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일차] 걸은거리 PUNTE LA REINA-ESTELLA 21.1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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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간마을 스페인 산간마을을 내려서는 한국인여성 순례자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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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산간 마을도 한국의 여느 산악지방처럼 크게 다르지 않고 비슷하다.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이곳 산간 지방 마을은 좁고 가파른 곳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밭농사 같은 것은 아예 볼 수가 없었는데다 거의 농기계로 포도·밀·옥수수 등의 대량농사를 짓고 집집마다 세계 유명 자동차들이 한두 대씩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도 순전히 사용목적으로 소유한 것으로 보인다. 반짝반짝 닦아서 세워두는 차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지나가던 도시 자동차 대리점에서 확인한 가격도 참 착했다. 하긴 관세가 없어서 그렇겠지. 사진에서 보듯 산길도 자동차와 사람 양쪽 다 편히 다닐 수 있을 만큼 흙길이지만 넉넉하게 품을 열어두고 있다.
쉬엄쉬엄 오르막을 다 올라간 순례자는 눈 앞 마을에 있을 바에서 쉬어가면서 커피 한잔이라도 마시려는 궁리를 하는 것일까. 배낭 뒤에 달 콘차(가리비 조개)와 두툼한 양말이 퍽이나 정겹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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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길 아름답게 보존한 자연 그대로의 숲길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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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오기 전 한국의 잊혀져 가는 옛길과 흙길들을 여러곳 답사를 다니기도 하고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 회원들과 걷기여행을 자주 다녔었다. 이 곳엔 흙길 숲길 오솔길 예쁘고 아름다운 길이 지천에 널려 그야말로 걷기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길의 천국이라 할 만큼 부러운 길들이 많다. 한국의 옛사람들이 다녔던 오래 전 흙길들은 그나마 다 포장이 되고 없어져 가는 중이다.
관광공사라는 곳이 뭐하는 곳인지 그나마 있었거나 조금 괜찮다 싶은 길들엔 어김없이 관광수입을 목적으로 길을 다듬고 쓸데없을 것 같아 보이는 이상한 입간판들을 세우고 주변에 식당이나 가게 따위 허가를 준다. 오로지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 주머니 돈 홀리려는 싸구려 중국산 기념품 파는 동네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도대체 김밥집 오뎅집 기념품 가게 같은 것들이 꼭 있어야 편리한 것인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이라는 곳을 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무슨 기준으로 아름다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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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차 순례자의 길 안내 가리비 문양표시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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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길의 유명한 길 안내 표시인 가리비 문양의 순례 길 표시인 콘차(CONCHA)가 보인다. 노랑색으로 화살표를 표시한 가리비들이 담벼락에 붙어있는 집이다. 잘은 모르지만 저 집은 공무원 집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무슨 관공서도 기념품을 팔거나 커피를 파는 카페나 바도 아닌 그저 평범한 마을길에 있는 조그만 주택일 뿐이다.
저 노랑색 콘차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을 본 순례자의 평온한 안도의 길 찾기에 대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걸어본 사람들은 잘 안다. 너무나 고마워 하고 저런 집에 사는 사람들은 참 마음이 넉넉한 것 같다, 라고 느끼면서 지나가지 않을까. 내 집 담벼락에 무언가를 붙인다면 좋아할 사람 몇 있을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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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서 유네스코에 등재된 산티아고 길의 한국인 낙서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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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낙서를 쓴 사람이 이 길을 지나간 게 작년 12월 어느날이었나 보다. 이 낙서는(?) 내가 산티아고로 떠나기도 전에 이미 인터넷에 올려져서 질타를 받기도 했는데 또 다른 낙서에는 아버지의 환갑을 축하한다는 글씨도 있었던 모양이다.
인터넷에서 한국인의 추태다 어글리 코리언의 전형이다, 라면서 욕들을 한 것을 보았다. 산티아고 길에서 만난 미국 거주 교포여성이 입에 거품을 물 듯 한국인에 대한 부끄러움에 대한 말을 늘어 놓으면서 나에게 계속 뭐라 그런다. 벌써 인터넷에 올려져서 말들이 많았다고 했더니 인터넷으로는 안 된다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한단다. 그런데 누가 어디를 가서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라는 것인지.
