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빨간 찌 톱 본문
빨리 꽃지는
밤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의 그것처럼 야릇하게 퍼지는
밤꽃 냄새가 나기전에
당신과 함께 새벽 호수에서
물안개를 보고싶습니다
살구씨처럼 흘겨보는 당신의 눈에
때 이른 욕망까지 내 보이고 싶습니다
부끄러워 할 당신의
벗은 등이 자꾸 떠 올라
슬그머니 물가로 나가 앉습니다
몽환처럼 물안개는 자꾸 찌톱을 숨깁니다
방금 마신 커피맛의 혀 끝을
금방 잊고서 다시금 버너에 불을 지핍니다
눈은 빨간 찌톱에다만 두고 있습니다
만개하는 동백꽃잎 벌어지듯
호들갑스런 당신의 그 제스쳐를 보고싶어
게끔발로도 뛸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습니다
일시에 눈과귀를 활짝 열어제치고
푸드덕 거리는 고기의 은빛 비늘에
어쩔줄 몰라하는 당신을 보고싶습니다
당신은 맨발로도 즐거워 할테지요
건너편은 늘
보일리 만무합니다.
물안개를 핑계로 사르락 거리는
당신의 옷 벗는 소리를 훔쳐듣고 싶습니다
빨간 찌톱 끝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않습니다
수면도 덩달아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않고
다만 당신만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듯 하다가
소리없이 물안개 사이로 벗은 등만 보여주며
이내 소리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손을 내 저어봐야 잡히는건
물안개 뿐 입니다
물가에는 아무도 없었고
꽃잎이 하나 둘 떨어지던 봄밤을 지킨 한 사내가
빨간 찌 톱 끝에 시린눈을 비벼대고 있습니다.
햇살이 들끓는 한낮의 고요 속에서 낚시를 하다가
무연히 빨간 찌톱만 바라보는데 문득 까닭모를 설움이 복받쳐오른다...
음악, Frederic Delarue / Flying Over The Canyons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 위에 엎드려
물고기 같이 울었다."
중략....
-----마종기 시인의 싯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