 작은 꽃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피어 있다. 꽃잎도 각각 암수술을 가지고 있어 꽃잎 하나하나가 서로 다른 개체의 꽃인 셈이다.


이렇게 무리지어 꽃이 피어있는 것은 모두 꽃가루받이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한라산처럼 높은 곳에 피는 한라구절초는 곤충의 활동이 줄어드는 시기에 피기 때문에 꽃가루받이를 하는데 어려움이 더하다. 전체적으로는 크게 보이지만 실제 작은 꽃이어서 꿀도 작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꿀을 절약하면서 꽃가루받이를 동시에 많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 거대한 꽃 덩어리를 보고 찾아온 벌들은 작은 꽃들의 꽃가루를 한번에 많이 묻히게 되는 동시에 꽃가루를 한꺼번에 다른 꽃으로 전달해준다. 적은 양의 꿀로 많은 꽃에서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게 되는 경우이다. 이처럼 작은 꽃들이 모여 곤충들로 하여금 큰 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한번에 많은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구절초는 국화과 식물 중에 가장 약효가 뛰어 나서 민간에서는 예전부터 애용되어 왔다. 특히 여성들에게 좋아 부인병에 약초로 쓰기도 했다. 이와 함께 꽃을 따서 차로 마시기도 했으며 꽃으로 술을 담그기도 했다. 또한 한라구절초는 생명력이 강하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키에 비해 꽃의 크기가 커서 관상용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구절초는 단오인 5월 5일에 줄기가 다섯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이 되면 아홉마디가 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 선모초, 조선국, 구일초, 들국화 등 다른 이름도 가지고 있다. 여성들에게 약효가 좋다는 것으로 봐서 선모초(仙母草)는 ‘어머니에게 좋은 풀’ 즉 ‘여성들에게 좋은 풀’로 해석해도 좋을 듯 하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구절초의 꽃말이 생겼음직도 하다. 또 일본에서는 ‘조선의 국화’라는 뜻으로조선국(朝鮮菊)이라 불려왔다고 하는데 구절초가 한국의 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는 휴일에는 한라산을 오르고 더욱 높아진 파란 하늘을 배경삼아 사진 한 장을 찍어 볼 일이다. 바로 앞에나 옆에는 가을꽃의 대표중 하나인 한라구절초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 한라산의 가을에는 단풍도 있지만 한라구절초의 향기도 있다. 어떤 꽃보다 품위 있게 피어 청명한 하늘과 함께 한라산의 가을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초가을 제주의 오름이나 숲속을 걷다보면 생각지 않는 곳에서 특이한 모습으로 불현듯 나타나 시선을 끄는 누린내풀이라는 꽃을 볼 수 있다. 남보랏빛의 꽃잎에 암수술이 길게 밖으로 나온 자태가 매우 인상적이어서 한번쯤은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지만 식물체를 만지는 순간 지독한 악취 때문에 한발 떨어질 수밖에 없게 하는 꽃이다.


이처럼 강렬하고 유쾌하지 않는 냄새가 누린내풀이라는 이름을 얻게 했으며 노린재풀 또는 구렁내풀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게 했다. 이 꽃의 냄새가 하도 특이해서 한번 맡고 나면 이름이 잘 지어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또한 꽃술의 모습이 예전 과거에 급제하면 머리에 꽂던 어사화와 닮았다 하여 어사화로 부르기도 한다. 굳이 ‘나의 이름을 기억해주세요’라는 이 꽃의 꽃말을 들춰보지 않아도 냄새 때문에 누구나 기억할 수 있을 듯 하다.


누린내풀은 마편초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의 모습은 화려하면서 독특하다. 꽃은 늦은 여름부터 피기 시작하여 초가을이 되면 절정을 맞는다. 꽃이 피기 전에는 푸른색의 둥근 구슬처럼 보이는 꽃봉오리들이 줄기 끝에 여기저기 매달린다.


며칠 지나면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꽃잎은 다섯 장으로 돌려나고 그 가운데 아래 꽃잎 한 장이 길게 밑으로 완전히 벌어져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아래쪽 꽃잎에는 흰무늬로 점점이 수를 놓아 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꽃술도 특이하다. 암술과 수술은 크게 자라서 위로 길게 뻗어 조금 둥글게 휘어져 있다. 꽃의 전체적인 모습이 어사화처럼 모자에 길게 개나리꽃을 꽂은 형상이다.


식물들에게는 자신들의 후손을 이어가야 한다는 한결같은 목표가 있다. 그러나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무작정 곤충을 끌어들이는 것은 아니며 매우 선택적이다. 자신의 꽃가루받이에 도움을 주는 매개곤충이 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꽃 피우는 시간을 조절하기도 하고 누린내풀처럼 꽃의 모양, 크기를 변형시켜 자신에 맞는 매개곤충을 유인하기도 한다.



