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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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반데룽

빨간 찌 톱

까미l노 2011. 3. 4. 17:55

빨리 꽃지는

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의 그것처럼 야릇하게 퍼지는

밤꽃 냄새가 나기전에

당신과 함께 새벽 호수에서

물안개를 보고싶습니다

 

살구씨처럼 흘겨보는 당신의 눈에

때 이른 욕망까지 내 보이고 싶습니다

 

부끄러워 할 당신의

벗은 등이 자꾸 떠 올라

슬그머니 물가로 나가 앉습니다


몽환처럼 물안개는 자꾸 찌톱을 숨깁니다

방금 마신 커피맛의 혀 끝을

금방 잊고서 다시금 버너에 불을 지핍니다

 

눈은 빨간 찌톱에다만 두고 있습니다

만개하는 동백꽃잎 벌어지듯

호들갑스런 당신의 그 제스쳐를 보고싶어

게끔발로도 뛸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습니다

 

일시에 눈과귀를 활짝 열어제치고

푸드덕 거리는 고기의 은빛 비늘에

어쩔줄 몰라하는 당신을 보고싶습니다

당신은 맨발로도 즐거워 할테지요


건너편은 늘

보일리 만무합니다.

물안개를 핑계로 사르락 거리는

당신의 옷 벗는 소리를 훔쳐듣고 싶습니다

 

빨간 찌톱 끝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않습니다

수면도 덩달아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않고

다만 당신만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듯 하다가

소리없이 물안개 사이로 벗은 등만 보여주며

이내 소리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손을 내 저어봐야 잡히는건

물안개 뿐 입니다

물가에는 아무도 없었고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던 봄밤을 지킨 한 사내가

빨간 찌 톱 끝에 시린눈을 비벼대고 있습니다.

 

 

햇살이 들끓는 한낮의 고요 속에서 낚시를 하다가

무연히 빨간 찌톱만 바라보는데 문득 까닭모를 설움이 복받쳐오른다...

 


 





음악, Frederic Delarue / Flying Over The Canyons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 위에 엎드려

물고기 같이 울었다."

 

중략....

 

-----마종기 시인의 싯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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