60을 갓 넘긴 그 여성은 미국에서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산티아고에 왔다고 스스로를 밝힌다. 이 길이 어떤 길인지 아느냐 그러길래 유네스코에 등록이 된 길이라고 알고 있다 그랬더니 그런데 그런 길에 어떻게 낙서를 할 수 있느냐고 따진다. 난 일일이 대꾸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냥 듣고만 있었지만 속으로는 아니 한국 글씨만 보이고 수많은 외국인들의 낙서는 안 보이느냐고 묻고도 싶었다.
하긴 아버지 환갑 축하글이나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글씨가 왜 산티아고 길에 낙서로 새겨져 있는지 우습기도 하다. 그래도 저 낙서는 귀엽기나 하구만. 뒤에 따라오는 여자 친구인지 애인인지 용기를 복돋워주는 듯해서. 사실 저 낙서는 문화유산과는 별 상관 없을 수도 있는 길가 고가도로 아래 벽에 있는 글씨다. 다른 나라 글씨로 된 낙서도 수 없이 많다.
파리나 스페인의 지하철 벽이나 기타 여느 곳에도 아예 비어있는 벽면이 없을 정도이다. 어쨌거나 굳이 벽에다 페인트로 낙서를 한 저 사람은 꿈자리 꽤나 사나웠을 터.
이런 방법도 얼마든지 많이 있을텐데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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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로 만든 길 안내 길가 지천에 널려 있던 돌로 글을 썼다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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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매로 쓴 길가의 나무에서 딴 도토리 열매로 글을 쓰다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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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방울 수류탄만한 크기의 솔방울들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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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밥 빨간 까치밥 열매 500개를 따서 길바닥에 글을 쓰고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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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과 도토리 알밤으로 쓴 생일 축하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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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옆 길가 까치밥 열매를 따서 쓴 글씨다. 이런 글은 아무도 뭐라 그러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글 일본 인터넷에 많이 올라가겠다. 뒤따라오던 수십 명의 일본 욘사마 팬쯤 될 아줌마들이 박수를 치고 마음이 참 아름답다, 라며 내 몰골과 저 사진을 다들 찍어갔으니까 말이다.
저 열매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새들이나 그 어떤 동물들도 먹는 것이 아니다. 그저 길가에 지천으로 열려 있는, 우리 이름으로 까치밥이라는 것이다. 일일이 따느라고 손등이 가시에 무수히 찔렸다. 한국인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인도행 홍보를 잘 했다고 믿고 싶다.
화강암이나 대리석 석회석 현무암 등 돌이 많은 나라인지 저 돌은 까만색이다. 주로 집 지붕 맨 바깥부분을 얇게 덧씌울 때 많이 사용한 것 같았다. 깨진 납작한 까만돌이 길가에 널려있기에 한개 한개 주워서 이어붙이기를 해서 글씨를 만들어 보았다.
위의 글씨를 쓴 열매는 우리나라 두 배 정도의 크기를 가진 도토리다. 그냥 길바닥에서 썩고 있었고 아래는 햇밤 알이다. 산티아고 길 마을 근처에 지천으로 널린 밤나무인데 별로 신경을 쓰질 않는다. 가끔 밤나무를 털고 있는 마을도 보긴 했고 큰 도시에서는 수퍼에서 무게를 달아 팔기도 하더라만 거의 버려진 채 썩어간다.
자축하는 생일 기분도 좀 냈다. 덕분에 이런 글씨도 써 보고 숙소에 가서 까 먹고 삶아 먹고 구워 먹고 신났었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욕심이나 재산권을 위한 금을 그은 도시의 경계선 같은 담이 아니다. 스페인에서 본 산티아고 길가의 높거나 낮은 담들은 오로지 사람이 걷는 길과 가축이 제 살 곳을 멀리 벗어나 길을 잃지 않을 정도의 가로막음용으로만 만들어진 것 같았다.
실제 갈리시아 지방엔 축산업을 하는 마을이 많이 있어서 순례자들에게는 또 다른 곤욕을 치르게 했다. 길에는 어김없이 똥똥똥!!! 소똥 천지였으니까.
하지만 가축 똥이란 게 그들이 워낙 채식주의들이라서 어지간해서는 사람의 그것들만큼 냄새가 지독할 정도로 고약한 것만은 아니라서 그나마 참고 지나가고는 한다.