아래쪽으로 길게 뻗은 누린내풀의 꽃잎은 마치 벌이나 나비로 하여금 꽃잎에 편하게 앉도록 만들어진 착륙장처럼 보인다. 벌이 앉으면 주둥이가 바로 향하는 곳에 꿀이 숨겨져 있다. 벌이 착륙장에 앉으면 무게 때문에 위쪽의 꽃잎은 아래로 향하게 되고 위로 길게 뻗었던 수술도 함께 아래도 내려와 곤충의 날개에 닿으면서 꽃가루가 묻게 된다. 꽃가루를 묻힌 벌은 또다른 꽃으로 옮겨가 꿀을 따는 과정에서 꽃가루받이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한편 식물들은 자신이 원하는 매개곤충을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특유의 향기를 퍼뜨리기도 하지만 동물들이나 원치 않은 곤충에는 악취를 풍겨 접근을 막아 자신을 보호하기도 한다. 누린내풀도 꽃에서만은 악취가 아닌 향기를 풍겨 매개곤충에게 꿀을 딸 수 있게 하고 그 외의 동물에게는 악취를 풍겨 접근을 막는다. 이 악취는 특히 꽃이 필 무렵에는 더 심한데 꽃을 한번 보려고 가까이 가서 만지려고 덤벼들다간 몸에 밴 악취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할 지도 모른다.


풀꽃들의 모습과 향기는 각양각색이다. 고운 꽃과 향기로 누구나 한번쯤 관심을 갖게 하는 꽃이 있는 반면 꽃도 곱지도 않을 뿐더러 식물체를 건드리지 않아도 애초부터 악취를 풍기는 꽃도 있다. 또 누린내풀처럼 꽃은 화사하여 모든 이의 시선을 끌지만 가까이 하고 싶어도 악취 때문에 쉽지 않은 유별난 꽃도 있다. 누린내풀을 보면서 자신의 향기는 어떤지 뒤돌아 볼 일이다. 

 

여름이 되면 집 마당 한 구석에 핀 봉선화 꽃잎을 찧어 손톱에 올려놓고 물들이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 봉선화라는 꽃은 일제 당시 민족의 애환을 담은 홍난파의 가곡 ‘봉선화’의 영향인지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꽃으로 지금까지도 학교 화단에는 어김없이 심어져 있는 꽃이다. 그러나 봉선화는 인도가 원산으로 우리의 토종 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봉선화를 꼭 닮은 물봉선이 있다.

물봉선은 한해살이풀로 전국에서 자생하는 통꽃이다. 꽃은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 제주에서는 숲이 있는 오름이나 숲길로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봉선화를 닮았다 하여 봉선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봉선화처럼 손톱에 물을 들이지는 못한다. 그리고 물가에 자란다하여 ‘물봉선’ ‘물봉숭아’ 또는 들에 자란다 하여 ‘야봉선(野鳳仙)’이라는 봉선화와 대비하여 불리기도 했다.


물봉선의 모습은 특이하다. 키는 보통 60cm로 사람의 무릎보다 높이 자라며 꽃은 마디 사이에서 올라온 꽃대에 매달려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꽃잎의 입구는 석장의 레이스 달고 있는 듯 보이는데 구멍이 뚫린 것처럼 넓고 끝으로 갈수록 좁아진다. 서서히 좁아지던 꽃은 꼬리로 가면 나선형으로 살짝 말리고 그 안은 자주색 반점이 흩어져 있다. 물봉선에는 붉은색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노란색의 꽃잎을 가진 노랑물봉선, 흰색의 꽃잎을 가진 흰물봉선, 자주색의 꽃잎을 가진 가야물봉선도 있다. 그 가운데 제주에서는 붉은색과 흰색을 볼 수 있지만 가장 많은 것은 붉은 색의 물봉선이다. 그 모습은 고깔을 닮아 보이기도 하고 뱃고동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꼬리부분에 꿀샘(거: 距)이 있는데 이곳에 꿀이 있다.
벌이나 곤충들이 꿀을 따기 위해서는 비좁은 꼬리부분까지 머리를 밀어 넣어야 한다. 꿀을 깊은 곳에 숨겨놓음으로써 주둥이가 짧은 곤충들에게는 쉽게 꿀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행동반경이 좁은 곤충들은 꽃가루받이에 능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약간의 에너지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물봉선의 의지로 보인다. 곤충들이 꿀을 빠는 과정에서 다른 꽃의 꽃가루를 암술에 묻히거나 앉아있는 꽃의 꽃가루를 다른 꽃으로 운반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꽃가루받이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물봉선은 꽃가루받이에 좋지 않은 환경에서는 자신의 크기를 줄여가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동물들에 의해 줄기가 잘리면 위기위식을 느꼈는지 꽃의 크기도 줄이고 나선형으로 말린 꼬리부분을 없애 버림으로써 곤충들로 하여금 꽃가루받이를 쉽게 할 수 있게 한다. 또 곤충들이 활동이 뜸해지는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피어있는 꽃들도 꽃의 크기도 작고 말린 꼬리부분도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경우도 곤충들의 활동이 현저히 줄어든 시기여서 작은 수이지만 활동 중인 곤충들로 하여금 꽃가루받이를 좀더 쉽게 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보인다. 꼬리가 나선형으로 말려 있는 꽃의 구조도 꽃의 크기를 줄여서 꽃가루받이를 하는 모습도 오랜 시간 물봉선 나름대로 얻어낸 생존전략이다.


