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산골아이의 선악과 뱀딸기 본문
뱀딸기는 4월부터 10월 말까지 오랫동안 꽃을 피운다.
어릴 적에는 뱀딸기를 자주 따먹곤 했었다.
그 때의 맛은 달작지근한 추억으로 남아있는데,
요즘 먹어보면 달지도 않고 밋밋하기만 하다.
이놈의 혀가 오십 년 동안 온갖 단맛 쓴맛 다 보면서
감각이 무디어지고 사치스러워진 탓이리라.
‘뱀딸기’는 뱀이 먹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지만,
뱀이 이 열매를 먹는 것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중국 이름과 한약재명은 사매(蛇梅), 즉 ' 뱀매화'이고,
열매의 즙이 뱀이나 벌레에 물린 데 약이 된다고 한다.
뱀딸기는 뱀이 다닐만한 논둑이나 풀밭에 살면서
뱀처럼 땅을 기는 줄기를 뻗어가면서 자라니
이 풀은 '뱀딸기'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게다가 뱀이 겨울잠을 자고 나오는 봄에 꽃을 피우기 시작해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가을까지 오랫동안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정말 뱀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식물이다.
뱀딸기의 개화 기간은 쥘 르나르(Jules Renard, 1864~1910)의
뱀이라는 시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뱀 / 너무 길다.
세상에서 ‘제일 짧다’는 이 시는 ‘너무 길다’이다.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먹은 후 시작된 인간의 죄가
뱀처럼 길게 수만 년을 이어지고 있다는 메시지일까.
나의 죄도 뱀딸기를 따먹었을 때 시작되었는 지 모른다.
먹으면 배탈이 난다는 금단의 열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몽글 몽글 먹음직한 빨간 사탕 같은 열매는
먹을 것 없었던 산골 아이에게 참기 힘든 유혹이었었다.
서너 살 쬐끄만 입술에 빨간 물을 묻히고서도
안 먹은척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을 것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꿈 같은 날들이다.
인디카 사진 동호회
'모산청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숲 속의 그림엽서 (0) | 2013.04.19 |
---|---|
한택식물원의 꽃편지- (0) | 2013.04.18 |
산자고의 이름에 대한 오해 (0) | 2013.04.11 |
봄빠람난 홀아비 바람꽃 (0) | 2013.04.11 |
한택식물원에서 온 꽃편지 (0) | 201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