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세상에 그대의 집을 짓지말라 본문
'세상에 그대의 집을 짓지 말라'
인도 히말라야 방랑기를 쓴 '이지상' 이라는 작가의 말이다.
그래,
난 세상에 나의 집을 짓기는 커녕 아예 뿌리조차 없는걸 뭐,
아침형 인간이 잘사는 지름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야 원래가 올빼미형이라서
새벽이 되어야만 산린했던 마음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푸르스름한 여명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세상의 모습에 작은 감동을 하고...
그 새벽의 부름에 가슴이 설레이고 세상을 살아오며 잊고 지냈던 이 생기.희열들
아침형 아니라 늦은 밤이라고 해야 하나...
삶은 곧 천국이라는 뜻은 어떤 것인가...
배낭을 메고 산을 내려오다 온 천지가 하얀 눈으로 뒤덮여있는 모습에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서,
바로 건너편, 병풍처럼 우뚝 선 눈 덮인 히말라야 산맥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모습
투명하기 그지 없는 쪽빛 하늘,계곡을 흐르는 상쾌한 물소리,그리고 촉촉한 향기가 베어 있는 맑은 공기
그런 환희 앞에서 덧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홀연히 사라지는 순간 바로 그것만이 내 세상이 되겠지...
살다보면 앞이 캄캄해질 때가 더러 있다.
아무리 더듬어도 도저히 해답은 보이지를 않고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여행을 하면서도 가끔 그런 순간들을 만난다.
스스로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그떄마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멀리 물러나,
아니 도망을 가는 것이라고 해야겠지만...
내면으로 침잠하여 기도 아닌 기도를 하며 깊은 곳에서 울려퍼지는 음성에 귀를 기울인다.
실체는 없지만 누군가가 내게 소리친다.
너의 느낌에 따라,
네 마음이 가려는대로 따르라고...
사람들은 그렇게들 말한다.
버리고 살라고...
뭘 버릴려면 채우고 나서야 버릴 수 있을텐데 채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나는 무엇을 더 버려야하지...
가끔이 아니라 아예 언제나 세상을 쳐다보기도 싫은 나,
그러면서도 세상이 감사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 있었는데 산티아고 길에서 그랬었다.
그래서 이 새벽 나는 또 반란을 꿈 꾸느라 쳐박아 둔 배형 배낭을 꾸리면서 마음은
벌써 초봄의 상쾌한 바람 아래에서 흔들리는 분홍 복사꽃이랑 코 끝에 알싸한 매화향을 느끼느라 마음이 분주해지는 것을...
나는 인도로 가고 말겠지,
그렇게 열병에 뜬 놈처럼 산티아고를 생각하다 어느날 문득 그 길에 서 버리고 말았던 것처럼
종내 눈 덮힌 히말라야의 설벽을 마주하고야 말 것 같다.
재미와 속도와 효율에 중독된 세상으로부터 탈출이든 도망이든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 또한 아무도 모르는 곳,
권태로울 정도로 한적한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잊는 그야말로 무미(無味)
나는 인도로 떠날 것이다.
이 새벽 지리산으로 드는 배낭을 꾸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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