꽃가루받이가 끝나고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다. 익은 열매는 살짝 건드려도 싸고 있던 주머니를 용수철처럼 터뜨려 될 수 있으면 씨앗을 멀리 보내려 한다. 그런 이유로 꽃말도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이다. 물봉선은 수줍고 가녀리게 보이지만 독성이 있다. 그래서 예전부터 약재로 사용했는데 줄기는 뱀에 물렸을 때처럼 위급할 때도 이용했고 종기를 치료할 때도 또는 멍든 피를 풀어줄 때도 사용할 만큼 요긴했다.


올해도 제주의 숲에는 물봉선이 많이 피었다. 초가을 아이들과 함께 제주의 숲으로 가서 물봉선을 만나고 오는 것은 어떨까. 물봉선과 눈을 맞추며 그 뱃고동 같이 생긴 꽃으로부터 아름다운 가을의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아이들과 함께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여 보자. 아이들에게는 훗날 잊지 못할 추억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9월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햇살이 뜨겁다. 이 맘 때면 물 위로 연분홍색의 꽃을 피워 올리는 수생식물이 있는데 바로 물질경이다. 홍조 띤 아가씨처럼 청순하고 다소곳한 꽃의 이미지가 인상에 남아 매년 만나러 가곤 한다..


물질경이는 전국의 논이나 도랑 등의 물속에 사는 수생식물이다. 육지에서는 농약이나 제초제의 사용, 도로개설 등으로 많은 개체가 급격히 줄어 보기 쉽지 않지만 아직까지 제주에서는 서쪽에 있는 습지나 서귀포지역의 논으로 가면 간간이 만날 수 있다. 습지나 연못을 개간하여 농토로 바꾸고 또 도로를 만들고 또는 공장 부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식물들이 없어진다. 개발하거나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물질경이도 다른 식물들과 다르지 않게 잡초로 여겨졌을 테지만 식물들이 없어지는 만큼 사람들에게 다시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 지 생각해볼 일이다.


물질경이는 잎이 질경이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질경이와 물질경이는 계통분류학적으로 다른 족보를 가지고 있다. 질경이는 질경이과로 육지에 살며 물질경이는 자라풀과로 물속에 산다. 하지만 녹색의 잎이 뿌리에서 뭉쳐 나온 것은 질경이를 닮았다. 줄기가 없으며 잎은 물속에 잠겨있다. 8~9월쯤에 꽃이 피는데 꽃 하나에는 암술과 수술이 있다. 꽃잎은 흰색 바탕에 연분홍색이 가미되어 아주 고운 모습이다. 더욱이 햇볕 좋은 날에는 물속에 반영된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들꽃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기 있는 꽃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논이나 도랑, 또는 습지 물웅덩이가 삶의 터전이어서 그런지 물질경이가 살아나가는 방법 또한 독특하다. 수술은 6개를 가지고 있는데 암술머리 또한 6개로 갈라진다. 암술과 수술의 간격이 좁고 암술은 수술의 바로 밑에 있다. 이런 꽃의 구조는 하루밖에 꽃을 피우지 않은 물질경이가 매개체나 외부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꽃가루받이를 쉽게 할 수 있게 한다. 또 갑자기 비가 많이 내려 물이 깊어지면 꽃은 물속에 잠기기 되는데 이럴 때면 꽃봉오리에 기포를 만들고 기포 안에서 꽃가루받이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암수술의 간격이 짧은 구조여서 가능한 일이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자연의 변화에 적응한 물질경이의 기발한 전략이 경이롭다.



또 물질경이는 물이 썩는 것을 막아 습지나 연못을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이나 밭에 뿌리는 비료와 그 밖에 흘러들어오는 영양분들은 물웅덩이에 모이게 되고 그 영양분들이 많아지면 물은 서서히 썩어간다. 그러나 물질경이 등 수생식물들은 뿌리로 물에 녹아있는 영양분들을 흡수하게 되며 그 결과 물웅덩이가 썩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가 있다. 이처럼 수생식물들이 많아지면 물이 조금씩 깨끗해질 것이고 다른 생물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건강하게 만들어진 습지환경은 많은 식물들에 의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온난화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물질경이를 비롯한 여러 수생식물들은 비교적 깨끗하지 않은 물에 살지만 그 물을 깨끗하게 하여 다른 생물들의 터전을 만들어준다. 그렇게 만들어진 습지는 우리들에게 다시 쾌적하고 풍요로운 자연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습지나 연못은 알게 모르게 여름철 많아지는 빗물을 저장하여 홍수를 예방하고 다양한 식물들을 자람으로써 공기를 맑게 하는 등 우리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에는 생태학습장으로, 생태관광코스로 서서히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습지를 되살리는 것은 물질경이를 비롯한 습지식물이 돌아오는 것 이상의 또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다.

