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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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세상의 길 위에서 내가 만난 노자

까미l노 2013. 3. 17. 22:23

밤 늦게나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3월14일 봄이 오고있는 휴일아침에 카미노 도보여행 팀과

서산의 상왕산 개심사 숲길을 걷기 위해 서울을 출발했다.


개심사는 언제가도 고즈넉하고 단아한 옛집 같은 푸근한 마음이 들어서 좋은 절집이다.

한서대 정문 옆을 지나 마을 사이로 난 시멘트 포장길을 한참 오르면 숲길이 시작 되는데

사실은 산불이 났을 때와 마을 주민들의 농사일 때

왕래를 편리하게 하기위해 트럭이나 경운기가 잘 다닐 수 있도록

시멘트로 포장을 한 길이다.


유비무환도 좋지만 현재 전국의 산간 임도라는 것이 산불이 났을 때 무용지물인 곳이 많다고 하니...

크게 위험하지 않거나 그닥 쓸모가 없는 산 높은 곳의 드넓게 닦여진 임도나 시멘트 포장길은

모두 흙길이나 낙엽이 깔린 숲길로 돌려졌으면 참 좋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숲이 있는 길을 걸을 때면

덧 없이(?)욕심이 생겨지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터,


마을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차 한 대 지나 다니지 않았던 산길에 휑하게

넓직한 찻길을 만들어 버렸으니, 행여라도 산불 때문에 만든 임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차 없는 길 산 속의 숲길을

옛사람들이 다녔던 잊혀져가는 시골길을 한사코(^^)찾아다니는

우리 같은 어리석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넓고 편안한 길보다는 그냥 있었던 흙길 그대로를 소원한다는 사실이다...



도심에서야 어디 저 멀리 빌딩 숲 사이로 보여지는

버스로나 갈 한 두 정거장 길이 까마득할 터이지만

지금 바라다 보이는 맞은편 지평선 같은 저 언덕 너머 모퉁이가

더 없이 아름답고 예쁘게만 보이는 것을...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한결같이

 한 모퉁이 돌고나면 또 이어지는

모퉁이길이 정겨워서 마치도 길의 미식가 같은 느낌인 것을...



대한민국의 여성들 특히 아가씨들은

동무가 되면 서로 손을 잡고 걷기도 하는데 외국 사람들이 보면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여질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만

우리네 여성 길동무들은 이렇게 금새 길 위에서 친구가 되어 행복한 나들이를 하게 된다.



요즈음 세상을 살면서 기쁜 마음으로 가슴이 쿵쾅거리고 설레일 일이 얼마나 있을까...


굽이굽이 산 모퉁이를 돌고 또 돌아도

계속해서 나타나 주는 이런 길을 만나면 늘 내 가슴은 쿵쾅거리며 두방망이질을 하곤 한다...


산티아고에서도 인도에서도 히말라야에서도

그곳 사람들은 다들 우리를 이상한 사람 보듯 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비싼 항공료 물어가면서 하릴 없이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사람들을

그네들이 어떻게 이해를 다 하겠는가...


직접 그런 물음을 여러번 들었던 나로서도

딱히 뭐라고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시킬만한 방법은 없었고

그저 걷는 것이 취취라고만 했었다

 

인도에서는 오토릭샤를(원동기 세발 택시)타고 가다가 내려서 걸었는데

물론 왕복 이용료를 미리 지불했었고 대략 10km남짓 남은 거리에서였는데 

엄청나게 멀게 남았으니 타고 가라고 릭샤 드라이브가 걱정스레 말하는 걸

 

우리는 아니다 괜찮다며 걸어 가겠다고 돌려보냈는데

지나가는 릭샤마다 아주 싸게 해줄테니 타고 가라고 ...

아마, 우리가 교통비를 더 아낄려고 걷는 줄 알았나 보다...



어쩌다 우리는 자동차에 길을 뺏기고 산 속의 그나마 포장이 덜 되었거나

시멘트만 깔린 이런 길이라도 감지덕지 하며 찾아다니게 된 것인지...


사람이 걷는 길보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 우선인 세상에 살고 있으니 어쩔 도리야 있겠냐만

언젠가는 사람이 행복하게 다닐 수 있을 길을 위해 포장된 길들을 뜯어내는 무지몽매한 일들을 벌리게 될 것 같다...



저런 길들로 대한민국을 한 바퀴 돌 수있게 연결이 된 상상을 자주 하곤 한다.


발전상하고는 전혀 다른 택도 없는 발상일진 모르겠으나

아마도 행복지수만큼은 상당히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산티아고에서는 자동차보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길을 우선시 해서 길이 많이 만들어져 있었고

심지어는 도로가의 입간판에 배낭을 매고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한 표지판도 서 있다.


