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현의 카미노 (링반데룽)

허수아비 1,2 본문

드레퓌스의 벤치

허수아비 1,2

까미l노 2009. 4. 22. 00:43

  허수아비.1 / 이정하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외로우냐고 묻지 마라
  어떤 풍경도 사랑이 되지 못하는 빈 들판
  낡고 해진 추억만으로 한 세월 견뎌왔느니
  혼자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
  누구를 기다리느냐고도 묻지 마라
  일체의 위로도 건네지 마라
  세상에 태어나
  한 사람을 마음 속에 섬기는 일은
  어차피 고독한 수행이거니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고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외롭다
  사랑하는 그만큼 외롭다...


  허수아비.2  / 이정하

  살아가다 보면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부족한 것이 또한 사랑이었다.
  그에게 한 걸음도 다가갈 수 없었던 허수아비는.
  매번 오라 하기도 미안했던 허수아비는
  차마 그를 붙잡아둘 수 없었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한 곳만 본다.
  밤이 깊어도 눈을 감지 못한다...


  허수아비, 그 이후 / 이정하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운다.
  늙고 초라한 몸보다는
  자신의 존재가 서러워
  한없이 운다.

  한낮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서 있지만
  밤만 되면 허수아비는 목이 메인다.

  속절없이 무너져
  한없이 운다...