 


네귀쓴풀

여름이 한풀 꺾일 무렵인 8월 하순으로 접어들면 한라산은 물매화, 산솜방망이, 한라송이풀, 쥐손이풀 종류 등 들꽃들이 지천이다. 그 가운데 네귀쓴풀과 개쓴풀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꽃들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은 한라산은이미 가을로 접어들었음 뜻한다.

쓴풀은 뿌리의 맛이 쓰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방에서는 약재로 많이 이용된다. 국내에는 네귀쓴풀 외에 대성쓴풀, 쓴풀, 개쓴풀,
자주쓴풀, 큰잎쓴풀 등이 있는데 꽃잎이 넉 장인 것과 다섯 장인 것으로 나누어진다. 꽃잎이 넉 장인 것은 네귀쓴풀, 대성쓴풀, 큰잎쓴풀이 있고 다섯 장인 것은 쓴풀, 자주쓴풀, 개쓴풀이 있다. 제주도에는 8월 중순이 되면 한라산에 네귀쓴풀과 개쓴풀이 피고 가을이 한창인 9월 말부터는 저지대 오름에 자주쓴풀이 피기 시작한다.

네귀쓴풀은 전국의 들판에 자생하는데 제주에서는 한라산 초원으로 가야 볼 수 있다. 보통 키는 30cm까지 자라지만 한라산에 자생하는
것은 10cm 남짓할 정도로 자그마하다. 꽃잎은 흰색을 띠고 있으며 잎은 넉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흰 꽃잎 위에는 파란색 무늬가 점점이 수를 놓고 있고 이 무늬는 네귀쓴풀의 순백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또 꽃잎마다 조그만 구멍의 선체(腺體)라는 기관이 있는데 식물의 분비 물질을 배출하는 곳으로 귀를 연상케 할 만큼 신기한 형상을 하고 있다. 귀가 네 개인 셈으로 이런 이유로 네귀쓴풀이라는 이름을 얻었음직도 하다.

개쓴풀은 한라산 해발 1000m에서부터 정상 가까이까지 습지나 습기가 많은 양지에서 네귀쓴풀보다 조금 늦게 피어난다. 키는 20cm가 안
되지만 흰색의 꽃이 필 때면 보라색의 한라부추와 어울리며 별이 땅에 내려온 듯한 느낌을 준다. 개쓴풀은 나도쓴풀이라고도 하는데 다른 쓴풀류처럼 쓴맛이 없다하여 개쓴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꽃잎이 넉 장인 네귀쓴풀과 달리 꽃잎이 다섯 장이며 흰색 바탕에 자주색 줄이 있다. 꽃잎 안에는 흰털이 수북이 나 있고 그 털 속에는 두개의 선체가 숨겨져 있다.

네귀쓴풀 꽃잎 위의 파란 무늬나 개쓴풀의 자주색 줄, 또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선체는 모두 꽃가루받이와 연관되어 있다. 8월 중순부터는
한라산의 고지대에는 매개체의 활동이 점점 뜸해진다. 선체에서 분비되는 물질은 매개체를 유인할 것이고 이 물질에 이끌린 매개체는 파란 무늬가 있는 꽃잎에 앉게 될 것이다. 나비나 벌 등 매개체는 꽃잎에서 꽃가루라는 양식을 얻어가는 대신 다른 꽃의 암술대에 꽃가루를 묻혀 꽃가루받이가 되게 하고 후손을 이어가는데 도움을 준다.


개쓴풀


식물들은 단맛을 내는 것에서부터 신맛, 쓴맛 등 여러 가지 맛을 낸다. 숲은 밖에서 보면 평온한 것 같지만 식물에게는 많은 위기가 함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위기를 극복하지 않으면 후대를 이어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식물들은 살아남기 위한 기발한 전략들을 짜내는데 쓴맛을 내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어린 나물은 부드럽고 아미노산 등이 들어 있어 영양이 풍부하여 애벌레들의 영양분이 되지만 어느 정도 자라면 잎은 두껍고 고약한 맛을 냄으로써 잎을 먹은 곤충들로 하여금 소화를 방해한다. 또 잎을 통해 좋지 않은 분비물을 만들어 악취를 풍기게 함으로써 곤충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들도 있다. 또 쓴풀 종류나 소태나무처럼 아예 처음부터 잎에 쓴맛을 내어 자신의 잎을 곤충들이 먹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가을철은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매개체의 활동이 뜸해지는 시기라 꽃들은 꽃가루받이할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꽃들이 뭉쳐서 피
기도 하고 색깔이 진해지기도 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네귀쓴풀은 눈에 잘 안 띄는 흰색 꽃이어서 꽃잎에 예쁜 무늬를 만들어 놓기도 하고 자주색 줄을 그어 놓기도 하며 신기하게 생긴 선체를 만들어 놓아 후손을 이어간다. 오는 가을 한라산을 오를 때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응원의 눈길을 주는 것은 어떨까.