오락가락하던 얄궂은 날씨의 비도

다행 일락사 주차장 개울가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후 부터 내리기 시작했고

언제나처럼 날씨 덕을 많이 보는 카미노를 위해

아주 불편할만큼의 비는 내리지 않았고 내가 비옷을 입으면 그치고

더워서 비옷을 벗으면 내리기 시작하는 비님 떄문에

회원들에게서 비옷을 벗지 말라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기도 한 도보여행길이었다...

 

 


나같이 심정적으로만 종교가 불교인 사람들은 저렇게 오래된 나무가 기둥으로 되어있고

빛바래고 오래 되었을 성 싶어야 제대로된 절집인줄을 안다만


개심사는 그야말로 조그마한 시골집 같은 모습을 하고 상왕산 아래에 자리한 오래된 절집이다.


아주 오래 살은 배롱나무 아래 마음을 씻으라는 세심정이 있으며

절집은 또 마음을 열라고 개심사라고 지어진 것 같았다.


절집에서 절은 못해봤지만 마음은 세속적인 것에서 잠시나마 떠날 수 있고 경건해진다.


                 송림 사이로 난 계단을 지나 절로 오르는 길이었다.

개심사(開心寺)입구 직은 돌에는 '세심(洗心).마음을 닦으라고 세겨져 있다.

 

때는 만추였다.

온 산은 붉게 타고 있는데 송림은 그윽한 푸른색이다.

허나 그 역시 추위를 타는 생물인지라 땅에는 지난 계절에 떨어진 솔잎이 푹신하다.

 

소나무 숲은 절 바로 아래에까지 이어지는데 그 끝에 연못이 하나 있다. 

'경지(鏡池)

마음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나는 이 네모난 경지 한쪽 끝에 앉아 가을을 감상한다.

 

샛노란 단풍잎들이 연못 위로 떨어져 물에 비친 푸른 하늘이 부서진다.

외나무 다리가 그 위에 있다.

 

붉음과 샛노란 원색 자연 그리고 속세를 떠나 성역으로 가는 외나무다리

나는 절로 오를 생각을 잊고 그 풍경에 완전히 빠져 들었다.

내가 앉아 있는 그늘 아래에 경지라 새겨진 작은 바위가 있어

거기에 자라 한 마리가 올라와 풍경에 빠진 나를 보려본다.  

 

요놈 봐라.

얼른 카메라를 들어 그놈을 찍으려 하는데

도저히 자라라고는 빋기지 않는 날렵한 속도로 자라는

두세 자쯤 멀찍히 점프해 물 속으로 도줄하고 말았다.


놈이 도주한 연못을 자세히 보니 이전투구(泥田鬪狗)도 그런 가관이 없었다.

지난 여름동안 물이 말라 잉어들이 반쯤 내밀고서

진흙탕 위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아가미를 빠꼼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얕은 정도가 죽을만큼은 아니어서

물고기들은 제 신세도 모르고 올챙이와 모기들을 냉큼냉큼 잘도 잡아먹고 있었다.

 

어떤 놈은 그 얉은 흙탕에서 장난을 치다가 물 위로 뛰어오르기도 하니

거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민망타,


울긋블긋 물든 낙엽들과 반쯤 질식과 익사 상태를 오가는 잉어들과

세상을 비웃는 날썐 자라들이 흥겹게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외나무 다리는 수면에서 50센티미터도 안 되는 높이에 걸려서 4,5미터 정도 되는 연못 양쪽을 잇고 있다.

다리 아래에서는 이전투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그 다리를 건너야 개심사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부처님을 뵐 수 있다.

 

물론 에둘러 가는 길이 없진 않았으되 그 길을 고르면

'정원 가꾸기를 수행의 한 방업으로 삼고있는 게 분명한' 개심사의 가을은 즐길 수 없다.


그 가을날, 바로 다리가 문제였다.

하라는 마음 닦기는 하지 않고 바보고 있으니

30분 정도 앉아 있는 내 눈앞에서 그 어떤 이도 제대로 건너는 이 없는 그 다리가 문제였다.

 

그 시간 동안 관광객 십여 명이 다리 건너기를 시도하였는데

그 모양새가 하나같이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잘 생기고 건장한 남정네 하나가 호탕하게 웃어젖히며 발을 내민다.

그런데 발은 두 걸음을 채 옮기지 못하고 퇴각해버린다.

 

이어 등장한 중년 여인은

두 손을 곱게 내밀어 합장을 하더니 나비처럼 발을 내민다.

내민 발은 단 한 차례 나비처럼 허공에서 춤을 추더니 두 번째 발은 디디지 못하고 말았다.

대개 그러헸다.

 

그런데 제대로 다리를 건넌 이 하나 있었으니

멋쩍은 웃음으로 실패를 가리는 사내의 아들이었다.


아들은 아저씨 아줌마들의 응원을 받으며 다리 끝에 서더니

성큼성큼 활짝웃으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피안으로 알아들었다.