스틱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가 이곳에서 6.5유로를 주고 순례자용 지팡이를 한개 샀는데 나름대로 멋도 있고 폼도 난다. 지팡이에 표주박 한개만 달면 영락없이 그 당시 순례자 폼이 될 것 같기도 하다.
마을을 들어서서 언덕을 올라갈 때 주위 나뭇가지를 보면 작은 달팽이들이 나뭇가지를 타고 다닥다닥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것들이 번식을 위한 몸부림으로 천적을 피해 올라가는 것인지 도대체 이유를 알수는 없었지만 좌우지간 참으로 특이한 광경이다.
중소도시형 마을이고 골목길에 수퍼가 있고 왼편 골목길에 공립 알베르게가 있다. 뽀송뽀송하게 말려 입는 빨래 욕심에 오늘 코스는 비교적 수월하기도 하고 걸음을 빨리 해서 일찍 숙소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한 덕분에 볕 잘 드는 이층 창가 침대와 빨래가 잘 마를 베란다를 차지하고. 후다닥 해치운 빨래를 널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어 먹을 궁리로 마을로 마실을 나갔다.
산티아고에서 내가 해먹을 수 있는 요리라는 게 기껏해야 스파게티·파스타·계란 볶음덮밥과 스프 정도다. 한정된 공간과 부엌 집기시설로는 인원이 많게 머무는 곳이면 스파게티나 파스타는 1인분을 하기가 다소 껄끄럽기도 해서 그냥 계란 프라이(스크램블 에그) 미리 해둔 밥(인도와 베트남 쌀) 그리고 치즈와 스프로 해결을 본다.
이 밥이라는 게 사실 그곳 사람들은 물을 걸죽하게 부어서 쌀이 익을 때까지 휘휘 젓는다.
마치 조금 된 죽을 끓이듯이. 알맞게 뜸을 들인 밥을 숭늉 욕심으로 조금 더 눌게 만들어서 준비해 둔다. 스프를 끓이고 계란 프라이를 해서 소금과 치즈로 섞어 먹는다. 사실 순 토종 한국 촌놈인 나로서는 그 어떤 바게트에 초리스나 치즈 또는 햄을 얹어먹어도 내가 만든 음식보다는 못했다.
그리고 스페인의 이 스프라는 게 말이 스프지 한 봉지에(속의 내용물 양을 보면 결코 1인분 이상은 아닌 듯) 소금이 얼마나 들어있는지 물을 한 양동이쯤 부어야 간이 맞을 정도다. 이네들의 식습관은 상당히 짜게 먹는다. 뜨끈한 숭늉까지... 후식으로 저녁식사를 오랜만에 밥으로 해결을 하니 '등 따시고 배 부르니 새상 부러울 게 없다'가 된다.
이층 베란다 빨래를 걷기 위해 갔더니 아, 글쎄 삼층 베란다 내 바로 위쪽에 이제서야 도착한 외국 여자가 그 커다란 가슴을 다 가리지도 못할 만큼 큰 젖가리개와 옛날 울엄니들 입으시던 엄청 통 큰 속팬티를 제대로 짜지도 않고 베란다에다 턱 걸쳐 두었다. 바로 아래에 널려 한낮동안 햇볕을 받아 뽀송송하게 잘 마른 내 빨래가 난데 없이 비 세례를 맞고 있는 중이었다.
할말을 잊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나를 본 J.T가(다소 수다스럽긴 해도 나와 많이 친했던 미국인인데 이름이 정말 단 두 스펠뿐인 J.T이다) 참아라~참아라~ 내가 올라가서 이야기 하고올께, 라면서 올라갔다. 잠시 후 예의 그 여자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연신 미안하다고 하면서 지 빨래를 거두어 간다.
그렇지만 정말 멋있게 말랐다가 다시 흠뻑 젖어버린 내 옷들을 보니 그만 울고 싶어질 정도로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속으로 '이발세발' 욕설을 퍼부었는데 다음날 길을 걸으면서 반성을 많이 했다.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하거니와 아직도 한참 멀었다 싶기도 하다. 걷는 이유나 있느냐고 반문을 하기도 한 하루였다(그까짓 옷 좀 젖었기로서니).
그 외국인 여성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미안해서 어쩔줄 몰라 하던 얼굴이 떠올라 더욱 미안했던 뒷날 하루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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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오래된 옛길 |
ⓒ 문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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