 

8월 중순이다. 며칠 전부터 가을이 시작됐음인지 아침공기가 싸하다. 이 시기에 제주에서 들꽃을 보려면 한라산이나 저지대 습지나 연못으로 가야하지만 중산간 일대의 숲이나 그늘이 있는 오름에도 어김없이 연보랏빛 방울꽃이 피어난다.

방울꽃은 제주도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30~60cm 정도이고 조금은 습한 나무그늘을 좋아한다. 꽃은 민감하여 조금만 스쳐도 꽃잎이 떨어진다. 꽃색은 화려한 보라색이지만 모습은 투박하여 잘 생긴 모습은 아니다. 이름 그대로 큰 방울 같기도 하고 시골 마을회관에 마을소식을 전하는 큰 스피커를 닮아 보이기도 한다. 꽃색은 연보라, 자주색이 대부분이지만 몇년 전 한라산 중턱에서 흰 꽃 군락이 발견되어 뉴스가 된 적도 있다.

방울꽃(Strobilanthes oliganthus)의 종소명 ‘oliganthus’는 ‘작은 숫자의’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꽃은 잎겨드랑이나 줄기 끝에 꽃 하나가 피고나면 시간 차이를 두면서 다른 하나가 피는 방식으로 한 쌍씩 적은 숫자의 꽃이 달린다. 수술은 흰색으로 네 개가 있는데 두개는 길고 두개는 짧아 밖에서 보면 수술이 두 개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에 피기 시작한 꽃은 조금씩 머리를 일으키고 마지막엔 하늘을 바라보다 저녁이 되면 꽃잎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싱싱한 꽃 옆에는 시든 꽃 하나가 드러누워 있어 한 쌍의 꽃을 온전하게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벌이나 곤충들은 끊임없이 꿀을 모으러 꽃 속을 들락거리고 있다. 꿀은 꽃의 맨 끝에 있는 지 곤충들은 연신 머리를 꽃잎 속으로 파묻고 있다. 꽃 입구에 있는 수술의 꽃가루는 이 과정에서 곤충의 몸으로 묻어 또 다른 꽃의 암술머리에 묻히게 되고 방울꽃은 다음 세대를 자연스럽게 기약할 수 있게 된다.

방울꽃을 보려면 오후 해가 떨어지기 전 저녁 무렵이 더 좋다. 때를 맞춰 한 줄기 빛이 숲속의 길을 만들며 꽃잎에 내려앉기라도 하면 꽃을 담는 사람들에게는 조그만 흥분이 이는 순간이 된다. 누군가 꽃잎을 살짝만 흔들어도 아름다운 방울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저녁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보라색 꽃들은 일제히 머리들 들어 올려 합창을 하고 향긋한 숲내음과 어우러져 그윽한 제주 숲속의 여름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근무하는 한라생태숲에도 올해는 방울꽃이 많이 피었다. 태풍 무이파가 지나간 자리에는 큰 나무가 꺾이고 뽑히고 했지만 가녀린 방울꽃은 늘 그랬던 것처럼 꿋꿋이 피어 숲속의 여름소식을 전하고 있다. 방울꽃을 보면서 신기한 꽃을 만난 듯한 탐방객의 표정에서 행복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아주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을 일이다.


방울꽃의 꽃말을 만족이라 했다. 하나를 더하면 그 위에 또 하나를 더하고 싶은 것이 우리네 마음일 텐데 얼마나 만족하면서 살아갈까. 투박하여 비교적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숲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어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작은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 하다. 아무래도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숲으로 방울꽃을

 