 

사내가 연못을 돌아 아들을 끌어 앉았다.

하나도 안 무서워. 아들이 과장된 몸짓으로 으스댔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틀림없었다.

 

얼굴에는 터럭같은 두려움도 보이지 않고 대신 우물가에 놔두선 안 될 그런 천진난만함이 가득했다.

아이는 아버지 무등을 타고 자랑스럽게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하여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조심스럽게 다리로 접근한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다리 앞에 선다.

다리 생김을 보아하니 두 발을 한꺼번에 밟아도 될 정도로 폭이 넓다.

 

그리고 전봇대만한 나무의 굳건함이 웬만한 씨름 선수 열댓 명이 올라도 무방했다.

이걸 못 건너야? 그런데...

보면 볼수록 무서워지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닌 이 다리만 건너면 건너편

그 화창한 가을날을 저 아담한 절에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무거워

다리를 건너려는 나의 발걸음이 도저히 떨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만약 못 건너면, 만약 떨어지면,

만약...그러고 보니 나는 이미 떨어질 것을 예상하고 값비싼 카메라를 뒤에 내려놓고 있었다.

 

개심사의 구도 방식은 그렇게 독특했다.

아무것도 아닌 외나무 다리를 조용히 뉘어놓고서

그 다리를 얕잡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으로 머리를 숙이게 만드는 괴이한 절이었다.


다리는 그저 다리일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그 다리더러 큰소리를 치다가 스스로 제 정신을 차리는 괴이하다 못해 오묘한 절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공포심에 내가 붙잡혀 머뭇대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젊은 스님 둘이서 걸어온다.


잿빛 장삼을 걸친 두 스님은 뭐가 그리 좋은지

파안대소를 터뜨리며 성큼성큼 다리로 내려와 걸음을 뗀다.


아니,걸음을 옮기다 못해 온갖 재주를 다 부리는데

앞에 스님은 모자를 휙 벗어 던졌다가 다시 머리로 받고

뒤 따르는 스님은 연신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뺏다 하며 댄스를 한다.

 

스님들과 저 중년 여인과 저 사내와 그리고 나

이 모든 이가 하나같이 뇌의 1미터 아래쪽에 똥을 그득히 채우고 사는데

어떤 이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마음을 열고 살고 어떤 이는 아무 갈등 없이 구린 똥처럼 산다.

이 어인 일인가...

 

나는 다리가 하도 떨리고 오금이 저려서 

입 아래 40센티미터에 똥 오줌 가득 담은 채

아무 볼 것 없는 먼길을 돌아 대운전으로 오르고 말았다.


다리 반대편에 서서 보니 그 다리 능청맞게 죽 뻗어 있고 그 아래에는 이전투구가 여전히 한창이었다.

 

박종인의 세상의 길 위에서 내가 만난 노자 중 '서산 개심사를 오르며' 전문

 

 

               

 

 

 

                                

구불구불 휜 상태로 제 할일을 다하는 신검당의 나무 기둥

<못 생기고 굽은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킨다>는 옛 속담처럼

쓸모없어 보이는 것 나무가 도리어 제구실을 하고 있다. 


                           불자를 제외하고...개심사를 찾는 이들은 이곳 신검당과 왕벚꽃을 보러 오는이가 대부분이 아니던가?


 곧은 나무가 귀해 굽은 나무를 사용해서 집을 지은 그 옛날 장인의 기술이 놀라울 다름이다.

조선 성종실록에 성종 6년(1475년) 개심사가 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성종 15년

(1484년에)에 중창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따라서 지금의 고풍어린 건물들은 이때

재건축된 건물이다. 

 

대웅전은 제법 높은 길게 다듬은 돌로 만든 기단 위에 얌전히 올라 앉아 있다. 절간

건물로서는 큰 편이 아니지만 기품이 제법 풍겨 나온다.보물 제143호인 대웅전은 정

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단아함을 한것 풍긴다.


수수하면서도 건축미의 극치라는

찬사를 받는다. 이외에도 영상회개불정 (보물 제 1264호) 등이있다. 대웅전 오른쪽에

남향으로 있는 명부전 (문화재자료 제194호) 요사체인 심검당(문화재자료 358호)등

조선조때의 독특한 건축양식이 볼거리 이다. 

 

개심사에는 경허선사(1849-1912)가 1889년 이후 20여 년간 호서지방의 문수사,부석

사(서산),수덕사, 정혜사, 천장사등을 돌며 선기어린 행동과 법문으로 선풍을 일으키

고 다닐 때 머물기도 했던것곳이다. 대한 불교 조계종 제 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

사이다.

개심사의 연못인 세심정은 마음을 열어 정갈히 씻고 라는 뜻인줄 알았었는데 상왕산이 코끼리상을 하고 있어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줄려고 만들었다는 설도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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