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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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퓌스의 벤치

내 안의 목소리 / 류시화

까미l노 2009. 9. 17. 16:07

내 안의 목소리 / 류시화


  시간은 덧없다.
  고대 힌두의 속담에 의할 것 같으면
  시간은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괴물이다.

  덧없는 시간 속에서 삶은 흘러간다.
  짧은 생의 많은 부분을 일상적인 일들이 차지해 버리고,
  뚜렷이 비극적인 사건이 있거나
  크게 불행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 걷잡을 수 없는
  삶의 허무함이 나를 엄습한다.
  짐승들은 밖의 것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과연 삶의 무엇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가?
  그것은 삶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고(苦),
  저 고타마 싯달타가 알아차렸던 '두카'인가?
  허무함 또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사람됨의 부조리?
  시간의 되돌릴 수 없음?

  함정은 도처에 있다.
  우리를 지쳐 쓰러지게 하는 것들.
  그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삶의 길을 떠났던 한 여행자를 나는 알고 있다.
  그는 그것을 '내면의 길'이라고 불렀다.
  지도조차 없는 여행. 니르바나로의 여행.

  나는 강과 산을 건너 그를 따랐다.
  한동안 내 삶이 그렇게 흘러갔다.
  강을 만나면 강가를 걸었고,
  숲을 만나면 그 나무 아래서 잠들었다.

  병들면 아파했고,
  기차가 쉬는 낯선 곳에 무작정 내려서
  먼 들판을 걷기도 했다.
  그렇게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나는 그 여행자가 곧 나 자신임을 알았다.
  내 안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류시화 산문집,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中


  음악, O Fim das Coisas / Marcus Via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