8월의 한라산은 유독 구름이 몰려왔다가 흘러가기를 반복한다. 흐르던 구름은 조금은 높게 보이는 언덕에 걸리고 그 언덕 바위틈에는 한 묶음의 백리향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허브라 할 만큼 향기가 진한 식물로 잘 알려진 백리향은 낙엽이 지는 작은 나무로 제주에서는
한라산의 해발 1000m 이상 되는 곳으로 가야 볼 수 있다. 육지에서도 양지바른 석회암지대로 가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이 아니다. 언뜻보면 키가 커봐야 40cm도 안될 만큼 작고 줄기는 옆으로 뻗어 뒤엉켜 있어 마치 풀처럼 보인다. 백리향의 진한 녹색의 잎은 타원형으로 두툼하지만 부드러우며 분홍색이나 흰색의 꽃은 자주색 꽃받침과 대조를 이루면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백리향의 학명이 Thymus quinquecostatu인데 속명 Thymus는 ‘향기를 뿜다’라는 뜻이라고 하는데서 알 수 있듯 이름을 얻은 것은 이 식물에서 나오는 향기 때문이다. 백리향이란 국명의 유래에 대해서도 두 가지 이야기가 알려져 있다. 하나는 향이 백리를 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손을 잎에 대기만 해도 향기가 코끝으로 전해오는 것을 보면 향내를 진하긴 하다. 그러나 향기가 백리까지 가지는 않을 터 조금은 과장된 느낌이 있다. 다른 하나는 식물이 키가 작아 사람 또는 동물들이 밟히면 몸에 향내가 묻어 백리를 따라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왠지 후자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한라산을 오르다 보면 유독 백리향에 벌들이 많이 모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식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많은 벌과 나비들을 오게 했음은 두말나위가 없다. 높은 산의 8월은 벌이나 나비 등 매개체의 활동이 점점 뜸해지는 시기가 된다. 이런 시기에 가뜩이나 키가 작고 꽃이 작아 백리향은 진한 향기라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을 것이다. 혹시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있었을 법도 하다. 이런 이유로 벌들이 많이 모이는 백리향이 피는 곳에 벌통을 준비해두면 향기가 좋은 진귀한 백리향꿀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향기가 좋은 식물을 개발하여 쟈스민, 로즈마리등 허브라는 이름을 붙여 잎에서부터 꽃, 줄기, 열매 등 식물체 전체를 식용뿐만 아니라 종류에 따라서 약용, 방향제, 살충제 등 생활에 이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향이 독특한 식물들을 생활에 이용해왔는데 냉이는 단백질 함량이 좋고 같슘, 철분 등이 풍부하여 좋은 먹거리였다. 씀바귀는 위장을 튼튼하게 하여 소화기능 좋게 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외 쌉쌀한 맛이 나는 달래, 해독작용을 한다는 머위, 근심을 없애 우울증에 좋다는 원추리 등 모두 국산 허브라 할 수 있다. 향기 좋은 백리향은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예부터 지초(地椒)라 하여 한약재로 사용했는데 위장을 보호하데 그만이어서 설사를 멈추게 하고 또 가래를 삭혀주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백리향의 꽃말은 용기이다. 키가 작고 꽃도 작지만 백리향은 용기를 내어 진한 향기를 만들고 벌들을 불러들였다. 또 그 향기에는 진한 여운이 있다. 여름이 가기 전에 한라산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백리향의 향기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7월이 끝나갈 즈음부터는 야생화는 수생식물이 대세이다. 대표적인 식물로 수련, 연꽃, 어리연꽃 마름, 가래 등이 있다. 그 중에 수련이나 연꽃은 관상으로 많이 심어 모르는 사람들이 없지만 어리연꽃은 그 아름다움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꽃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일찍부터 연꽃이나 수련 못지않게 어리연꽃도 가장 인기 있는 수생식물 중 하나여서 꽃이 피는 시기가 되면 사진을 담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다.

어리연꽃은 중부지역 이남의 양지바른 습지나 연못에서 자라는 수초이다. 제주도에서는 저지대 오래된 연못에서 볼 수 있는데 동부지역 곶자왈 습지에 많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원형의 동글동글한 방패모양의 잎은 잎자루를 길게 늘여 뜨려 물위에 뜬다.

8월이
되면 잎겨드랑이에서 꽃대를 물 위로 밀어 올려 흰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잎 안쪽으로는 가늘고 긴 흰털들이 촘촘히 나있고 중심부는 노란색을 띠고 있다. 꽃 크기는 작지만 중심부의 노란 무늬는 꽃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하여 벌이나 나비를 가득 모이게 한다. 조금씩 높아져가는 하늘과 연못으로 내려앉은 구름과 어울린 어리연꽃의 모습은 연못의 공주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국내에는 어리연꽃과 비슷하지만 잎도 꽃도 훨씬 작은 좀어리연꽃과 더 크고 노란색 꽃을 피우는 노랑어리연꽃이 있다. 그 중 어리연꽃과 노랑어리연꽃은 서로 사촌지간이지만 꽃의 모양도 삶의 방식도 차이가 있다. 어린연꽃은 물 위에 뜬 잎에서 뿌리가 나와 물위를 떠다니다 어느 곳에 정착하여 또다른 개체로 성장한다. 이런 이유로 어리연꽃이 잎과 잎 사이는 여유가 있는 반면 노랑어리연꽃은 꽃잎도 노란색이지만 땅속의 뿌리를 확장하여 개체군을 늘려가는 방식이어서 잎은 연못 전체를 빽빽하게 덮고 있는 느낌을 준다. 또 어리연꽃의 잎은 항상 물위에 떠 있는 데 비해 노랑어리연꽃의 잎은 물 위까지 자라기도 한다.


어리연꽃의 ‘어리’는 보통 ‘어린이’ ‘어리굴젓’ 등 어리다는 뜻이므로 ‘어린 연꽃’이 된다. 그런데 어리연꽃은 수련과 잎이 비슷하여 수련과 같은 과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어리연꽃은 용담과이며 연꽃은 수련과이다. 식물의 분류상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두 종은 사촌지간도 아닌 것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어리’는 ‘비슷하거나 가까운 것’으로 되어있다. 어리연꽃은 연꽃과 사촌지간은 아니지만 연꽃과 비슷하다는 의미로 ‘어리연꽃’이라는 이름을 얻은 모양이다.


어리연꽃의 학명은 Nymphoides indica이다.

‘Nymph’는 '물의 요정'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학명이 의미하는 것처럼 어리연꽃은 물의 요정인양 작고 귀여운 꽃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귀여운 어리연꽃은 하루밖에 피지 않는다. 비가 오는 날이든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많은 꽃을 연속적으로 피워 꽃이 오래 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전부터 낮까지 피고 오후에는 꽃대가 물속에 잠기고 저녁이 되면 시들어버린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다른 봉오리가 꽃잎을 연다. 이런 이유로 꽃을 제대로 보려면 오전에 연못으로 가야한다.

