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부치지 않은 편지 본문

드레퓌스의 벤치

부치지 않은 편지

까미l노 2010. 4. 13. 03:11

 

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 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쓸쓸한 편지


오늘도 삶을 생각하기보다
죽음을 먼저 생각하게 될까봐 두려워라

세상이 나를 버릴 때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살아온 나는

아침햇살에 내 인생이 따뜻해질 때까지
잠시 나그네새의 집에서 잠들기로 했다

솔바람소리 그친 뒤에도 살아가노라면
사랑도 패배할 때가 있는 법이다

마른 잎새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내가 울던 날
싸리나무 사이로 어리던 너의 얼굴

이제는 비가 와도
마음이 젖지 않고

인생도 깊어지면
때때로 머물 곳도 필요하다

'드레퓌스의 벤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 하나쯤 ..  (0) 2010.04.13
낙화  (0) 2010.04.13
비오는 날  (0) 2010.04.13
우표 한장 붙여서 ..  (0) 2010.04.13
가슴이 먼저 한 사랑  (0) 2010.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