어리연꽃은 수질을 정화하여 수생생물을 살 수 있도록 하고 산란장소를 제공해주기도 하여 환경지킴이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수생식물들과 함께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물속에 묶어둠으로써 기후변화의 영향을 줄여주기도 한다.

어리연꽃은 습지나 연못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씨에 관계없이 운명처럼 꽃을 피움으로써 8월이 그들의 시간임을 알린다. 습지나 연못의 깨끗하지 않은 물속에 뿌리를 뻗고 잎을 물 위에 띄우고 꽃대를 밀어 올려 그들만의 터전을 만든다. 또 물을 깨끗이 하여 날씨에 관계없이 벌 나비 등을 초청함으로써 나름의 생활방식으로 삶을 이어 나간다. 마치 얼굴 찌푸림 없이 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제주의 해안도로는 최근 올레코스로 유명하지만 더운 여름철에는 걷는 것보다는 예전처럼 드라이브 코스가 제격이다. 해안도로를 달리다 보면 제주바다를 배경으로 까만 제주 현무암을 터전삼아 피어있는 노란 꽃이 시선을 끈다. ‘노란 무궁화’라 불리는 황근이라 하는 나무로 별명처럼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를 닮았다.


황근은 아욱과 식물로 어린 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의 꽃이 가지 끝 잎겨드랑이에서 하나씩 피어 있다. 노란색의 꽃잎 안쪽 중앙부는 검붉은색, 수술은 노란색, 암술머리는 붉은색으로 치장하여 사람의 손바닥만한 크기의 연초록 잎사귀와 어울리며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듯 하다. 그래서 꽃을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열대 어느 지역에서 이주한 나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우리들도 살아가는 방법이 다양하듯 식물들도 후손 번식을 위한 씨앗을 퍼뜨리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물론 오랜 시간 자연에 적응한 결과일 것이다. 민들레는 열매의 무게를 가볍게 하여 공기 중으로 씨앗을 멀리 날린다. 단풍나무는 열매에 날개를 달아 바람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사과나무나 벚나무 종류는 열매를 맛있게 하여 동물에게 먹힘으로써 동물들로 하여금 씨앗을 이동하게 하기도 하며 짚신나물이나 주름조개풀은 열매에 거꾸로 된 가시나 끈적끈적하여 잘 떨어지지 않은 진액을 만들어 동물의 몸에 붙어 다니는 방식으로 씨앗을 퍼뜨린다. 또 황근처럼 파도를 이용하는 식물들도 있다.


황근은 삶의 터전을 바닷가로 정했다. 종자는 염분에 잘 견디도록 적응되어 있다. 또 물에 떠다닐 수 있을 만큼 무게도 가벼워 해류의 흐름에 따라 떠돌아다니다 육지 어느 곳에 뿌리를 내려 살아간다. 그래서 황근을 바닷가를 의미하는 ‘갯’ 또는 ‘해’자 붙여 갯부용, 갯아욱, ‘해마’라고도 한다.


키는 육지에 자라는 것이 커 봐야 5m를 채 넘지 못하고 바닷가에 자라는 것은 1m 안팎으로 가을이면 낙엽이 진다. 전체적으로 꽃은 6월에서 8월까지 오랫동안 피어 꽃을 볼 수 있는 기간이 길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가지 끝에 한 송이씩 달려 꽃도 많이 피지 않고 해류를 이용하는 식물이다 보니 종자가 모두 발아하는 것도 아니다. 분포지역도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도서지역에 한정되어 있고 개체수도 많지 않다.

그래서 황근은 귀하신 몸이 되어 멸종위기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면서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정부는 학술적 가치가 높거나 개체수가 감소하여 국제적으로 보호가치가 높은 야생식물을 자연환경보전법에 의거 법정 보호해오고 있다. 또 제주도에서는 성산읍 식산봉의 황근 자생지는 제주도기념물 제47호로 지정해 놓기도 했다.


예전부터 황근의 나무껍질은 질겨서 제주도에서는 밧줄을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꽃이 피는 기간이 길어 관상용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 요즘 날씨와는 잘 맞지 않지만 예전에는 황근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장마가 시작되고 황근 꽃이 질 무렵이면 장마가 끝난다고 하여 황근 꽃이 피고 지는 시점을 생활에 이용하기도 했다.


초여름 일출봉 또는 한라산이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 올레길 한 모퉁이에는 짠물에 견디며 바닷바람에 견디며 장마에도 꿋꿋이 꽃을 피어내는 황근이 있다. 이런 이유로 황근 꽃의 향기를 맡아보는 일은 제주 자연의 맛을 느껴보는 것과 같다. 이번 주말엔 가족과 함께 황근을 만나러 가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어떨지.

 

교래 삼나무가 즐비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햇빛이 내려앉은 산수국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사진가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산수국은 봄꽃이 거의 끝나갈 즈음인 7월부터 만개하여 들꽃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아쉬움 달래줍니다. 산수국은 저지대 오름에서부터 한라산에 중턱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산골짜기 작은 숲이라고 하면 어느 곳이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산수국은 산(山:산에서 자란다) 수(水:물을 좋아한다) 국(菊:국화꽃처럼 풍성하다)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산과 물이 어우러져 아름답게 피는 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또 1m도 안되는 작은 키와 가을이면 모두 떨어져버리는 잎 때문에 초본식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산수국은 엄연한 나무입니다.

꽃의 모양을 보면 가운데는 암수술이 있는 진짜 꽃이 있고 주변을 돌아가면서 가짜 꽃이 있어 원반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산수국 종류에는 산수국 이외도 가짜 꽃에 암수술이 있는 것을 탐라산수국, 가짜꽃잎에 톱니가 있는 것을 꽃산수국, 잎이 좀 더 두터운 것을 떡잎산수국 등으로 좀더 세분해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구분점이 모호하고 그 구분이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진 않습니다.

식물들에게도 자기의 후손을 이어가야 한다는 한결같은 꿈이 있습니다. 이 꿈을 이루려면 꽃가루받이를 잘 할 수 있어야 하는 데 산수국은 꽃가루받이를 위한 기발한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암수술이 있는 진짜 꽃은 너무 작아 나비, 벌 등 매개체의 눈에 띄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산수국은 꽃 주변에 꽃받침을 잘 발달시켜 암수술이 없는 가짜 꽃을 만듭니다. 가짜 꽃은 씨앗을 맺을 수 없는데 대신 화려한 색으로 치장해서 매개체를 유인합니다. 매개체는 가짜 꽃에 이끌려 왔다가 진짜 꽃으로 옮겨 꽃가루받이를 하게 되고 산수국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더 재미있는 것은 매개체를 유혹할 때 하늘을 향해 당당히 피던 가짜 꽃이 꽃가루받이를 끝내면 땅으로 얼굴을 돌려버립니다. 이제는 나비, 벌 등을 유혹하기 위해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고 산수국은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짜 꽃의 화려한 색깔들을 서서히 지우면서 산수국은 그 자리에 선 채로 겨울을 나게 됩니다. 자기의 역할을 끝낸 뒷모습입니다. 혹자들은 이런 모습 때문에 ‘뒷모습이 아름다운 꽃’이라 하여 산수국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후손을 이어가려는 생존전략은 기발하고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간혹 다른 색깔의 변이가 나타나긴 합니다만 보통 꽃의 색깔은 고정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산수국의 꽃은 흰색, 분홍색, 파란색 등 다양합니다. 분홍 꽃이라 해야 할지, 파란 꽃이라 해야 할지 헷갈릴 만큼 기묘한 색깔의 꽃을 가졌습니다. 또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푸른색이나 분홍색으로 꽃이 변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토양의 산도 때문이라 하는데 흙의 성질이 산성이 강하면 파란색, 알칼리성이 강하면 분홍색, 중성이면 흰색의 꽃이 달리는 것이라 합니다. 어쨌든 이런 모습 때문인지 산수국의 꽃말도 ‘변하기 쉬운 마음’‘무정’이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산수국 꽃 선물은 안되겠습니다.

산수국을 제주에서는 꽃의 색깔이 파란색의 도깨비불을 닮았고 꽃의 색깔이 자주 변한다 하여 도체비고장 또는 도체비꽃이라 불려지며 이런 이유로 집 주위에는 심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인 정지용은 백록담이란 시에서 ‘귀신도 쓸쓸하여 살지 않는 한 모퉁도체비꽃이 낮에 혼자 무서워 파랗게 질린다’라고 표현할 만큼 귀신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너무나 외딴 곳에 핀 산수국의 모습에서 도깨비불을 연상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꽃의 색깔이 자주 변하는 특징이 장점이 되어 조경수로 애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산수국은 가짜 꽃이 없다면 작은 꽃만으로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1등만이 알아주는 세상이 아닌 2등도 3등도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산수국의 가짜 꽃은 알려주고 있는 듯 합니다.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척박하고 외딴 곳에 아름답게 피어 기만의 방법으로 꿈을 실현해나가는 산수국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한라생태숲 로고
숲으로
오늘 생태숲에는
숲이야기
동.식물
숲이야기 Home > 숲이야기
작성일 : 10-06-16 22:40
식물들의 숲에서 살아남기 전략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70

 

 

한라생태숲 로고
숲으로
오늘 생태숲에는
숲이야기
동.식물
숲이야기 Home > 숲이야기
작성일 : 10-06-16 16:43
꽃들의 다양한 꽃가루받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0

 

 

 

 

'소금창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꽃3  (0) 2013.08.22
강정천의 숨은 비경 '냇길이소'  (0) 2013.05.20
  (0) 2013.04.11
우리나라의 버섯 이야기 #2  (0) 2013.04.11
우리나라의 버섯들 #1  (0) 2013.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